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4

2014.09.15

남을 위해 쓴 100달러 무한대의 매력

기부의 즐거움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9-15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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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을 위해 쓴 100달러 무한대의 매력

    8월 24일 광주 동부경찰서 소속 의경들이 루게릭병 환자의 치유를 기원하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다.

    100달러, 우리 돈으론 대략 10만 원이다.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최고 사치가 뭘까. 비싼 코피루왁 커피를 마시며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데 쓸 수도 있고, 한정식집에서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한 상 차린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친구들과 시원하게 낮술 한잔 마시는 데 쓸 수도 있을 터다.

    그러나 이런 건 다 잠깐의 즐거움이다. 사실 오랫동안 누릴 좋은 것을 가지기에 10만 원은 그리 넉넉지 않은 금액이다. 만약 이 돈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쓴다면 어떨까. 돈으로 하는 것 가운데 최고 사치는 남을 위해 쓰는 게 아닐까. 오늘의 작은 사치는 기부다.

    아니, 기부를 어찌 사치라 부르겠느냐고 지적하는 이도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기부를 일상적인 문화처럼 받아들인 나라가 아니다. 여전히 기부금은 주로 기업에서 낸다. 미국은 단체 및 기업과 비교해 개인 기부 비율이 80%를 넘지만 한국은 35%에 불과하다. 물론 과거보다 많이 높아졌지만 말이다. 공생이나 상생이란 말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남들과 나누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원래 사치라는 말은 ‘필요 이상 돈 또는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렇다면 기부에 들어가는 소액은 사치 축에 들지도 못하는데 기부에 인색한 이가 많다. 상당수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 기부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당장 1만 원으로 시작할 수도 있는데 늘 미루기만 한다. 설령 누군가에겐 기부가 사치일지라도, 이런 사치는 가끔씩 해도 좋지 않을까. 부자만 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서민이 일상에서 소액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멋진 이벤트



    요즘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로 전 세계가 뜨겁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단순히 유쾌한 얼음물 샤워 이벤트가 아니다. 얼음물을 맞는 고통을 잠시라도 느끼며 루게릭병(근육위축가쪽경화증·ALS) 환자의 고통을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캠페인이다. 그동안 전 세계 유명인이 도미노처럼 캠페인에 동참했는데, 다음 참여자로 지목받은 사람이 얼음물을 맞기 싫다면 100달러를 기부하면 되지만 대개 얼음물도 맞고 기부금도 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ALS협회에 7월 29일에서 8월 21일까지 들어온 기부금이 4180만 달러였다. 전년 동기 대비 20배가 넘는 액수라고 하니 효과적인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사실 나도 어쩌다 지목받아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했다. 얼음물도 뒤집어쓰고, 기부도 했다. 여기에 변형을 가해 ‘ALS Ice Bucket Challenge Plus One’으로, 24시간 단식을 추가했다. 얼음물 한 번 맞는 것으로 불치병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너무 재미로만 여겨지는 데 경계 시선을 담고 싶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약자가 많고, 풀어야 할 숙제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신념을 위해, 정의를 위해 단식하는 이들을 지지하는 의미로 하루 단식에 동참했다. 얼음물의 차가움은 잠시지만, 배고픔은 24시간 갈 테니까. 실제로 이런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 덕에 자발적인 단식 릴레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부는 미국ALS협회가 아닌 국내 승일희망재단에 했다. 우리나라에도 2500여 명의 루게릭병 환자가 있는데 이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너무 가벼운 쇼로 여긴다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 기부 릴레이 자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것만큼 사람들을 기부로 쉽게 끌어들였던 이벤트가 또 있었는가. 그동안 불치병인 루게릭병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이번 기회로 루게릭병을 비롯한 수많은 불치병을 앓는 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관심을 이끌어낼 만한 수많은 이슈가 있는데, 우린 왜 저런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부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걸까. 국내의 유능한 광고 캠페인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야 인재들의 적극적인 재능 기부가 필요한 대목이다. 기부는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매력적인 캠페인이나 기부 릴레이 이벤트가 속속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돈은 가치 있게 쓰려고 버는 것

    남을 위해 쓴 100달러 무한대의 매력

    가수 겸 배우 비(정지훈)가 국내의 한 대학병원 루게릭병 신약개발센터에 1억 원을 기부하고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도 참여했다.

    100달러를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정치후원금을 내는 거다. 자기 자신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줄 정치인을 선거로 뽑았다면,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게 지지와 후원을 하는 것도 우리 구실 중 하나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 주는 사람이 ‘갑’이다. 기업이 후원금을 내면 그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르는 정치인이 많아지는 게 당연하다. 국민이자 개인이 후원금을 많이 내면 국민의 이해관계에 따르는 정치인이 좀 더 많아지지 않겠는가. 정치후원금을 내면 최대 1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1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연말정산에서 공제를 받을 수 있기에 손해 보는 선택이 아닌 셈이다. 정치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건 결국 선거에서의 표와 정치후원금 아니겠는가.

    돈을 버는 이유는 쓰기 위해서다. 쓰지 않고 쌓아만 놓은 돈은 종이나 숫자에 불과하다. 돈의 가치는 쓸 때 비로소 드러난다. 지금 당신 주머니에서 10만 원이 사라진다면 그 충격으로 쓰러질 정도인가. 덤덤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의외로 많을 거다. 참고로 월드비전의 해외아동후원은 한 달에 3만 원, 국내아동후원은 한 달에 5만 원이다.

    제3세계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우물 및 식수시설 설치사업과 각종 예방접종, 최소한의 영양공급을 위한 사업 등에는 최소 1만 원부터 후원이 가능하다. 소년소녀가장이나 장애인, 독거노인 등에게 도시락을 후원하는 사업을 비롯해 위기에 처한 가정에도 1만 원부터 후원이 가능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도 국내외 아동지원기금 후원 프로그램이 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다양한 기부 프로그램이 있다. 아름다운재단에는 현물, 재능 기부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할 수 있다. 방법을 몰라서 기부를 못 한다는 얘기는 더는 하지 말자. 나중에 하겠다며 미루지도 말자. 생각난 김에 지금 당장 시작해도 좋다. 남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작지만 매력적인 ‘기부’라는 사치도 한 번 누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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