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브렉 우드커터스 시라즈(왼쪽)와 토브렉 스트루이. 사진 제공 · 신동와인
시라즈는 원래 프랑스 남부 론(Rhone) 지방 태생으로 그곳에선 시라(Syrah)라고 부른다. 론에서 만든 시라 와인에서는 블랙커런트 같은 검은 베리향에 후추의 매콤함, 베이컨에서 나는 듯한 육질향이 느껴진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 산도가 강하고 바이올렛 향이 살짝 풍긴다. 세련된 멋이 있는 와인이다.
그런 시라가 호주에서 시라즈로 정착하면서 검은 과일향이 더욱 진해지고 후추의 톡 쏘는 매콤함은 감초처럼 달큼하고 부드러운 매운맛으로 변했다. 보디감은 묵직해지고 산도는 조금 낮아져 다가가기가 더 편한 와인이 됐다. 론의 시라 와인이 기품 있는 귀족 같다면 호주 시라즈 와인은 속정 깊은 친구 같다고나 할까.
이제 시라즈는 명실공히 호주를 대표하는 품종이다. 호주 곳곳에서 자라지만 가장 뛰어난 시라즈 와인을 만드는 곳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 주에 위치한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다. 이곳은 척박한 토양에 덥고 건조한 날씨로 유명하다. 한 해 강수량이 550mm가 넘지 않고 가문 해에는 300mm가 채 되지 않는다.
여름 한낮 기온이 35도가 넘지만 큰 일교차 덕에 포도는 진한 과일향을 얻으면서도 산도를 잃지 않는다. 늙은 포도나무가 많아 수확량이 적지만 그 때문에 열매에는 훨씬 더 많은 향이 녹아 있다. 바로사 밸리 시라즈가 유난히 진한 색상에 농익은 검은 과일향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민트나 유칼립투스 같은 허브향을 머금어 결코 둔하지 않은 맛을 보여준다.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오른쪽)과 농부의 손 안에 담긴 시라즈 포도. 사진 제공 · 토브렉 웹사이트
와인 한 병에는 생산지의 기후, 토양, 와인을 만든 사람 등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바로사 밸리 시라즈를 한 모금 머금어보자. 지구 반대편 그곳에 가지 않아도 진한 과일향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묵직한 타닌에서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을, 거친 듯 부드러운 질감에서 사람들의 소박한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