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한 카드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 요구로 카드수수료를 인하하면 비용을 줄이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수익을 개선하는데, 그럼 정부가 또 수수료를 내려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 되기를 반복해왔다는 뜻이다.
2007년 이후 정부는 10차례에 걸쳐 가맹점이 부담하는 신용카드수수료를 인하해왔다. 2007년 8월 이전 4.5%이던 수수료율은 현재 연매출 규모에 따라 0.8%에서부터 2.3%까지 차등 적용된다. 최근에는 지난해 7월과 올해 7월 수수료가 인하됐다. 그런데 정부가 또 수수료를 낮추겠다고 나섰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는 “카드수수료율을 0%대로 만들자”는 말까지 나온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소상공인의 반발이 거세지자, 소상공인·영세사업자 부담 완화책의 일환으로 카드수수료 인하가 거론되는 것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한, 카드수수료 종합개편 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상태다. 여기서 결정된 수수료율은 2019년 1월부터 3년간 적용된다.
“견실한 수익 구조” 對 “앞날이 막막하다”
이번에는 카드업계가 가만히 있지 않을 조짐이다. “할 만큼 해왔다. 더는 못 한다”는 분위기다. 7월 24일에는 김덕수 여신금융협회장과 각 카드사 최고경영자(CEO)의 긴급 회동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수수료 인하를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업계 입장을 정부 측에 정식으로 전달하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카드업계 입장을 어떤 형식으로 정부에 전달할지 내부 논의 중”이라며 “올해 하반기까지는 시간이 있는 문제라 회원사 의견을 좀 더 모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카드업계에 위기의식이 팽배한 것은 최근 업계 수익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BC카드를 제외한 7개 전업카드사(롯데·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카드)의 당기순이익은 2015년을 고점으로 계속 하락하는 추세로, 2017년에는 1조5000억 원대 아래로 내려앉았다. 총자산순이익률(ROA) 역시 같은 기간 계속 하락세다. 올해 일사분기 당기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크게 떨어졌다(그래프 참조). 신한카드는 4018억 원에서 1381억 원, 하나카드는 500억 원에서 255억 원으로 줄었다. 업계는 수수료율이 인하되고 좀 더 저렴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가맹점이 확대된 점, 마케팅 비용 증가 등을 수익성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한 카드업계 간부는 “시중은행들은 최대 호황기를 누리는데, 카드사들은 여느 때보다 사정이 어렵고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며 “여기서 또 수수료율을 낮추라는 것은 사업을 접으라는 말이나 매한가지”라고 토로했다.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신용대출 부문에서 수익이 나 버티고 있다”며 “하지만 신용대출 부문은 경기 상황에 따라 언제든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카드사는 본업인 신용 판매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드업계는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금융위원회(금융위)는 그다지 어려운 형편이 아니라고 본다. 6월 26일 열린 카드사 CEO 간담회에서 최종구 금융위장은 “최근 카드사 경영 실적이 견실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금융위는 카드사 당기순이익이 2015년과 2016년 2조 원, 2017년 2조2000억 원이라는 통계 수치를 제시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카드사 수익성은 나빠지지 않고 오히려 개선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이 집계한 1조2000억 원(2017년 BC카드 포함, 8개 카드사 당기순이익)과 1조 원이나 차이가 난다. 금융위는 국제회계기준(IFRS), 금감원은 금융위가 정한 감독규정을 기준으로 대손충당금을 달리 반영했기에 생긴 차이다. 대손충당금을 늘리면 당기순이익이 줄고 대손충당금을 줄이면 당기순이익이 늘어난다. 금융위 감독규정이 IFRS보다 엄격해 금감원에 잡힌 카드사 당기순이익 규모가 훨씬 작은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카드사 수익성은 국제적 회계기준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지만, 카드업계 측은 “금융위 감독규정에 따른 통계가 업계 현실에 더 가깝다”는 입장이다. 수수료 인하 찬반(贊反) 의견에 따라 정부와 카드업계가 들이미는 회계자료가 다른 셈이다.
반복되는 카드수수료 논란에 이어 아예 의무수납제를 폐지하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의무수납제란 ‘여신전문금융업법’에 규정된 것으로, 신용카드 가맹점은 고객이 신용카드로 결제하고자 할 때 거부하지 못하도록 한다. 카드수수료를 고객에게 전가하는 것도 금한다. 이처럼 법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는 대신, 정부는 카드수수료 인하로 영세 가맹점의 부담을 줄여왔다.
그간 카드업계는 의무수납제 폐지에 부정적이었는데, 카드수수료가 낮아질 대로 낮아지자 “차라리 의무수납제를 일부 폐지하고 수수료 추가 인하를 막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비자 편의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의무수납제를 개선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무수납제, 이번엔 폐지되나
자영업자들도 의무수납제 폐지에 찬성한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모든 가맹점의 수수료율을 동일하게 해 소상공인이 대형 가맹점보다 더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든가, 의무수납제를 폐지해 소상공인 가맹점의 수수료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용카드를 언제나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게 한 의무수납제는 신용카드에 법정 통화의 지위를 부여한 격”이라며 “의무수납제 폐지로 카드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7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카드수수료 빅딜’이 거론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이 “카드사에 신규 업권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영세 · 중소상공인 가맹점 수수료를 시원하게 없애는 빅딜을 하자”고 제안하자 최종구 금융위장이 “우리도 그렇게 검토하고 있다”고 화답한 것이다.
카드사가 새롭게 진출할 사업으로는 신용평가 사업과 빅데이터 활용 사업이 거론된다. 카드사들은 신사업 허용이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수수료와 맞바꿀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현재 3개 회사가 과점시장을 형성한 신용평가 사업은 전체 규모가 5000억 원밖에 되지 않아 카드사들이 새로 뛰어들어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사업도 아직 구체적인 수익 모델이 보이지 않는다. 한 카드사 간부는 “마케팅이나 신상품 개발에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독자적인 수익 모델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올해 추진 중인 ‘금융 분야 데이터 활용 및 정보보호 종합방안’의 일환으로 카드사에 빅데이터 관련 서비스를 장려할 계획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금융위 신용정보팀 관계자는 “빅데이터와 관련해서는 이견이 많아 정리가 필요하다”며 “하반기 간담회를 통해 카드사에 빅데이터 관련 신사업으로 무엇이 가능한지 안내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