2015년 8월 대표적인 글로벌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더는 줄 세우기식 연간 성과 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GE의 발표 직후 미국의 유명 인적자원관리(HRM) 협회인 SHRM은 ‘이제 연간 성과 평가 시스템 시대는 끝난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내기도 했다. 비단 성과 관리 시스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HRM 분야 전반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
얼마 전 ‘게임 체인저’의 저자 램 차란은 “요즘 최고경영자(CEO)들은 기술, 사업을 잘 모르는 HRM에 불만을 갖고 있다. 특히 ‘우리 사업에 필요한 사람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조언하지 못하는 HRM에 회의를 품곤 한다”는 말로 많은 HRM 전문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최근 몇 년간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는 사업구조 변화다. 2015년에는 크고 작은 기업들의 인수합병(M&A) 및 매각이 이어져 M&A 역사상 거래 규모가 가장 큰 한 해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구조에 필요한 인재를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조달할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HRM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더 커질 공산이 크다.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이 글로벌기업 최고인사책임자(CHRO)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탤런트 갭(talent gap)을 메우는 일’이 가장 시급한 HRM 과제로 지목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순위 매기기 OUT, 조직 더 유연하게
인력 관리를 잘하려면 새롭게 등장하는 인재 확보 방식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요즘엔 소수의 기술 인력이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일괄 확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제압해 유명해진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도 20명 정도로 이뤄진 스타트업이었다. 미국 지역에서는 링크드인, 몬스터닷컴 등 온라인 탤런트 플랫폼 활용이 당연시되고 있으며, 분석기술을 사용한 지원자 스크리닝도 이뤄진다. 기존 구성원 대상의 재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다. 온라인공개강좌(MOOC), 사내 소셜네트워크 등이 적극 활용된다.GE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 많은 기업이 기존 성과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 개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순위 매기기를 버리고 있다. 직원의 지적 창의성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순위를 통해 구성원 간 상호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우리가 경쟁자들보다 창의적이지 못했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순위 매기기 방식에 있다고 본다”는 말도 했다. 둘째, 1년 단위 평가 프로세스를 버리고 업무과정에서의 수시 코칭을 강조한다. HRM 전문가인 조시 버신은 “성과 관리는 ‘업무과정 중 수시로 대화하며 더 나은 대안을 만드는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표 참조). GE는 ‘PD@GE(Performance Development at GE)’라는 사내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도입 중이다. 이 앱에는 구성원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이 올라오며, 리더들은 이에 대해 수시로 코멘트하고 논의한다. GE에서 리더들은 구성원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 구성원은 ‘인사이트(insights)’라는 탭을 통해 동료나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요청할 수 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1년에 한 번 조직도를 그리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더는 유용하지 않다. 그렇다고 수시로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바뀐 조직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구성원의 피로감만 높일 수 있다. 요즘 기업들은 ‘대기업의 안정성과 스타트업의 기민성(agility)을 어떻게 조화롭게 밸런싱하면서 조직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을 고민하며 실험하고 있다. 예컨대 GE, 퀄컴, 인튜이트 같은 기업들은 ‘린 스타트업 방식(Lean Startup Practices)’을 시험 중이다. GE는 몇 년 전부터 ‘식스시그마’ 후속 프로그램으로 ‘패스트웍스(FastWorks)’라는 이름의 린 스타트업 방식을 도입했다. GE 가전사업부는 ‘퍼스트빌드(Firstbuild)’라는 작은 실험용 공장을 운영한다. 구성원의 아이디어 가운데 의미 있다고 판단된 내용들에 대해서는 실험용 공장에서 소규모로 생산해 시장 성공 가능성을 미리 타진해본다. 성공 가능성이 낮으면 빨리 폐기하고 다른 아이디어를 실험한다. 이 과정을 크라우드소싱과 연계하기도 한다. 소비자로부터 아이디어를 받기도 하고, 소비자에게 제품 기능을 미리 공개해 사전 주문을 받아 소량을 제작하기도 한다. 구성원은 이런 과정을 통해 유망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유연하게 일한다.
HRM 분석기술의 확산
HRM 분야에서도 분석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대표주자인 미국 인터넷기업 구글 측은 “사람과 관련한 모든 의사결정은 데이터와 분석에 기반을 둔다”고 말한다. 구글은 HRM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에 ‘People Operations’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부조직인 ‘People Analytics’에서 각종 빅데이터를 분석한다. 채용, 유지, 인력 수요 예측 등 각종 HRM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사업 니즈에 따라 다양한 분석기법을 만든다. ‘천재 개발자들은 평균 대비 300배 정도 중요한 성과를 창출한다’ 같은 분석 결과도 제시한다. 알고리즘을 직접 개발하기보다 전문업체에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 HRM 분석기술 솔루션을 제공하는 정보기술(IT) 전문기업도 많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IT 솔루션에 대한 기업들의 신뢰가 아직까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여러 기업은 일부 사업 영역에 파일럿 테스트를 하면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구성원의 정보를 다양하게 확보하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휴머니즈(Humanyze)라는 회사는 구성원의 움직임, 언행,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등을 기록할 수 있는 소시오메트릭 배지(Sociometric Badges)를 개발했다(그림 참조). 개인정보 노출 등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콘퍼런스 보드가 글로벌 CEO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CEO들이 가장 주목하는 이슈는 인적자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경영층의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HRM 영역에서의 변화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사람, 조직과 관련된 이슈들은 단기간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조급하게 서두르면 오히려 사기 저하, 냉소주의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