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LNG 운반선. [사진 제공 ·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을 인수할 의사가 없다고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에 통보함에 따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 후보자로 최종 확정됐다(Tip 참조). 이에 업계에서는 인수가 성사되면 한국 조선업계가 빅3 체제에서 ‘슈퍼빅1+빅1’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세계 1위(현대중공업)가 2위(대우조선)를 인수, 매머드급 조선사가 되면서 3위(삼성중공업)와 격차를 더욱 벌려놨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 지주회사 산하로 편입된다(그림 참조). 지주회사와 조선산업 회사들 사이에 중간 지주회사 격인 조선합작법인이 새로 만들어지고, 이 조선합작법인이 현대중공업 사업회사,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 등 4개 조선사를 거느린다. 산업은행은 조선합작법인 지분 약 7%와 1조2500억 원의 우선주를 보유하며 조선합작법인의 2대 주주가 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인력 감축되지 않겠나”
인구 1만 명 내외의 어촌마을 경남 거제를 인구 25만 명의 세계 최고 조선업 도시로 바꿔놓은 양대 주역 가운데 하나인 대우조선이 ‘울산의 현대’ 우산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조교수는 대우조선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출간한 저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오월의봄)에서 거제를 ‘오로지 조선업을 위한 도시’라고 정의한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그리고 거제와 그 인근에서 기자재와 블록을 제작해 공급하는 광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거제시 취업자의 절반(46.3%)을 차지’하고 ‘(조선업 관련) 관리자,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사무 종사자, 기능·기계조작·조립 종사자를 합치면 전체의 3분의 2가량’이 되기 때문이다.대우조선이 현대가(家)로 입성하면 압도적 1위의 공룡 조선사가 탄생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건조능력은 각각 763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도크 16개), 309만CGT(도크 6개)로 양사 합계 1000만CGT를 가뿐히 넘기면서 삼성중공업(297만CGT·도크 8개)을 3배 이상 격차로 따돌리게 된다. 조선 3사의 주력 상품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LNG선)과 VL탱커(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의 양사 합산 세계시장 점유율도 50% 이상이다(그래프 참조). 현대중공업-대우조선의 LNG선 건조량은 290척으로 삼성중공업(145척)의 2배, VLCC 건조량은 384척으로 전 세계 VLCC 선박량(751척)의 50%를 웃돈다(수주 잔고 포함).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에서는 국내 빅3 조선사의 저가 수주 경쟁이 해결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나온다. 저가 수주 경쟁은 3사의 수익성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협력업체로 그 부담이 전이돼 협력업체 경영난을 가중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형조선사가 3개에서 2개로 재편되면서 경쟁 강도가 완화돼 출혈 경쟁이 제거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이 조선산업을 개시한 이래 처음 있는 ‘대형조선사 빅딜’을 앞두고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1980년대 두 차례 조선사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했던 일본이 오히려 후발주자 한국에 조선업 패권을 빼앗긴 전철을 한국이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양사 노조 모두 인력 구조조정을 걱정하며 이번 인수를 반대하고 나섰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후 조선업의 무게 중심이 울산으로 기울면서 거제지역 조선 관련 산업 기반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크다. 거제지역 노동단체, 시민사회, 정당 등은 ‘대우조선해양 매각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1월 31일 대우조선 민영화 방안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모두 인력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단계고, 이미 수주 물량을 상당히 확보한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필요성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의 생각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대우조선 관계자는 “두 회사의 주력 선박이 비슷하기 때문에 중복된 부분에 대한 구조조정이 없을 수 없을 것”이라며 “법인을 별도로 유지하더라도 현대중공업에서 대우조선으로 인력을 파견하고, 대우조선의 우수 인력을 현대중공업으로 데려가는 것이 얼마든 가능하기에 자연스럽게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우조선은 현재 37척의 LNG선, 31척의 VLCC를 확보해놓은 상태다. 당분간 일감이 없어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와 관련해 “연구개발(R&D) 통합, 중복 투자 제거,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재료비 절감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현대중공업은 선박을 일괄 수주해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에 일감을 나눠주고 있는데, 대우조선도 이런 체제에 편입되면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력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독점 허들 걸려 인수 무산될 수도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동아DB]
거제를 중심으로 한 경남지역의 조선업 생태계가 대우조선 매각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은 개별 기업 주가에도 반영되는 분위기다. 주로 대우조선에 선박용 엔진을 공급하는 경남 창원 소재 HSD엔진의 주가는 대우조선 매각 계획이 발표된 1월 31일 20% 가까이 급락했고, 2주가 지난 2월 중순에도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엔진사업부를 별도로 갖고 있는 만큼 향후 대우조선으로부터 엔진 주문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주마다 선호하는 엔진회사가 있긴 하지만 결국 단가 등을 고려해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 엔진을 주로 사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거의 반세기 동안 세계 1위 조선업 국가였다. 세계 1~7위 조선사가 모두 일본 기업인 때도 있었다. 그러나 1997년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연간 수주량 1위에 오르면서 세계 조선업 주역이 교체된다.
일본이 조선업 패권을 잃게 된 원인으로는 1980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지목된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85년 플라자 합의(G5 경제선진국의 환율에 관한 합의)를 계기로 한 엔고로 일본 조선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자 일본은 조선업을 사양 산업으로 간주하고 정부 주도하에 생산능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에 나선다. 기업 간 인수합병 및 폐업 등도 활발하게 진행돼 61개였던 조선소가 1982년 44개, 1988년 8그룹 26개 회사로 줄어든다. 일본 조선업이 축소되는 빈틈을 한국 조선업이 파고들었다. 일본에서 해고된 기술 인력이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 조선업의 기틀을 닦았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이러한 일본의 실패를 따라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문영대 경남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당장의 재무적 성과를 위해 대우조선 인수 후 생산설비와 인력을 감축하면 중국과 일본이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대우조선 핵심 설계 인력이 현대중공업으로 흡수되거나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같은 하청기업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짜 빅2’ 체제 만들고 국내 해운업도 키워야
대우조선해양이 건제조한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사진 제공 · 대우조선해양]
한편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인수가 성공하려면 현대중공업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유럽, 미국 등 주요 시장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LNG선, VLCC 합계 수주 잔고 점유율은 50%를 넘어선다. 경쟁국인 일본이나 중국이 충분히 독과점 이슈를 제기할 만한 상황인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경쟁을 저해하고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영향력을 위한 담합과 합병을 반경쟁적 행위(anti-competitive practices)로 규정한 대목도 이번 인수 건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무현 연구원은 “양사가 합병하면 수주 경쟁이 완화되고 선가가 회복될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WTO의 경쟁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경쟁 완화와 선가 회복을 강조할수록 경쟁 국가들에게 WTO 제소 근거와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에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다”고도 말했다. 피인수 대상이 된 대우조선이 당분간 영업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기 어려워짐에 따라 반사이익을 얻고, 대우조선 기술력을 실사해볼 기회도 갖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업계 사람들은 이번 빅딜로 한국 조선업이 변곡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 변곡점을 지나 한국 조선업이 위로 향할 것인지 아래로 떨어질 것인지는 앞으로 하기에 달린 문제다. 문영대 교수는 “이번 빅딜이 성공하면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이는 삼성중공업도 가만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삼성중공업이 중형조선사들을 인수합병해 규모를 키워 ‘슈퍼빅’ 현대중공업 그룹에 맞대응하도록 하는 것이 한국 조선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비단 조선업의 불황에 대비한다는 측면에서뿐 아니라 점차 고도화되는 글로벌 물류 서비스업에 도전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국내 해운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일본과 중국은 자국 발주 선박 비율이 각각 70%, 30%대에 이를 정도로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갖추고 있다(2011년 기준). 반면 한국은 거의 전량을 외국 선주의 발주에 의존하고 있어 조선업 불황기에 입는 타격이 크다. 대우조선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용환 교수는 “이번 빅딜의 성공 여부는 개별 기업의 이익 확대가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조선업의 성장에 따라 5~6년 이후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Tip 대우조선해양 매각 절차
KDB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0월부터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 인수 건에 대한 물밑 협상을 벌여왔다. 산업은행이 새로 설립하는 현대중공업 지주회사 산하 조선합작법인에 대우조선 지분(56%)을 현물 출자해 2대 주주(지분 7% 및 우선주 1조2500억 원)가 되고,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에 1조2500억 원의 우선주를 지급하며,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1조2500억 원을 추가하는 것이 주요 내용.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이와 같은 인수 협상을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는 유력한 인수의향자와 조건부 인수계약(수의계약)을 맺고, 잠재적인 인수의향자에게 의사를 물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쪽과 계약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이 2월 11일 대우조선 인수 의향이 없다고 공식 통보함에 따라 현대중공업이 인수후보자로 확정됐다.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과 본 계약 체결을 승인받기 위한 이사회를 3월 초 개최할 예정이다. 이사회 승인이 나면 대우조선 현장실사를 거쳐 본 계약이 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