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으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검찰 무력화’ 및 파쇼정권의 논리
대검 감찰권 박탈도 채동욱 전 총장처럼 정치적 악용 여지
대통령 인사권, 직제령 개정 남용 못 하도록 제도적 장치 필요
[뉴시스]
검찰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그동안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고, 국민적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개혁은 불가피하다. 검찰개혁 목표는 ‘정권의 검찰’을 ‘국민의 검찰’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정치권력이 함부로 검찰 수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하고, 검찰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검찰의 책임도 그것에 상응해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공정한 수사 없이는 正義가 사라진다”
조 장관은 취임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법무부 장관의 검사인사권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또한 법무부 감찰관실을 강화해 검사에 대한 감찰을 강화하고, 현재 대검찰청이 담당하는 1차적 검사 감찰권도 박탈해 법무부가 직접 감찰권을 행사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제한할 수 있도록 전국 검찰의 특수부를 폐지하는 계획도 추진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신속히 구체적인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지시했으며, 자칫 항명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서인지 대검찰청은 하루 만에 개혁 추진 방안을 내놓았다. 이렇듯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조 장관의 검찰개혁안의 배후에는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전폭적 지원, 검찰개혁에 찬성하는 적잖은 국민 여론이 있다. 검찰 역시 공개적으로 반대할 경우에 예상되는 부담 탓인지 조 장관의 개혁드라이브에 끌려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검찰개혁의 당위성이 있다고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모든 조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조 장관의 검찰개혁이 문제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은 개혁의 이름만 빌렸을 뿐 결코 개혁으로 볼 수 없다. 조 장관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실체는 사실 ‘검찰의 정치권력 예속 강화’ ‘검찰의 무력화 시도’가 본질이다.
정치권력의 검찰에서 국민의 검찰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대통령의 검사인사권을 제한하고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이유는 검찰의 직무가 준사법적 성격을 띠고 불편부당함과 공정함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검찰 독립의 중요성은 장 루이 나달 전 프랑스 검찰총장이 언급한 “검찰의 독립이 없으면 공정함이 없고 공정함이 없으면 정의도 없다”는 말에 함축돼 있다.
나치 경험한 프랑스, 독립기구에 검사인사와 징계 맡겨
조 장관은 ‘선출된 권력이 인사권으로 무소불위의 검찰을 통제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얼핏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이는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와 파시스트 정권하의 이탈리아가 가졌던 논리다. 검찰과 법원의 정치도구화로 참혹한 역사적 폐해를 경험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헌법을 개정해 사법권 보장을 위한 독립기구로 최고사법평의회를 신설했다. 이 평의회로 하여금 판검사에 대한 인사와 징계를 관장하게 해 정치권력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한 것인데 스페인, 벨기에, 브라질, 칠레 등도 이를 도입했다.법무부가 추진하겠다는 검사 감찰권 행사도 문제다. 검사의 비리와 부정은 일반인보다 훨씬 엄격하게 조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 법무부가 검사 감찰을 직접 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정권의 뜻을 거스르며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밀어붙이자 법무부가 채 총장의 혼외자 문제를 감찰하겠다고 발표했고, 그는 그 직후 사임했다. 법무부의 검사 감찰권 행사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프랑스는 법무부 감사관실에서 검사 감찰을 담당한다. 대검찰청에 감찰부서가 없기 때문이다. 현직 고등검사장이 감사실장을 맡고 있으며, 35명 내외의 판검사가 감사관으로 근무한다. 중요한 것은 검사의 비위 사실을 감찰할 때도 감사관인 판검사의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된다는 점이다. 조직상 법무부에 소속돼 있지만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없다. 법무부 감사관실의 감찰 조사가 끝나면 최고사법평의회의 의견을 듣고 법무부 장관이 징계를 내린다. 법무부 감사기구의 독립성과 최고사법평의회의 견제가 검사 감찰의 악용을 막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법무부가 검찰 특별수사를 줄이고 특수부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도 제도적으로 검찰의 독립성이 매우 취약하다는 증거다. 각 검찰청의 조직은 직제령으로 불리는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의한다. 검찰 특수부의 설치나 폐지도 위 규정의 개정을 통해 이뤄진다. 문제는 검찰청 직제가 국회 심의를 거치는 법률이 아닌,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국무회의를 통해 개정할 수 있는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고자 헌법 제64조와 제65조에 검찰조직에 관한 사항을 조직법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조직법(Loi organique)은 우리에게 없는 개념으로, 헌법과 법률의 중간 단계 지위를 갖는다. 조직법을 개정하려면 사전에 헌법위원회의 위헌 심사를 거쳐야 하고 상원과 하원의 가중다수결이 필요한데, 이는 일반 법률 개정보다 강화된 요건이다. 우리의 검찰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검사 인사를 명분으로 수사팀 공중 분해시킬 우려”
10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집회. [박해윤 기자]
문재인 정권과 조 장관이 검찰개혁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일까. 검찰을 무력화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을 이용해 중국식 공안통치 체제로 가려는 의도가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 직속 ‘사찰수사기구’로 성격이 변질된 공수처와 정보·수사가 결합된 중앙집권적 경찰을 대통령의 인사권으로 통제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공수처와 경찰의 수사에 대한 검사의 지휘 및 사법 통제는 배제되고, 검찰은 제한된 직접 수사권과 공소 유지 기능만 보유한 채 권한이 축소될 것이다.
검찰개혁은 반드시 이뤄야 할 시대적 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검찰개혁의 각론은 다른 문제다. 결국 조 장관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실체는 매우 위험하다. 검찰제도는 국민의 인권과 형사사법시스템 전반에 관한 문제인 만큼 부분적인 혁신도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검찰이 가진 반부패 수사 등 국가적인 범죄 대응 역량 역시 손상돼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이 국민을 위한 개혁인 동시에 국민 모두의 동의하에 신중히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