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크 앤 엔리크 와이너리. 일반 와이너리와 달리 지상층에서 열기로 와인을 숙성시킨다. [사진 제공 · ㈜아베크와인]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배에 남아 있던 와인을 맛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와인이 상하기는커녕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서였다. 배가 적도를 지나는 동안 화물칸에 있는 와인이 찜통 열기 속에서 맛있게 익은 것이었다. 이때부터 마데이라섬에서는 열 숙성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붕 밑 다락에 배럴을 두고 아열대의 뜨거운 기후를 이용해 와인을 숙성시켰다.
숙성 잠재력이 좋아 100년 이상 버틴 마데이라 와인. 엔리크 앤 엔리크 베르델류 15년산과 엔리크 앤 엔리크 세르시알 15년산(왼쪽부터). [사진 제공 · ㈜아베크와인]
보알, 말바시아(Malvasia), 베르델류(Verdelho), 세르시알(Sercial)은 마데이라 와인을 만드는 네 가지 고급 품종이다. 세르시알은 네 가지 중 단맛이 가장 적다. 과일향이 상큼하며 허브와 미네랄향이 은은하다. 산도가 높고 보디감이 가벼워 스타일이 경쾌하다. 베르델류는 세르시알보다 달고 맛이 부드럽다. 단맛, 신맛, 보디감의 균형이 적당하면서 말린 오렌지, 꿀, 호두 등 향미가 달콤하고 고소해 마데이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인기가 많다.
보알은 당도가 제법 높고 묵직하며 향의 복합미도 뛰어나다. 말린 자두, 캐러멜, 커피 등 농익은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고 와인을 마신 뒤에는 달콤한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말바시아는 가장 달고 묵직한 스타일로 디저트 와인의 최고봉이다. 여러 가지 말린 과일, 볶은 견과류, 꿀, 초콜릿, 커피 등 향의 농축미가 탁월하고, 마신 뒤에도 진한 여운이 끝없이 입안을 맴돈다. 과일 케이크와 곶감에 세르시알이나 베르델류, 견과류를 얹은 파이와 초콜릿에 보알이나 말바시아를 곁들이면 근사한 디저트가 된다.
마데이라는 일반 와인과 달리 세워서 보관할 수 있다. 알코올 도수가 20도 정도로 높고 10~20년간 공기와 접촉하며 열기로 숙성시켜 산화될 염려가 없다. 뚜껑도 위스키처럼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남은 와인은 냉장고에 보관하며 오래 즐길 수 있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며 휴식을 취할 때 견과류와 함께 차게 식힌 마데이라 한 잔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자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될 것이다.
엔리크 앤 엔리크의 보알, 말바시아, 베르델류, 세르시알은 모두 10만 원대이며 아베크와인숍에서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