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사 23층에 자리한 미래금융그룹에 걸린 유니콘. 내부에서 유니콘 기업을 배출할 수 있을 정도로 혁신을 도모하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이다. 4월부터 대만 일부 영업점에서 KEB하나은행의 디지털머니 ‘하나머니’로 간편결제할 수 있게 됐다. 최근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하나멤버스 애플리케이션의 ‘환전지갑’ 서비스(왼쪽부터). [홍중식 기자, ‘하나멤버스’의 모바일 앱 화면 캡처]
해외여행? 환전 안 해도 OK
4월 23일 대만 타이신금융그룹 사옥에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하나멤버스 대만결제 시범서비스’ 론칭 기념 행사가 열렸다. 하나금융은 해외결제 서비스를 위한 ‘글로벌 로열티 네트워크(Global Loyalty Network)’ 사업을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제공 · 하나금융그룹]
KEB하나은행은 이러한 ‘여행의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은행이다. 먼저 하나금융그룹(하나금융) 통합멤버십 ‘하나멤버스’의 모바일 앱에 출시된 ‘환전지갑’ 서비스를 보자. 이 서비스로 미국 달러, 엔화, 유로화, 위안화 등 12개 외화를 구입할 수 있다. 과거 은행들은 우수 고객에게만 환율 우대 서비스를 제공했다. 환전지갑은 다르다. KEB하나은행의 우수 고객이 아니어도, 심지어 이 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에게도 40~90% 환율 우대를 제공한다.
구입한 외화는 KEB하나은행 영업점을 방문해 찾아간다. 환전지갑은 ‘당일 신청, 당일 수령’을 모토로 내건다. 일반 영업점에서는 오후 3시 전까지만 신청하면 그날 바로 외화를 찾을 수 있다(영업시간은 오후 4시까지). 밤 9시까지 문을 여는 인천국제공항 영업점에 갈 예정이라면 방문 전까지만 환전 신청을 완료하면 된다. 환전지갑 서비스는 ‘카카오페이’와 ‘토스’ 앱에도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로 제공돼 있다.
하나금융과 KEB하나은행은 4월 국내 최초로 전자지급수단 해외결제 서비스를 대만에서 개시했다. 하나멤버스의 디지털머니 ‘하나머니’를 대만 내 주요 가맹점에서 사용하는 시범 서비스가 시작된 것. 하나멤버스 회원은 별도로 환전하지 않아도, 또 신용카드가 없어도 대만 최대 면세점 에버리치와 대형마트 RT마트, 야시장, 편의점 등에서 하나머니로 결제할 수 있다. 이 같은 해외결제 서비스는 조만간 태국, 베트남, 일본에서도 개시될 예정이다. 특히 태국에서는 300만 가맹점에서 하나머니로 결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태국 내 웬만한 곳에선 하나머니가 다 통한다고 봐도 되는 셈이다.
‘손님 중심의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 하나금융은 지난해 10월 ‘디지털 비전 선포식’을 개최하고 미래 비전을 금융회사가 아닌 정보회사로 설정했다. 선포식에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디지털 시대에도 ‘손님의 기쁨’이라는 금융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며 “미래의 하나금융은 데이터를 활용해 손님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의 데이터와 외부시장의 정보를 수집, 분석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시장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에 은행의 명운을 걸겠다는 뜻이다.
“고객 생활에 금융을 입힌다”
하나금융의 맏형, KEB하나은행은 3월 지성규 은행장 취임 이후 정보회사를 향한 ‘액션플랜’에 본격 돌입했다. 정보회사가 되겠다는 것은, 달리 말해 금융회사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한준성 KEB하나은행 미래금융그룹 부행장은 “과거 은행이 고객의 금융에 생활을 입혔다면, 앞으로는 고객의 생활에 금융을 입히겠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은행이 각종 금융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에게 부가적으로 생활의 혜택과 편리함을 주던 것에서 벗어나, 고객 생활 속에 더 편리하고 혜택이 많은 금융 상품·서비스를 갖다놓겠다는 뜻이다.이러한 전략 아래 KEB하나은행은 당장 주력할 키워드로 ‘여행’과 ‘결제’를 택했다. 환전지갑이나 해외결제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서비스다. 특히 KEB하나은행은 3년 전부터 해외결제 서비스를 위한 ‘글로벌 로열티 네트워크(Global Loyalty Network·GLN)’ 사업 준비에 매진해왔다. 대한항공이 속한 스카이팀, 아시아나항공이 속한 스타얼라이언스는 항공사끼리 마일리지를 공유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GLN도 마찬가지다. GLN에 속한 제휴사끼리 가맹점을 공유한다. 이번 대만의 해외결제 서비스도 KEB하나은행이 이끄는 GLN에 대만 타이신금융그룹이 참여해 이뤄졌다. KEB하나은행은 올해는 아시아 국가에서 GLN 서비스 개시에 주력하고, 내년부터는 북미와 유럽으로 그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물론 한국인만을 위한 네트워크는 아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대만 여행자가 한국에서, 또 일본이나 베트남에서 본국의 간편결제 등 결제수단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 소비를 추구하는 요즘 소비자들에게 환율이 한 푼이라도 유리한 ‘환전 타이밍’은 고급 정보다. 그렇다고 바쁜 업무나 공부를 제쳐두고 환율 정보 검색에 매달릴 수만은 없는 일. 이 점에 착안해 환전지갑은 ‘목표환율 설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미 달러 1150.1원 이하 알림’이라고 설정해놓으면, 미 달러가 1150.1원으로 내려앉은 순간 푸시(PUSH) 알림이 스마트폰에 뜬다. 또 환전한 외화를 가상의 모바일 지갑에 보관하는 셈이기 때문에 쌀 때 사서 비쌀 때 되파는 환테크도 가능하다. 이러한 기능으로 환전지갑은 최근 75만 건의 환전 횟수를 돌파하는 등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나원큐, ‘컵라면 대출’로 변신 시동
컵라면이 익는 3분 내에 대출 한도와 금리를 산출해주는 모바일 전용 ‘하나 원큐 신용대출’은 출시 3주 만에 취급 금액 2000억 원을 돌파했다. 지정석을 없앤 스마트 워크 시스템이 도입된 KEB하나은행 미래금융그룹 사무실과 하나금융 통합멤버십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하나멤버스’(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제공 · 하나금융그룹, 홍중식 기자, ‘하나멤버스’의 모바일 앱 화면 캡처]
KEB하나은행은 6월 10일 하나원큐 신용대출을 출시하면서 ‘컵라면 대출’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와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컵라면이 익는 3분 내에 대출 한도와 금리를 제시해준다. 직장 정보, 보유 자산 등 다양한 데이터를 자동 반영해 대출 한도와 금리를 산출해주는 것. 최대 대출 한도는 2억2000만 원으로, 주요 시중은행 모바일 신용대출 가운데 가장 높고, 금리는 최저 연 2.792%(6월 10일 기준, 급여이체 등 부수거래 조건 충족 시)로 신용대출 금리로는 낮은 편이다. 이 대출상품의 취급 금액이 출시 3주 만에 2000억 원을 돌파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편이다.
KEB하나은행은 2015년 6월부터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하나 원큐 애자일 랩’(원큐 랩)을 운영하고 있다. 4월 출범한 8기 10개 회사를 포함해(표 참조), 그간 64개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해 다양한 협업과 성공 사례를 낳았다. 마인즈랩(대표 유태준·4기)과 인공지능(AI) 대화형 금융플랫폼 ‘하이(HAI) 뱅킹’을 공동개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AI 알고리즘과 온라인 편의성을 결합한 자산관리 서비스 ‘하이(HI) 로보’를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대표 김형식·5기)와 공동개발한 것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육성 스타트업, 직접 ‘사냥’ 나서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에 위치한 ‘하나 원큐 애자일 랩’에서 입주 스타트업인 그루트코리아의 오병엽 대표(왼쪽)가 KEB하나금융그룹 미래금융그룹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원큐 랩이 여타 은행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육성·협업 대상 스타트업이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 나선다는 데 있다. 김온실 KEB하나은행 미래금융전략부 차장은 “오픈 이노베이션과 스타트업 투자를 전담하는 7명의 인력이 여러 기업을 만나고, 기술 변화를 추적하며, 업계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유망한 스타트업을 모셔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루트코리아는 블록체인 합의 알고리즘과 새로운 개념의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를 결합한 메인넷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것이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전통 금융과 접목시키기 좋은 기술로 평가받는다. 오병엽 그루트코리아 대표는 “KEB하나은행과 함께 GLN의 송금 관련 서비스를 개발 중”이라며 “새로운 기술이 기존 은행과 결합해 원활하게 운영되고 현행 규제도 만족시키는 성공 사례를 KEB하나은행과 함께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융 서비스가 고객 일상생활에 녹아들려면 ‘킬러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최근 그중 하나로 각광받는 것이 아이돌봄과 교육. 이에 원큐 랩도 여러 관련 업체를 물색하다 자란다를 최종 낙점했다. 강서정 자란다 대표는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돌봄 공백이 생겨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고자 창업에 나섰는데, 그러한 취지에 여성 인력 비중이 높은 은행이 적극 공감해주고 있다”며 “현재 KEB하나은행과 다양한 협업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면서 기업 ‘본업’에 대한 정의도 달라지고 있다. 포털서비스 업체 네이버가 간편결제 사업에 적극 나서고, 모바일메신저로 시작한 카카오가 금융과 모빌리티 분야 선두업체로 떠오르고 있다. 한준성 부행장은 “새로운 산업 환경에서 주도권이 소비자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에 은행이 더는 은행으로만 머무를 수 없다”며 “고객과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때, 제대로 제공하는 정보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인터뷰 | 한준성 KEB하나은행 미래금융그룹 부행장
“고객 생활 여정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기로 했다”
[홍중식 기자]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이끄는 조직임에도 이름에 ‘디지털’이 없다.
“기술 발전으로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거기에 적응하면서 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것이 미래금융그룹의 역할이다. 최근 흐름에 맞춰 디지털 관련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지만, 어느새 ‘디지털 전담’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졌다. 이제 은행 내 모든 조직이 디지털을 해야 한다.”
은행이 정보회사가 되겠다고 하니 좀 낯설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은행은 은행이 아니다. 30, 40대는 급여통장 계좌와 주거래은행을 좀체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20대는 웹툰을 보다가도 좋은 혜택을 준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급여통장 계좌를 바꿔버린다. 이들은 카카오뱅크와 KEB하나은행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굳이 구분 지을 필요도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은행은 손님의 ‘생활 여정’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객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편의점에, 여행에, 자녀교육에 은행을 갖다놓아야 한다.”
생활 여정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수집하나.
“생활금융R&D셀을 만들었다. 여기서 우선 12개 카테고리를 만들고 소비자의 연령, 지역, 소득 등 특성을 고려해 이들의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집을 살 때는 어떤 여정을 거치는지, 모빌리티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파악하며 그 과정에 금융 서비스를 어떻게 녹일 것인지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 수익은 여전히 대출 이자나 펀드에서 나온다.
“어떤 기업이든 가진 것을 버리기를 두려워한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마차 회사를 생각해보자. 계속 마차 영업만 고집하거나, 천천히 자동차 쪽으로 사업을 전환했을 것이다. 하나금융은 빠르게 옮겨가자고 판단했다.”
하나원큐 신용대출이 인기인데, 그래도 고객에게 여전히 중요한 것은 낮은 금리다.
“내가 하나원큐 신용대출에 ‘3분 대출’이라고 이름 붙이자 직원들이 ‘그러면 컵라면 대출이라 하자’고 하더라.(웃음) 이 컵라면 대출의 한도나 금리가 가장 유리하다고 자부한다. 1년 반 정도 기존 ‘하나멤버스론’ 데이터를 가지고 머신러닝을 통해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했다. 소득을 추정하는 변수와 경우의 수를 많이 늘려 고객들이 좋은 조건에서 대출받을 수 있게 했다. 앞으로 오픈 API를 통해 외부에서도 하나원큐 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하나원큐 앱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고도화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시킬 계획이다. 자세한 전략은 아직 말할 수 없지만, 마치 새 차를 사는 것 같은 아주 즐거운 느낌을 주고자 한다.”
혁신 내재화로 역량 키워
얼마 전 소위 ‘키움뱅크’가 금융위원회의 인터넷전문은행 심사에서 탈락했다.
“우리가 키움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한 것은 재무적인 투자 정도의 의미였다.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 크게 전략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글로벌 로열티 네트워크(GLN) 사업의 향후 구상은.
“2016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미국 은행들을 만났는데, ‘너희가 뭔데 이런 사업을 하려고 하지?’라는 반응을 보고 이게 참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확신했다. 해외 파트너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최근 3년간 많은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 GLN을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국내에도 비자, 마스터카드 같은 ‘글로벌 페이먼트 허브’가 생기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보기술(IT) 전문가를 많이 영입하는 여느 은행들과 달리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듯하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IT와 디지털 역량을 내재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왔다. 모바일뱅킹을 비롯해 KEB하나은행이 국내 은행권 최초로 시행한 서비스가 많은데, 바로 이러한 내재화된 혁신 DNA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상품 기획부터 결과까지 내부 조직에 맡겨 경험을 쌓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에 대한 인사이트가 생긴다. GLN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온 사업 모델이다. 필요하면 외부 인재를 영입하지만, 직원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업점 직원에게 코딩을 가르치고 데이터분석 교육 과정을 듣게 한다. 강남 코딩학원에도 등록시킨다.(웃음)”
스타트업과의 협업 및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처음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개시했을 때는 육성할 만한 좋은 스타트업이 계속 나올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갈수록 실력 있고 아이디어 좋은 스타트업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핀테크(금융+기술)뿐 아니라 손님의 생활 여정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과 협업을 앞으로 더 강화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