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수주 크게 늘었다? 2013년 대비 절반도 회복 못 해
대형 조선사 低價 수주 탓에 하청업체는 적자 납품
일자리亂 여전 … “고급 인력 유출로 조선산업 붕괴할라”
정부가 지원 권해도 은행이 복지부동 … “선수금환급보증(RG) 등 금융 애로 해소해야”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칸정공에서 한 근로자가 선박 의장품을 제작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2차’ 없는 유흥거리
경남 창원의 대표적 번화가인 상남동 고인돌사거리. [박해윤 기자]
11월 26일 오전 상남동 유흥거리에서 만난 김봉준(44) 씨의 말이다. 20년 넘게 주류총판 일을 해온 그는 “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업소에선 테이크아웃 커피점 관련 전화가 오갔다. 권리금을 더 낮춰달라는 매수인과 더는 낮출 수 없다는 매도인 간 줄다리기다. 이 부동산공인중개업소 김모 대표의 말이다.
“권리금 2000만 원에 인테리어 비용 4000만~5000만 원을 들였는데, 장사가 통 안 되니까 6개월 만에 가게를 접으려는 겁니다. 500만 원 손해를 감수하고 권리금 1500만 원에 내놨는데, 들어오려는 사람은 1000만 원까지 깎자고 해요. 요즘 같은 때 장사가 잘될 거라 확신할 수 없으니까. 1억5000만 원 하던 식당 권리금도 60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별도리가 없습니다. 이 일대에 노래방이 1000여 개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고요.”
같은 날 저녁 경남 거제 중심가인 고현동의 식당거리. 한창 저녁식사를 할 시간임에도 한 닭갈비식당은 휑했다. 두 팀이 식사 중이었는데, 그마저도 한 팀은 식당 주인 빈영조(59) 씨의 친구들이었다. 바로 마주한 곱창집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빈씨는 “이 식당을 16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면서 “그간 벌어놓은 돈을 까먹으며 버티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거제가 조선업으로 먹고사는 곳 아닙니까. 조선업에 불황이 닥친 뒤 다들 밖으로 빠져나가니까 인구가 계속 줄고, 유동인구는 더 줄고 있습니다. 요새 선박 발주를 많이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던데,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하나도 안 들어요. 그렇다고 삼성(삼성중공업)이나 대우(대우조선해양)가 직원을 더 뽑는 건 아니니까. 주52시간 근무제? 그거 때문에 지금 조선소에 다니는 사람들도 밥 사 먹거나 술 마시러 오지 않아요. 아파트 가격도 집마다 최소 1억 원씩 내렸으니 누가 돈을 쓰겠습니까. 이 시간에 식당마다 빈자리가 없던 것도 이제 다 옛날얘기죠.”
고현동과 이웃한 장평동에 들어선 주상복합아파트는 입주가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상가를 채우지 못해 여전히 썰렁한 모습이다. 2층 상가는 한낮에도 어둑할 정도고, 목 좋은 1층에도 빈 점포가 여럿이다. 바로 옆 비즈니스호텔 건물도 1층의 빈 점포 유리창에 ‘임대 문의’를 크게 써 붙여놨다. 이 호텔의 한 직원은 “호텔을 오픈하고 1년 10개월이 지나도록 1층 상가가 비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현동에서 아웃도어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윤상찬(61) 씨는 기자에게 “조선업에 봄이 온다고 누가 그캅니까”라고 되물었다.
“수주량 증가? 낙관 일러”
[박해윤 기자]
경남 거제 장평동에 자리한 삼성중공업. [박해윤 기자]
경남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공장 매매’ 현수막을 붙여놓은 한 공장(왼쪽). 2년 가까이 비어 있는 거제 장평동 한 호텔 건물의 1층 상가. [박해윤 기자]
창원산단의 맥박이 약해지고 있음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창원산단의 7월 가동률은 84%로 전국 국가산업단지 평균(80.8%)을 상회하는 수준이지만, 종업원 50인 이하 소형 업체의 가동률은 71.7%에 불과하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적정 가동률이 80%인데, 그 밑으로 한참 떨어진 것이다. 이 지역 조선업 관계자는 “체감 가동률은 그보다 더 낮다”며 “자동차까지 업황이 좋지 않아 요즘 창원산단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산단의 한 조선 기자재업체 대표 A씨는 “대형 조선사의 사내 협력사도 부도 직전이다. 대형 조선사는 당연히 사내 협력사부터 살리고자 한다. 최근 나아진 수주 실적이 외부 협력사에게까지 활력을 가져다주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산단 조선업의 맏형이라 할 STX조선해양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4월 노사가 합의해 제출한 자구계획안을 채권단 대표인 KDB산업은행이 수용함으로써 법정관리는 막았지만, 대형 조선사들과 달리 선박 수주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8월 STX조선해양은 대만, 홍콩, 그리스 선사 등으로부터 총 2억400만 달러(약 23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선박 6척 수주를 따냈으나, 산업은행이 선수금환급보증(RG · Tip 참조)을 거부해 이 계약을 포기하고 말았다. 무급휴직도 이곳 직원들의 큰 근심거리다. 4월 임직원 1000여 명은 2개 조로 나눠 향후 5년간 6개월씩 번갈아 무급휴직하기로 채권단과 약속했다. 올해 첫 휴직 기간에는 정부의 무급휴직 지원금(월 최고액 180만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내년 두 번째 휴직 때는 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윤종옥 STX조선해양노조 교육선전부장은 “무급휴직 지원금마저 없으면 많은 직원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창원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무급휴직 기간을 줄이는 방안 등을 회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조선사 중심인 거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박 수주가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삼성중공업은 구조조정 마무리 단계에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아직 구조조정 및 매각 과제를 안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채권 은행들에게 올해 안으로 인원을 9000명 미만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는데, 현재 임직원이 9900여 명이다. 서둘러 1000명 가까운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 삼성중공업에서 가까운 한 주유소의 직원은 “조선 경기가 살아난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며 “이 동네 가게들의 간판 네온사인으로 밤에도 환했는데, 보다시피 지금은 컴컴하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玉石 잘 가려내야 하는데…
경남 거제지역 실업자들이 거제 조선업희망센터에서 실업급여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박해윤 기자]
거제의 선박 의장품업체 칸정공의 박기태 대표는 이러한 처지를 “뒤에서 호랑이가 쫓아오는데, 앞은 낭떠러지인 격”이라고 표현했다(인터뷰① 참조).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납품가 때문에 납품할수록 적자가 불어난다는 것. 최근 계약한 선박 수주 중 상당수가 저가(低價)인 데다, 대형 조선사들의 자금 형편도 녹록지 않아 협력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적자 납품’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 대다수 조선 협력업체의 입장이다. 시설투자 등을 하느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어느 정도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은행이 자금 회수에 나서기 때문이다.
조선업 경력만 30년이 넘는 B씨는 주요 조선 관련 부품을 국산화하고, 유럽·중동 등 새로운 수출처를 개척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바 있다. 그런 그조차도 “요즘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여기저기 자금 융통을 알아보러 다니느라 바쁘다. 조선업종에 불황이 닥치자 은행들이 서로 대출금을 회수하려고 달려들어 최근 2년간 250억 원을 거둬갔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신규 투자도 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투자자가 투자 조건으로 ‘신규 투자금을 회수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은행으로부터 받아올 것을 요구하는데, 은행 측이 그러한 확약서를 써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STX조선해양 사례에서 보듯, 은행이 RG 발급에 깐깐한 것도 큰 걸림돌이다. 은행이 수세적으로 나오는 데는 선박 건조대금 지급 방식이 헤비테일(Heavy Tail)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즉 과거에는 선수금으로 10%를 주고 공정에 따라 잔금을 몇 차례 나눠 지급했는데, 최근에는 10%의 선수금만 지급하고 완공한 선박을 인도할 때 나머지 90%를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은행 입장에선 그만큼 리스크가 커진 셈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기존 중소형 조선사 RG 프로그램 규모를 10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확대하고, 70억 원 이상 중형 선박에도 RG 발급이 가능하도록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나영우 경남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이사장은 “경쟁력 없는 업체는 도태되는 것이 맞지만, 살아남아야 할 업체도 낮은 납품단가와 금융권의 몸 사리기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라고 전했다. 창원시 창원경제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재관 경남대 기계자동화공학부 교수는 “조선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 부정적인 것이 걱정”이라며 “조선업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이때야말로 옥석을 잘 가려 RG 등 금융 지원을 투입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영영 조선산업 재기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산중공업과 STX엔진 출신인 문영대 경남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일부 선박 종류를 제외하고 현 선가(船價)는 경기가 한창 좋을 때와 비교해 절반 값도 안 되는 수준이다. 경기가 좋을 때 쌓아올린 유보자금으로 이 시기를 버텨야 하는데, 대형 조선사조차 자금이 말라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고 진단하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협력업체들을 살려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조선업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 부품(기자재) 공급라인이 해체되면 중국이나 동남아 등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이 경우 물류나 품질, 납기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또한 처음에는 물류비를 감안하더라도 더 저렴할 수 있지만, 국내에 대체할 공급라인이 없을 경우 값이 비싸도 사 올 수밖에 없게 된다. 조선 협력업체들도 ‘한국 조선업’이란 배에 탄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조선업 일자리는 여전히 ‘꽁꽁’
“물량팀은 사라졌습니다. 올해 들어 거제지역 조선업 종사자가 더는 줄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신규 채용이 늘어날 것 같진 않아요.”(윤철민 거제 조선업희망센터 소장·인터뷰2 참조)조선산업은 고용 창출 능력이 우수한 업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조선업은 매출 10억 원당 6.6명을 고용한다. 제조업 평균 6.3명보다 조금 많다. 여기에 더해 조선업은 ‘서민 일자리’다. 조선업 근로자의 88%가 기능직이고 대졸 이상 비중이 10.8%, 연구개발(R&D) 직군에 종사하는 석·박사급 인력은 1.2%에 그친다. 하지만 3년 전 조선산업 위기로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2015년 20만3300명이던 전국 조선업 종사자 수가 올해 3월 기준 10만3000명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10명 중 7명은 조선업에 종사한다는 거제의 경우 고용보험에 가입된 조선업 피보험자 수가 2016년 1월 10만여 명에서 올해 7월 7만3000여 명으로 27%가량 줄었다. ‘물량팀’이란 조선업 분야 일용직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로, 윤철민 소장에 따르면 요즘 거제에서 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물량팀을 고용할 만큼 일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선박 수주 증가세는 다시금 조선업 일자리 훈풍을 가져올까. 이를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추가 구조조정을 앞두고 대우조선해양 노사가 씨름하고 있는 데다, 대형 조선사들의 형편이 고용을 확대할 정도로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제 고현동에서 만난, 남편이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에서 일하는 오모(29) 씨는 “남편이 지난 5년간 직장을 서너 차례 옮겼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의 상사들도 ‘좋은 자리가 나면 얼른 옮겨가라’고 조언한다”며 “나도 남편도 고향이 거제지만, 이제는 기회가 된다면 고향을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 싱가포르 등 타국으로 ‘조선업 일자리’를 찾아 떠난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문영대 교수는 “한국 조선산업을 되살리려면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우수 인력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며 “구조조정 압박에도 우수 인력을 잡아둘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어렵다고 조선업 분야 우수 인력을 해외 등으로 유출하면 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데 사용하는 대형 크레인을 예로 들었다. 중국에서 저가에 대형 크레인을 공급하자 국내 중공업계는 관련 부서와 인력을 줄였고, 현재는 이 분야 산업이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문 교수는 “이제 항만용 대형 크레인은 중국 업체가 부르는 게 값이 됐다”고 전했다.
거제 사람들은 거제가 나라를 세 번 구했다고 말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옥포 앞바다에서 벌인 옥포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뒀고,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로 내려온 북한 피란민들을 포함해 15만 명의 피란민이 거제에서 전쟁을 버텨냈다. “그리고 외환위기 때 거제의 조선산업이 나라를 구했다”고, 거제 유람선업체에서 일하는 김성현 씨는 말했다. 그는 “하지만 앞으로 한 번 더 거제가 나라를 구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만큼 거제 사람들의 의욕이 많이 꺾여 있다”고 덧붙였다. 나영우 이사장은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늦은 감은 있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며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시행하고 업계가 노력한다면 2020년부터는 어느 정도 조선업이 회복되지 않겠느냐”고 희망을 내비쳤다.
조선산업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언제, 어떤 형태로 찾아오게 할 것인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인터뷰 1 | 박기태 ㈜칸정공 대표이사
“돈줄 죄기 나선 은행 좀 말려달라”
[박해윤 기자]
“최근 꼼꼼히 분석해봤다. 원재료비, 가공비, 소모품, 관리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원가가 100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익률을 3%로 잡는다면 원청으로부터 103원을 받아야 하는데, 96원만 준다고 한다. 납품할수록 적자가 불어나는 구조다.”
원청의 횡포인가.
“저가에 선박 수주 계약을 체결한 탓이다. 또 자신들도 자금 여력이 없고. 협력업체들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지만 자기들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거다.”
저가 계약을 지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제적으로 선가(船價)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선박 건조 노하우가 쌓일수록 선박 제작비용도 낮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히려 그 비용이 높아져버렸다. 비단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줘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원자재 등을 납품받는데, 그 비용이 전체적으로 다 올랐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굉장히 크다.”
정부가 최근 중소 조선사와 조선 기자재업체들에 대한 금융 지원 계획을 밝혔다.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본다. 그간 정부의 금융 지원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은행이 복지부동이니까 아무런 효과도 나지 않았다. 조선업황이 안 좋다고 하니까, 옥석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자금을 회수하려 든다. 자금 회수를 당하지 않으려면 적자를 보더라도 일정 매출 수준을 유지해야 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납품해야 한다. 뒤에서 호랑이가 쫓아오는데, 앞은 낭떠러지인 격이다.”
정부가 1조 원 규모로 LNG연료추진선을 발주하기로 했다.
“별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본다. 엔진 등 주요 장비와 강재 구매에 제작비의 60%가 들어간다. 엔진은 GE(제너럴일렉트릭) 등에서 수입하고, 강재는 포스코 등 철강회사에서 사 오는데, 이들이 갑이다.”
타개책은 없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회사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알루미늄 선박 제작에 뛰어들었다. 기존 철강 선박보다 가벼워 운송비가 덜 들고, 100%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알루미늄 제작 기술과 관련한 국책 연구과제에 참여해 기술을 개발하고 싶지만 그게 어려워 답답하다.”
왜 참여할 수 없나.
“지원 자격이 ‘유동비율 50% 이상’이다. 유동비율은 유동부채 대비 유동자산으로 산출하는데, 조선업에 위기가 닥치자 은행이 대출을 몽땅 단기대출(유동부채)로 바꿔버렸다. 우리 같은 조선 협력업체들은 유동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정부에 바라는 바는.
“납품단가 현실화를 도와줬으면 한다. 또 금융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 일례로 ‘조선 펀드’도 투자 기준으로 높은 유동비율을 제시한다. 앞서 말했듯, 조선업종은 유동비율이 높을 수가 없다. 또 유동비율이 높으면 뭐 하러 펀드 투자를 받겠나. 은행 가서 돈을 빌리지. 기술력이 있음에도 돈줄이 말라 불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기업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
인터뷰 2 | 윤철민 거제 조선업희망센터 소장
“기간제, 최저임금 일자리도 마다 않는 분위기”
[박해윤 기자]
“거제 조선업희망센터에 하루 평균 300여 명이 찾아오는데, 그중 80%가 조선업에 종사하다 실직한 분들이다. 2016년 1월부터 조선업 쪽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올봄부터 7만3000명 규모로 매달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다만 앞으로 고용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진 않다. 대형 조선사들이 채용을 늘리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조선업 실직자의 재취업 현황은 어떤가.
“전국적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와중에 재취업에 성공하는 비율이 30%가량인데, 거제지역은 40%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재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거제 가정의 전형은 이렇다. 남편은 조선소에서 밤낮 없이 일하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전업주부 아내가 살림과 육아를 맡는다. 이 때문에 거제의 합계출산율은 조선업 불황 전에는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남성들의 재취업 욕구가 상당히 높다. 당장 먹고살 돈을 벌어야 하니까. 원청업체에 있던 사람들이 하청업체에 들어가기도 하고 기간제, 비정규직 등 예전보다 여건이 좋지 않은 일자리도 수용한다.”
취업에 나서는 주부도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하지만 거제는 여성이 주로 취업하는 서비스 일자리 비중이 22%에 불과하다는 점이 애로사항이다(전국 평균은 34%). 10월 거제에 새로 오픈한 한화리조트가 객실 청소를 할 직원 70명을 채용하기 위해 우리 센터에서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일자리인데도 700여 명이 몰렸다.”
직업훈련 욕구도 크다고.
“올해 들어 직업훈련에 사용하는 내일배움카드 발급이 지난해 대비 60% 증가했다. 하지만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한정적인 점이 아쉽다. 특히 남성들이 중장비 운전 기술을 배우길 원하는데, 거제에서는 배울 데가 없어 부산이나 통영으로 가서 배우고 있다.”
한시적 조직인 조선업희망센터가 내년 상반기까지 또 연장될 예정이다.
“연말에 고용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되면 내년 상반기까지 만 3년간 운영되게 된다. 고용노동부 고용복지센터에 지방자치단체 등 여러 기관이 협조하는 조선업희망센터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특히 실업으로 자신감을 잃은 분들에게 일대일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많은 분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최근 선박 수주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일자리가 늘어날 것 같은가.
“거제의 조선업 일자리는 대형 조선사가 창출하는데, 이들이 고용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다만 단기 일자리는 약간 늘어날 것도 같다. 최근 삼성중공업 협력사 몇 군데가 합동으로 선박 건조 선행 작업을 맡아줄, 300명 규모의 기간제 일자리 채용설명회를 열었는데 400명 넘는 사람이 찾아왔다. 여전히 구직(求職)이 구인(求人)보다 많다. 일자리 훈풍은 좀 더 기다려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