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방위비 역대 최대 증액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1년 11월 도쿄 네리마에 있는 육상 자위대의 아사카 주둔지에서 차량을 타고 사열하고 있다. [일본 총리실 제공]
그런데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22년 12월 각의에서 방위비 1% 원칙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면서 2027회계연도(2027년 4월~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고, 2023~2027년 5년간 방위비 43조 엔(약 388조6300억 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첫해인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방위비는 전년보다 26.4% 늘어난 6조7880억 엔(약 61조3400억 원)로 GDP의 1.19%였다.
방위비 1%라는 금기를 깬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22일 각의에서 2024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방위비를 7조9496억 엔(약 71조84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전년보다 16% 증액된 역대 최대 규모다. 일본 교도통신은 “정부가 12년 만에 예산안을 대폭 감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위비는 늘였다”면서 “방위비는 GDP의 1.3%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시다 총리는 2027회계연도까지 방위비를 10조 엔으로 증액할 방침이며, 이를 위해 매년 방위비를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이 실현될 경우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국방예산 지출 국가가 된다.
일본 정부가 책정한 방위비 예산을 구체적으로 보면 장사정 미사일 개발에 7340억 엔(약 6조6300억 원)이 배정됐다. 장사정 미사일은 12식 미사일과 미국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차세대 장거리 미사일 등이다. 이 외에도 최신형 이지스함 2척 건조에 3731억 엔(약 3조3700억 원)을, 사거리 3000㎞의 초음속 유도탄 개발에 800억 엔(약 7200억 원)을 각각 지출할 계획이다. 2024회계연도 방위비는 상반기 소집되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 확정된다. 중국과 북한은 방위비를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한 일본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 정부가 적 미사일 발사 거점 등을 공격할 수 있어 이른바 ‘반격 능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미국으로부터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은 1월 18일 도쿄 방위성에서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와 토마호크 미사일 400기를 2540억 엔(약 2조3000억 원)에 구입하는 일괄 계약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25∼2027년 사거리 1600㎞인 토마호크 미사일 400기를 미국에서 도입하게 된다. 일본은 애초 2026년부터 2년간 토마호크 최신 모델인 ‘블록5’를 400기 구입할 방침이었지만 도입 시기를 2025년으로 1년 앞당기고 400기 중 최대 200기를 이전 모델인 ‘블록4’로 먼저 수입하기로 했다.
기하라 방위상은 지난해 10월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일본은 더욱 엄중해지는 안보 환경을 고려해 토마호크 미사일 도입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의 협력을 요청한 바 있다. ‘더욱 엄중해지는 안보 환경’은 중국의 대만 침공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 가능성을 말한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과 중국 본토 일부를 타격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전쟁 수행 가능”
일본 정부는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거리가 1000km를 넘도록 계량할 계획이다. 사진은 12식 지대함 유도탄 시험발사 장면. [일본 육상자위대 제공]
일본 방위성은 10개 이상의 장사정 미사일을 동시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100~200㎞인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거리를 1000㎞ 이상으로 늘려 지상·함정·항공기에서 각각 발사할 수 있도록 개량해 2026년부터 지상에 우선적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날아가는 극초음속 유도탄도 2028년 도서 방위에 사용할 수 있는 고속활공탄을 2030년에 각각 실전 배치할 목표도 추진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육상 자위대가 장사정 미사일을 운영할 수 있는 미사일 부대를 신설할 계획”이라면서 “미사일 부대는 지대함미사일 연대 7곳, 고속활공탄 대대 2곳, 장사정탄도탄부대 2곳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또 금기였던 무기와 군사 장비 수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22일 각의에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과 운용 지침을 개정하고 패트리엇 미사일을 미국으로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은 2014년 아베 신조 총리 때 결정된 것으로 △분쟁 당사국과 유엔 결의 위반국가에 무기를 수출(이전)하지 않고 △평화 공헌과 일본 안보에 기여하는 경우 무기를 수출하며 △수출 상대국에 의한 목적 외 사용 및 제3국 이전은 적정한 관리가 확보되는 경우로 한정한다는 내용이다. 이 원칙에는 해외 기업에 특허료를 지불하고 일본에서 제조하는 ‘라이선스 생산품’의 경우 부품에 한정해 라이선스 제공국과 그 외 3국에 수출할 수 있으며, 완제품은 수출이 불가능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당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은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을 대체한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표명한 무기 수출 3원칙에 따라 무기 수출을 사실상 금지해왔다.
일본 정부는 기존의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에서 라이선스 생산품을 특허국에 전면 수출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일본 정부는 다만 운용지침에서 “현재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판단되는 국가”에 대한 제공은 제외한다고 명기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패트리엇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면서 재고가 부족해진 미국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대거 수출한다. 일본이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제정한 이후 금기로 간주해온 살상 무기 수출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살상무기 완성품의 수출 금지가 풀렸다”면서 “무기 수출을 금기시해 온 평화국가의 이념은 희미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위대 방위장비 가운데 라이선스 생산품은 79종이며, 이 가운데 미국 라이선스 장비는 패트리엇 미사일과 F-15 전투기 등 32종이다. 일본은 패트리엇 미사일 중 주로 항공기 및 순항 미사일을 요격하는 ‘PAC-2’ 모델과 탄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PAC-3’를 미국에 수출한다.
美-日, 중국의 대만 침공 대비
일본 정부는 전국 38개 민간용 공항과 항구를 군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비할 계획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등이 발생했을 때 자위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활주로와 항구 시설 등을 확장·보수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민간용 공항과 항구를 군사용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기 사항으로 간주해왔다.38개 시설 중 70%인 28개(공항·항만 각각 14곳)는 오키나와와 규슈 등 난세이(南西)제도에 있다. 난세이 제도는 규슈의 최남단인 가고시마에서 대만을 잇는 해역에 있는 길이 1200㎞의 도서군으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군과 자위대가 중국군과 대치하게 될 최전선이다. 이 계획에 따라 공항 활주로의 길이를 전투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늘리고, 항구의 경우 대형 함정이 접안할 수 있게 해저를 깊이 팔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또 난세이 제도 방위를 맡고 있는 1개 연대인 육상자위대 제15여단을 2개 연대(병력 3000명 규모)로 증강할 계획을 당초 예정(2027년)보다 1년 앞당길 예정이다.
미국 정부도 일본 정부의 이런 계획에 발맞추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를 난세이제도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기동부대인 제12해병연안연대(MLR)로 개편했다. 일본 정부는 아마미오섬, 오키나와 본섬, 미야코섬, 이시가키섬, 요나구시섬 등에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는 등 말 그대로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각종 안보상 금기를 깨뜨리고 있는 일본이 재무장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본격적으로 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