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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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푸른 밤의 빛나는 별이 돼버린, 그대는 우리의 자랑이었죠

김종현·1990. 4. 8~2017. 12. 18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7-12-26 16: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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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SM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SM엔터테인먼트]

    “푸른 밤 종현입니다. 내일도 쉬러 와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1155일 동안 MBC FM4U ‘푸른밤 종현입니다’를 통해 청취자에게 위안을 주던 ‘쫑디’ DJ 종현(김종현)의 마무리 멘트였다. 서늘한 밤공기 같던 그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 

    별은 예고 없이 졌다. 한류를 대표하는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이자 아티스트 김종현으로 살아온 그는 2017년 12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레지던스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19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10여 년 동안 샤이니 멤버로 동고동락한 이진기(온유), 김기범(키), 이태민(태민), 최민호(민호)가 상주로 이름을 올렸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9, 10일 팬들 앞에서 환한 미소로 노래하던 ‘JONGHYUN SOLO CONCERT INSPIRED’(종현 솔로 콘서트 인스파이어드)가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될 줄은.
     
    12월 20일 오후 그의 빈소를 찾았다.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에 내리자 검은색 코트나 패딩 차림에 이어폰을 꽂은 여성이 많이 보였다. 종현의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이었다. 그들을 따라 걷다 보니 점차 병원 장례식장이 가까워졌다. 영하의 날씨에도 밖에서 조문을 기다리는 팬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19일부터 일반인이 조문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20일부터는 일반인의 조문이 오후 12시부터 8시까지로 제한됐다. 빈소를 찾은 한 직장인 팬은 “회사에 반차를 내고 그의 마지막을 보러 왔다. 어제는 대성통곡하는 분위기였는데, 오늘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와서인지 다들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조문 시간 때문에 오지 못해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 여행을 왔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고 빈소를 찾은 일본 팬, 히잡을 쓴 채 한쪽에서 눈물을 훔치는 팬 등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교집합은 ‘종현’이었다.

    마지막 솔로 콘서트

    12월 21일 고(故) 샤이니 종현의 발인식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엄수됐다. [지호영 기자]

    12월 21일 고(故) 샤이니 종현의 발인식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엄수됐다. [지호영 기자]

    그는 사라진 별도 아니었고, 잊힌 별도 아니었다. 2005년 SM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돼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종현은 2008년 5월 25일 데뷔한 9년 차 보이그룹 샤이니의 메인보컬이었다. 데뷔곡인 ‘누난 너무 예뻐’부터 큰 인기를 끌며 주목받았고, ‘Ring Ding Dong(링딩동)’ ‘Sherlock(셜록)’ ‘Lucifer(루시퍼)’ 등 수많은 히트곡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의 목소리가 있었다. 2017년도 바빴다. 1월에는 샤이니 겨울 앨범 ‘Winter Wonderland’, 2월에는 ‘FIVE’, 4월에는 솔로 앨범 ‘소품집 : 이야기 Op.2’를 냈다. 

    종현은 평소 여러 방송에서 작곡가가 꿈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2009년 샤이니 미니 앨범 2집 ‘ROMEO’의 타이틀곡 ‘줄리엣(Juliette)’을 작사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발매한 정규 앨범 2집 ‘루시퍼’와 2012년 발매한 미니 앨범 4집 ‘셜록’, 2016년 정규 5집 ‘1 of 1’의 수록곡 등을 작사했다. 2015년 낸 ‘소품집 : 이야기 Op.1’과 2016년 낸 솔로 정규 1집 ‘좋아’에 수록된 곡 대부분을 작사·작곡했다. 2015년에는 작사한 곡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설로 풀어낸 ‘산하엽 : 흘러간, 놓아준 것들’을 내기도 했다. 또한 아이유의 ‘우울시계’와 손담비의 ‘Red Candle’, EXO의 ‘PLAYBOY’, 김예림의 ‘No More’, 이하이의 ‘한숨’ 등을 작사·작곡하며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소통, 사과, 성찰. 그는 이 어려운 것들을 해내는 용기 있는 청년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곧바로 사과했고, 팬이나 안티와 일대일 소통도 주저하지 않았다. BBC·포브스·NPR 등 해외 주요 언론에서도 그를 기리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낸 가수”라고 평가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세월호 사고를 애도하고, 국정교과서를 비판하며, 성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어릴 적부터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온 그는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키우는 강아지의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현하던 그는 2017년 5월 한 남성잡지와 인터뷰에서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행복하려고 한다. 성향 자체가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런 사람은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 대신 성장은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몇 년 전에 술에 취해서 잠자던 어머니와 누나를 깨워 행복하냐고 물었다. 둘 다 행복하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부러웠다.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게…”라며 “나는 안 그런데, 나도 행복하고 싶다며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젠 행복해져야겠어요. 행복해져야 돼요. 행복하려고요.” 

    그는 사망하기 일주일 전 연 콘서트에서 신곡을 공개하기도 했다. 2018년 1월 컴백할 예정이었으나 그것과 관련된 말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콘서트에서 ‘환상통(Only One You Need)’을 비롯해 총 5곡의 신곡을 선보였다. 환상통(헛통증)은 몸의 한 부위나 장기가 물리적으로 없는 상태임에도 있는 것처럼 느끼는 감각을 의미한다. 그는 이 곡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가 사라진 것에서 오는 아픔을 느낄 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만든 곡”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자신이 떠난 뒤 홀로 남을 팬들을 위해 쓴 곡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나간 뒤에 ‘만약’을 가정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지만, 그가 만든 곡들을 들어보니 솔로 앨범은 마치 유언 같은 느낌이었다. 팬들은 유리처럼 깨질 듯한 그의 섬세하고 우울한 감성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 그가 자신의 우울함을 알아달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표현해온 결과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의 공허는 가족이나 샤이니 멤버, 샤월(샤이니 팬클럽)의 사랑으로는 완전히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2008년 데뷔 첫해 인터뷰에서 “28세의 내 모습이 기대된다. 10년 후에는 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멋진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종현. 그의 시계는 27세에서 멈춰버렸다.

    “행복해져야 돼요, 행복하려고요”

    [사진 제공·SM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SM엔터테인먼트]

    그가 SNS에 마지막으로 올린 사진은 11월 20일 록밴드 디어클라우드가 노래한 ‘네 곁에 있어’의 가사다. 그는 생전에 라디오를 진행하며 인연을 맺은 디어클라우드의 멤버 나인에게 장문의 유서를 남겼고, 유족의 동의하에 유서가 공개됐다. 그 아래에는 해외 소녀 팬이 올린 ‘Oppa… wae…(오빠… 왜…)’라는 댓글부터 ‘형의 노래 덕에 군 생활하며 위안을 받았는데 다시는 들을 수 없다니’라며 슬퍼하는 남성 팬, 그리고 ‘우리는 네 덕에 행복했는데 너의 아픔을 헤아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팬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 힘들었으면 그냥 막살지. 나이답게 놀고 연애도 하고 일도 하지 말고 여행도 다니지. 새 친구도 사귀고 새로운 언어도 배우지. 다 지겨우면 그냥 너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지….’ 그에 대한 기사에 달린 댓글의 일부다.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 아이돌로 살면서는 꿈꾸기 어려운 일들이다. 그에게는 모두의 우상으로 살아간 이번 생이 버거웠을지 모르나, ‘블링블링’이라는 별명처럼 팬들은 그를 알고 나서부터 ‘블링블링’한 시간을 보냈음을 이제라도 알아주길 바란다. 

    너무 생각이 많았고, 너무 예민했다. 너무 감수성이 충만했고, 너무 책임감이 강했다. 그랬던 청년은 “그냥 수고했다고 해줘. 이만하면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해줘”라고 말하곤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그가 유일하게 ‘날 위해서 한 일’이 이 선택이었다. ‘수능 금지곡’의 대명사인 ‘링딩동’이나 예능프로그램 단골 등장곡인 ‘루시퍼’도, 그 연령대의 감성으로 불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혜야’나 ‘산하엽’도, 그가 타인을 위로하고자 썼던 ‘하루의 끝’도 당분간은 웃으며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사건의 충격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경우 정신보건센터, 한국생명의 전화(1588-9191), 보건복지부 희망의 전화(129) 등 자살예방 핫라인에 상담을 요청하자. 청소년의 경우 청소년 전화(1388)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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