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고풍스럽고, 전통적이다. 군더더기 없는 이 제목의 영화는 말 그대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서로가 서로를, 누구 엄마, 누구 아빠 혹은 어느 회사 대표, 어떤 건축사가 아니라, 남과 여로 느낀다. 그래서 서로에게 남과 여로 다가가, 남과 여가 나눌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나눈다. 말하자면 그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어떤 젠더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남과 여로 만난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온다. 자신이 더는 여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 굳어졌음을 느끼는 순간. 더는 남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보호자이자 가장으로만 느껴지는 순간 말이다. 영화의 시작, 두 남녀는 그렇게 양쪽 어깨에 무거운 추를 단 채 만난다.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 핀란드에서 말이다.
여자 상민(전도연 분)의 무게는 아들이다. 자폐증을 앓는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서 힘으로 제어하기 어려워졌다. 의사소통이 거의 되지 않는 아들은 상민에게 아픔이자 흉터다. 사실 그가 남자를 만난 것도 아들 때문이었다. 캠프를 간 아들이 마음에 걸린 상민은, 조금 억지를 부려 마찬가지로 딸을 캠프에 보낸 남자의 차를 타고 따라가는 것이다. 먼 곳까지 간 그들, 눈이 오고 눈에 갇힌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잠깐은 삶의 무게를 놓고 싶었던 이들의 미필적고의였을지도 모른다.
여성의 마음을 늘 섬세하고도 조심스럽게 연출해온 이윤기 감독은 이번에도 그 조심스러움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핀란드의 낯설고도 차가운 화면이 조심스러움에 감성을 얹어준다. 스프레이처럼 흩날리는 눈과 침엽수림은 언젠가 영화 ‘렛 미 인’에서 본 풍경처럼 존재의 스산함을 전해준다.
그렇게 먼 곳에서 상민은 자신에게 휴가를 주듯 남자에게 안기고, 남자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듯 안는다. 말하자면 불륜이다. 디자이너 상민에게는 이미 말했다시피 아들이 있고, 남편도 있다. 남자 기홍(공유 분)에게도 아내와 딸이 있다. 기홍의 아내는 히스테리컬한 성격이 매력일 때도 있지만 삶의 한가운데서 아내의 이 불안정성은 매혹이라기보다 그저 위험요소일 뿐이다. 기홍은 그런 아내에게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엄마의 불안을 보고 자란 딸마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기홍에게 가정이란 이미 금은 갔지만 그럼에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어떤 책임인 셈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핀란드 풍경, 그리고 서울 남산 언저리, 기차 공간 등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의 뉘앙스를 그려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늘 길 위에서 만났다 헤어진다. 이는 한편, 두 사람의 열정이 길이 아닌 곳, 곧 방과 집에서는 허락되기 어려운 것임을 보여준다. 남자는 길에서 기다리고 여자는 길에서 사라진다. 세상에 서 있기 힘든 두 연인에게 허락된 공간은 돈 주고 빌리는 호텔방이 고작이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불륜 커플이다. 아내와 남편, 딸과 아들을 두고 욕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쪽으로 따라 움직인,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일탈자들이다. 그런 일탈자들에게 허락된 미래란 무엇일까.
영화의 결말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징벌적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낭만적 일탈이었지만 만남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그들은 남과 여의 생물학적 특성이 아닌, 사회적 호명에 붙들린다. 기홍은 아빠였고, 상민은 엄마였던 것이다. 사실 사랑이라는 것, 불륜이라는 것, 멜로라는 것은 다 뻔한 게 아니던가. 다른 점은 그것을 바라보는 눈길,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조심스러운 손길뿐이라는 듯, 그런 정성을 보여주는 영화 ‘남과 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