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하림(오른쪽)과 베이시스트 박한솔이 결성한 재즈그룹 ‘한국재즈수비대’. [사진 제공 · 안현모]
현모 아, 큰언니요?
영대 네. 그냥 말씀 많이 들었다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쪽지를 보내고, 서로 ‘맞팔’(맞팔로) 시작했죠.
현모 잘 하셨어요. 나중에 영대 님이 진행하시는 팟캐스트에도 초대해주세요.
영대 안 그래도 언니분이 새로 내신 책 ‘클래식이 알고 싶다: 고전의 전당 편’에 대해 함께 얘기 나누면 재미있을 거 같더라고요. 아시다시피 클래식이 저한테는 은신처, 피신처 같은 존재잖아요.
현모 맞아요. 클래식을 일과 연관 없는 순순한 취미로 즐기신다고 했었죠.
영대 제가 평소 직업적으로 많이 다루는 케이팝을 비롯한 대중음악은 마냥 취미 삼아 듣기가 어렵거든요. 언제나 일의 일환으로 접근하게 되죠. 그렇다 보니 클래식이나 재즈에서 편안함, 순수한 즐거움을 찾는 거 같아요.
현모 제가 영어보다 이탈리아어를 재미있어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군요.
영대 그죠. ㅋㅋㅋ 아, 근데 최근 아주 뜻밖에 보람 있는 일도 있었어요!
현모 간만에 좋은 소식이다! 무슨 일이요?
영대 음, 대단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었는데, 혹시 서울 서초동 ‘디바야누스’라는 라이브클럽 아세요?
현모 아니요. 몰라요.
영대 정말 역사가 오래된 곳인데, 주로 재즈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바예요. 원래는 신촌에 있다 현재는 교대역 근처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죠. 제가 거기서 재즈 공연 진행과 해설을 맡았어요.
현모 오호, 영대 님은 SNS 아이디도 ‘toojazzy’잖아요!
영대 ^^;; 그야 그렇지만, 제가 평론가 생활을 저 나름 오래 했음에도 막상 재즈에 관한 깊이 있는 칼럼은 써본 적이 없어요. 재즈 공연에서 뭔가를 해본 것도 물론 처음이고요. 어디까지나 재즈는 취미 영역이었기에 저한테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였어요.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제가 섭외된 과정이에요.
현모 어떤 비하인드가….
영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가요. 그때 ‘한국재즈수비대’라는 프로젝트 팀에 주목하게 됐어요. 제가 선정위원으로 있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한 팀이죠. 점점 축소되는 국내 재즈 시장,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자꾸만 문을 닫는 재즈클럽들을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였어요. 이하림, 박한솔이라는 젊은 재즈 뮤지션 둘이 주축이 돼 기획한 팀인데, 재즈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좀 가상하다는 생각이 들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죠.
현모 맞아요. 대중문화에 다양성이 있어야 되는데, 너무 케이팝 쪽만 커지고 있어 아쉬워요.
영대 게다가 재즈는 음반이 아니라 클럽 현장에서 본질이 드러나는 장르거든요. 그런 그들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건 그야말로 서글픈 일이죠. 그래서 저도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고, 몇 달 전 드디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들을 소개하며 함께 출연했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았던 재즈클럽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다. [GETTYIMAGES]
영대 아니 그런데!! 그 방송 후 실제로 이들의 음악이나 재즈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제법 커져서 이렇게 따로 특별 공연까지 하는 결과로 이어진 거예요!
현모 진짜요?
영대 게다가 디바야누스의 주인장이기도 한 한국의 대표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선생께서 이 취지에 공감해 감사하게도 무보수로 보컬에 참여해주셨죠.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재즈수비대와 더불어 말로 선생께서 직접 저를 진행자이자 해설자로 추천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제 진심을 알아봐주신 거죠. 얼마나 영광입니까!
현모 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겠네요.
영대 정말 감사한 순간이었고, 한편으로는 긴장도 됐죠. 공연도 무척 즐겁게 성공적으로 잘 끝났고요. 제가 평론가가 아닌, 재즈를 사랑하는 재즈 팬 입장에서 소박한 재즈 관련 이야기들을 풀어놨을 뿐인데 관객들도 크게 호응해줬어요. 연주자분들 역시 자신이 몰랐던 재즈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고마웠다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했다더라고요. 보람과 감동이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현모 궁금하다. 저도 듣고 싶네요.
영대 사실 행사 자체가 예산이 적다 보니 당연히 보수는 크지 않았고, 저보다 훌륭한 재즈 전문가도 많아서 콘텐츠가 딱히 뛰어났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중요한 건 제 진짜 애정, 진정성이 통했다는 점이죠. 제가 아무런 의도나 계산 없이 해왔던 일이 예상치 못한 선물로 돌아왔으니까요.
현모 그죠! 살면서 그런 순간들이 가장 행복한 거 같아요.
영대 이번 일로 얻게 된 조금 어이없는 결론은 세상에 무쓸모는 없구나예요.
현모 그럼요.
영대 어떤 일이든 나중에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고, 포인트는 애초에 쓸모를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 놀라운 쓸모를 가져온다는 거죠.
현모 완전 공감해요. 스티브 잡스가 엉뚱하게도 서체를 연구하는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고 인생을 바꾼 제품을 내놓은 것처럼요.
영대 ㅎㅎㅎㅎ 저는 갑자기 인생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늘 비슷비슷한 일만 하다가 간만에 신선했어요.
현모 아, 저도 비슷한 예가 있어요. 제가 올해 아무 이유 없이 도자기 공방을 열심히 다녔잖아요. 그러다 도자기 관련 콘텐츠를 촬영하게 된 거 아세요?
영대 진짜로요??
현모 네. ‘공예주간’이라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공예 축제가 있는데, 난데없이 연락이 와서 홍보 영상을 찍게 됐답니다. 도자기 만드는 모습으로요!
영대 와, 도예하시는 게 거기까지 소문난 거예요?
현모 아뇨?! 주최 측도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저를 섭외한 거였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개인적으로 도예에 푹 빠져 있었으니, 그쪽에서도 완전 두 팔 벌려 환영한 거죠. 적임자 찾았다면서요. 영대 님 사례랑 조금 다르지만, 전공 분야가 아닌 취미 영역에서 무언가 작은 보상이랄까, 성취감을 맛본 것 같아서 일적인 성취 이상으로 기뻤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약간의 보너스 같은 거였으니까요.
영대 바로 그거죠. 매일 직업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꾸만 부족한 부분에 눈이 가서 좌절하게 되고, 웬만한 성과에도 오롯이 만족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반대로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들은 사소하고 작은, 혹은 우연한 성취에도 뿌듯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현모 일 측면에도 긍정적인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기도 하고요.
영대 아무튼, 무엇이든 내가 정성을 들이는 대상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다시금 깨달은 교훈이에요.
현모 후훗. 우리가 매주 정성스럽게 ‘싱크로니시티’를 연재하는 것도 언젠가 깜짝 놀랄 결과로 연결될 수 있겠죠?
영대 음, 엮어서 책 낼까요?
현모 에이, 그건 우리가 애써 의도적으로 만드는 거고요.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야죠.
영대 ㅎㅎㅎㅎ 어차피 미래 운명은 미리 알 수 없으니까, 일단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열심히, 꾸준히 계속하는 것밖엔 없겠네요.
현모 정답! 재즈가 좋으면 재즈를, 도예가 좋으면 도예를!!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