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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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차별 않는 사회적 기준 필요”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교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12-07 10: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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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환자 차별 않는 사회적 기준 필요”

    조영철 기자

    2008년 서울 삼성서울병원이 ‘암교육센터’를 처음 만들었을 때 많은 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병원에서 암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교육한다고?’ 하는 의구심이었다. 책임자로 갓 서른 된 조주희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학박사(현 성균관대 의대 융합의과학과 교수·사진)를 영입하자 수군거림이 더 커졌다. 조 교수는 “당시만 해도 ‘암’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때다. 그 단어와 젊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기관이 오래 갈 수 있을까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는 이가 적잖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8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많은 종합병원이 암정보교육센터, 암지식정보센터 등 암환자에게 특화된 정보 제공기관을 설치했다. 암환자가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의료처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암치료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조 교수는 그 분야 전문가로 여전히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암보다 무서운 암환자에 대한 편견

    “제가 암교육센터에서 처음 한 일 중 하나가 ‘엄마가 암에 걸린 아이’를 위해 동화책을 만드는 거였어요. 엄마가 암에 걸리면 가정에 큰 변화가 생기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 상황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거든요. 보통은 쉬쉬하거나 ‘엄마가 좀 아픈데 곧 나아질 거야’ 정도로 얘기하는데, 상황이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는 갑자기 변한 엄마와 달라진 집안 분위기 때문에 혼자 상처받고, 그런 아이를 보며 엄마는 더 큰 고통을 겪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조 교수는 동화책 제목을 ‘우리에게도 알려주세요. 나도 힘이 되고 싶어요’라고 붙였다. 그리고 암이 감기와 어떻게 다른지, 왜 갑자기 엄마의 머리카락이 빠졌는지, 엄마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지 등 아이 시선에서 궁금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잔잔한 그림과 함께 풀어냈다. 이야기를 쓰는 일에는 조 교수를 비롯한 암전문가들이 참여했고, 그림도 암 전문 간호사 출신 일러스트레이터가 맡았다. 이 책은 암환자 가족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아이에게만이 아니다. 많은 암환자가 자신의 투병 사실을 배우자에게, 이웃에게, 직장동료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걱정한다. 알려야 할지 말지부터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조 교수는 “여전히 암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에 두껍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심영목 성균관대 의대 교수와 함께 2012년 ‘정신종양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암과 암환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조사 연구’에 따르면, 당시 연구 대상이 된 1011명 가운데 71.8%가 ‘암환자는 사회에 큰 기여를 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56.1%는 ‘암을 진단받은 사람은 치료 후 건강이 회복되더라도 직장에서 업무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여겼다.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암환자와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한 경우도 42.3%나 됐다. 이 논문은 당시 미국 하버드의대에서 ‘이 주의 논문’으로 선정할 만큼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조 교수는 2013년 ‘정신종양학회지’에 발표한 또 다른 논문을 통해 암환자들도 암에 대한 편견을 내면화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전국 암생존자 466명 가운데 49.4%가 ‘암치료 후 건강이 회복돼도 업무 능력이 예전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조 교수는 이에 대해 “암이 치료하기 힘든 병인 건 사실이지만 완치가 불가능한 병은 결코 아니다. 존스홉킨스대 유방암센터의 경우 유방암 환자였던 의사가 센터장을 맡고 있다”며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는 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암환자의 직장 및 사회 복귀를 돕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능한 직장인이 암에 걸리면 치킨집 사장이 되거든요. 자영업자가 나쁜 게 아니라, 한창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자기 자리에서 내몰리는 게 문제죠.”
    조 교수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암환자의 우울감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치료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암생존자가 100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들을 돕는 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더 많은 이와 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암환자와 암생존자들의 삶을 소개해야 한다고 믿는다. 2013년 유방암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스마일 어게인’을 기획, 촬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 영화 ‘베테랑’ 등에 참여한 조성민 프로듀서가 친동생이라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성생활도 포기하지 마세요”

    조 교수가 유방암 환자를 영화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또 있다. 이 암이 의학적 질병일 뿐 아니라, 환자의 여성성 등에 영향을 미쳐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회심리학적 질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암환자의 성생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유방암, 자궁경부암 등에 걸린 여성이나 전립샘암, 고환암 등에 걸린 남성은 어디 터놓고 말하지도 못한 채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성생활은 행복한 삶의 기본 요소이고, 삶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을 북돋는 구실을 할 수 있는 만큼 암환자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좀 더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치료 가운데 일부는 성생활에 어려움을 일으킬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자궁경부암 치료를 위해 자궁을 적출하면 질의 길이가 짧아지죠. 여기에 방사선치료를 추가로 받는 경우 짧아진 질이 위축돼 성관계를 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파트너가 성생활을 시도하면서 계속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생활이 가능하거든요. 의료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내용을 터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방법을 찾을 수 없죠. 환자와 파트너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조심스러워 하느라 자기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 건,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힘들게 만드는 겁니다.”
    조 교수의 말이다. 그는 “사랑이 담긴 성생활은 환자의 투병 의지를 높이고 생존율도 높인다”며 “성생활을 통해 암이 상대에게 전염되지 않고, 성생활 때문에 암이 재발하지도 않는다. 다만 항암화학요법 중 임신할 경우 등 의료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만큼 의료진과 상의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암에 걸렸다 건강을 회복한 분이 정말 많아요. 버스를 탔다고 생각해보세요. 승객이 한 50명 있죠. 그중 1명이 암생존자일 수 있습니다. 현재 건강한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은 더 높아요. 10명 중 2명이니까, 자신이 일하는 부서에서 한두 명은 암에 걸린다고 봐야 하는 겁니다. 왜 우리가 암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암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암환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시겠죠.”
    그래서 조 교수는 앞으로도 ‘암교육’에 계속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그는 “암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 잘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 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차별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더 늦기 전 그것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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