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만보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가와바타 야스나리
허연 지음/ 아르테/ 300쪽/ 1만8800원
우리 시대 대표 작가가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 떠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열 번째 책. 시인이자 신문기자인 허연이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발자취를 좇으며 그의 문학세계를 음미했다. 대표작 ‘설국’의 무대가 된 에치고유자와 마을을 면밀히 답사하고 그의 생가가 있는 오사카, 그가 성장한 이바라키, 말년을 보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마쿠라를 더듬는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세 살 때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천애 고아. 극한의 허무 속에서 하이쿠와 선불교에 심취한 채 지극히 일본적인 미학을 건져 올린 가와바타의 내면을 향한 터널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그 밖에 서 있는 필자를 만나게 된다.
청소년, 세상에 서다
차광진 지음/ 책과나무/ 340쪽/ 1만6000원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다. 저자는 다양한 인생 경험은 물론, 깊은 학식을 통해 청소년에게 조언을 던진다. 저자는 동양철학을 전공했으나 전공지식 외에도 서양철학과 각종 사회 규범 등을 통해 청소년의 바람직한 가치관 형성을 돕는다. 머리말에서 논문처럼 썼다고 했지만, 청소년 시각에 맞춰 내용은 평이하게 구성했다. 철학 이야기만 늘어놓은 책이라면 다 큰 어른이라도 지루함을 참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중간 중간 재밌는 일화와 신문기사를 양념처럼 배치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웃어른을 대하는 방법도 여기저기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 있다.
북촌의 네버랜드
서채홍 지음/ 사계절/ 192쪽/ 1만3800원
서울 한복판, 북촌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다섯 식구의 평범한 듯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이들은 여름이면 좁지만 아늑한 마당에 텐트를 치고 야영한다. 삼청공원을 뒷마당 드나들듯 산책하고, 사계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비싼 완구나 교구 대신 나무를 깎아 팽이를 만들어 놀고, 아빠표 고무동력 배와 쌍절곤, 활과 화살 등으로 색다른 체험을 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노라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북디자이너인 작가가 종이 접는 법, 손바닥책 만드는 법, 아빠표 교구 만드는 법을 중간 중간 설명해놓아 참고할 만하다.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제임스 글릭 지음/ 노승영 옮김/ 동아시아/ 383쪽/ 2만 원
오늘날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된 시간여행이 처음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1894년 H. G. 웰스가 발표한 SF소설 ‘타임머신’이라고 한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1905년 빛의 속도만 절대적일 뿐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독일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1908년 3차원에 시간을 더한 4차원의 개념을 발표하기 10년 전후의 세기말에 탄생했다. 그 전까지 시간은 인간의 상상력 안에서도 공간과 더불어 범접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과학전문기자로 명성을 쌓은 제임스 글릭이 과학과 인문이라는 ‘두 문화’(C. P. 스노의 책 제목)를 가로지르며 시간 개념이 어떻게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현기증 나게 설파한다.
세기의 셰프, 세기의 레스토랑
킴벌리 위더스푼 · 앤드류 프리드먼 편집/ 김은조 옮김/ BR미디어/ 368쪽/ 1만6000원
당신은 국제회의 참석자 3200명을 위한 만찬의 메인 메뉴로 바닷가재 요리를 선보이려는 총괄 셰프다. 그런데 만찬 13시간 전, 전날 잡아 삶은 뒤 잘라놓은 바닷가재가 몽땅 상해버렸다는 연락을 받는다면? 이는 1995년 11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총괄 셰프는 멍청한 작자가 아니라, 분자요리 창시자인 ‘엘 불리’의 페란 아드리아였다. 이 책은 세계적인 셰프 40인이 직접 쓴 에세이를 엮었다. 세기의 셰프들이 주방에서 겪은 재앙과 유쾌한 극복기가 펼쳐진다. 아드리아의 위기 탈출법은 책에서 확인할 것. 다만 이것만은 기억하자. 삶은 바닷가재를 스티로폼에 넣은 채 냉장고에 두면, 스티로폼이 냉장고의 한기를 차단해 바닷가재가 상해버린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