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고양이의 진료비는 가축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 [shutterstock]
이에 최재관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이 직접 나섰다. 최 전 비서관은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을 가축으로 정의한 기존 제도가 시대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현 가축법은 정부가 식용견 사육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동물보호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개를 가축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가축 범주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개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축 범주에 들어 있으면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잃어버렸을 때 추적이 가능하고, 불법 도축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소, 말, 양처럼 동물 질병 예방 및 치료비용을 보전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는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미개하다고 맞선다. 개와 고양이는 반려동물이지 가축이 될 수 없는데, 일부 이익단체가 비용을 핑계로 동물권을 다시 후퇴시키려 한다며 반박하고 있다.
현행법상 개는 절반은 가축, 고양이는 가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가축을 정의하는 법률은 ‘축산법’과 ‘축산물 위생관리법’ ‘가축 및 축산물 이력관리에 관한 법률’ 등 세 가지다. 그 외에 동물 전체에 관한 법률인 ‘동물보호법’이 있다. 고양이는 이 세 가지 가축 관련법에 관련 조항이 없다. 동물보호법의 보호만 받는다. 하지만 개는 축산법상 가축으로 분류돼 있고,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가축 범주에서 빠져 있다.
이름만 잠깐 가축일 뿐 손해는 없을 것
실제로 개는 현행법상 일부 가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가축이 누리는 권리는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가축으로 분류된 소, 돼지, 양 등은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주인은 가축이 태어나자마자 등록하고, 살던 곳을 잠시 떠날 때도 신고해야 한다. 이동 경로가 확실하니 잃어버렸을 때 금방 주인을 찾아줄 수 있다. 주인이 기르던 가축을 버렸을 때도 주인을 찾아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하다.물론 동물보호법상 반려견도 분양과 동시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제가 제대로 지켜진다면 유기견 발생을 막을 수 있겠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반려견용 식별장치는 피부 밑에 심는 내장형과 목걸이처럼 다는 외장형이 있다. 하지만 일부 견주는 소형견에 내장형 식별장치를 심는 것을 꺼린다. 작은 개의 피하에 식별장치를 넣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인식 때문. 한 수의사는 “견주는 대부분 피하 등록표(내장형 식별장치)보다 목걸이형(외장형 식별장치)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장형은 내장형에 비해 유기 예방 효과가 적다. 유기하기로 마음먹고 등록표를 떼버리거나, 개를 훔쳐 목걸이를 뗀다면 주인을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게다가 등록하지 않아도 적발 시 과태료 300만 원을 내면 된다. 2014년 동물등록제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유기 동물은 많다.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 집계에 따르면 2014년 버려진 동물은 8만1147마리였지만, 2017년에는 10만2593마리까지 늘었다. 이 때문에 등록 체계가 확실한 축산물 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 나온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은 고기나 알을 먹는 식육용 가축에게 적용되는 법률이다. 그래서 식육용 개 사육농가인 육견업체가 가축 편입론을 줄곧 내놓고 있다. 개도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가축으로 분류해 관리해야 한다는 것. 이들은 개고기를 유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일부 업체의 잔인한 도살, 비위생적인 사육 방법이 문제라고 본다. 현재 개는 축산법상 가축이라 도살은 가능하다. 하지만 식육용 가축이 아니기 때문에 도살장을 규제하기가 어렵다. 이에 개를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가축으로 편입시켜 육견농장이나 도살장에 대한 관리·감독 및 규제를 강화하자는 것.
육견업계 관계자는 “개를 기르는 농가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식용견에 대한 법적 규제를 확립하면 반려견에게도 이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축산 관련 전문가들도 육견업체와 비슷한 의견이다. 유기견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시적으로 가축 범주에 두는 편이 낫다는 것. 또한 불법도축이나 동물학대도 막을 수 있으니 오히려 개에게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축산 관련 법률 전문가는 “어차피 식육견 사업은 저물고 있다.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수요가 빠르게 줄고 있어 머지않아 자연히 사라질 산업이다. 따라서 가축 범주에 개가 들어간다면 식육용 가축의 권리는 그대로 누리면서, 도축은 점점 줄어들다 종국에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식육견이 아니라 애완용 반려견을 키우는 견주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해 6월 개 도살 금지법에 대해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개 도살 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응답은 51.5%, 찬성 응답은 39.7%(무응답 8.8%)로, 개고기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5개월 만에 여론이 뒤집혔다. 11월 같은 주제로 다시 조사하자 찬성 44.2%, 반대 44.3%(무응답 12.1%)로 근소한 차이지만 찬성 측 의견이 좀 더 많았다.
“가족을 가축이라니 어불성설”
6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이 개 식용 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관리 외에도 가축 범주 편입의 장점은 또 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가축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다. 게다가 규모가 큰 농장은 책임 수의사가 있어 지속적으로 건강 이상을 잡아낼 수 있다. 반면 반려견은 정기검진도 받기 어렵다. 일단 비용 부담이 크다. 병원마다 검진 비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웬만한 검진을 전부 받으면 보통 20만~
30만 원이 소요된다. 동네에 버려진 개를 입양한 전모(33) 씨는 “항체, 혈구, 혈청, 엑스레이 등 기본 검사에만 20만 원 가까이 들었다. 그래도 (개가) 별다른 이상이 없어 다행이었다”고 밝혔다. 한 수의사도 “길에서 유기견을 데려오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비용이다. 개에게 질병이 있으면 상황에 따라 몇백만 원이 들기도 하는데, 개를 구출해온 사람에게 그 비용을 지불하라고 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밝혔다.
몇억 원짜리 말은 진료비 몇만 원, 개는 100만 원 호가
소, 돼지 등 식육용 가축은 비교적 엄격한 등록과 방역을 거친다(오른쪽). 식육용으로는 거의 사육되지 않지만, 가축 범주에 들어 있는 말은 진료비가 개나 고양이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shutterstock]
2017년 12월 한국수의임상포럼이 발표한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단순 진료비만 2만 원에 육박하는 동물병원도 많았다. 평균 진료비는 1만 원 선. 가장 저렴한 병원의 진료비가 4000원 선이었다.
진료 후 치료에 들어가면 비용은 급등한다. 경기 일산의 이모(28·여) 씨는 지난해 반려견이 아파 동물병원을 찾았다. 관절에 문제가 생겨 치료를 했는데 수술하지 않았는데도 100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이씨는 “그나마 수술을 안 해도 돼 다행이었다. 몇 군데 동물병원을 돌며 알아봤는데, 수술하면 300만~400만 원이 들 것이라는 곳이 많았다”고 밝혔다.
수의학계는 이에 대해 산업동물과 반려동물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산업동물은 원래 수익을 목적으로 기르는 동물이다. 그래서 치료비가 비싸면 농가에서는 치료를 포기할 개연성이 높다. 이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동물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지원해준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기르는 사람이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크다. 이 부분이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일각에서는 반려동물 치료비를 두고 사람보다 더 든다며 과하다고 하는데, 사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만 반려동물은 아니다. 반려동물 관련 보험이 발달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축산정책 관계자는 “반려동물 인구만 따로 추리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보험 지원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말같이 식육 목적이 아닌 산업동물은 가축 범주에 있어 ‘말산업 육성법’ 등의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개나 고양이에게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