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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으로 제2의 삶을 불어넣다

와인 용기의 역사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숙성으로 제2의 삶을 불어넣다

숙성으로 제2의 삶을 불어넣다
유리병이 와인 용기로 쓰인 것은 4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유리가 워낙 비싸 유리병이 대중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와인을 암포라(amphora)라고 부르는 항아리에 담아 보관했다. 암포라는 이집트에서 처음 개발했는데, 진흙을 구워 만들었고 밑동이 뾰족해 땅에 꽂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암포라는 깨지기 쉬워 운반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로마시대에 이르러 나무통이 발명되자 암포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무통을 발명한 이는 지금 프랑스 땅에 살던 갈리아인으로, 그들은 뛰어난 창의력으로 와인 양조에 상당한 발전을 이룬 민족이었다. 나무통은 운반하기엔 좋았지만 재질 특성상 완전한 밀폐가 불가능했다. 일부를 덜어내 마시고 나면 남은 와인은 쉽게 산화됐고 더운 여름에는 식초처럼 셔지기 일쑤였다. 가을이 돼 햇와인이 나올 때까지 푹 삭은 와인을 마셔야 했으니 유럽 마을들이 포도 수확철에 크고 작은 축제를 여는 전통이 왜 생겼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유리병이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당시에는 유리병을 입으로 불어서 만들었는데, 숙련된 기술자가 한 번 크게 들이쉰 숨으로 만들 수 있는 병 크기가 대략 750mℓ였고, 그것이 지금 와인병의 표준 크기가 됐다고 한다. 와인병 바닥에 움푹 들어간 곳은 유리병을 불어서 만들 때 쇠막대기를 꽂았던 자국이다. 이 움푹 들어간 모양 때문에 병이 쓰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1740년대에 이르자 틀을 이용해 유리병을 만들기 시작했고, 유리병 입구에 꼭 맞는 코르크도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밀폐된 병 안에서 와인을 숙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후 와인 병은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다 지금은 서너 가지로 표준화됐다. 주로 쓰이는 와인병으로는 병 어깨가 높고 각진 보르도(Bordeaux) 스타일, 어깨가 흐르듯 부드러운 부르고뉴(Bourgogne) 스타일, 전체적으로 날씬한 독일 스타일, 375mℓ용량의 길고 좁은 스위트 와인 스타일이 있다.

와인병을 출신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처럼 각 스타일별 와인병에는 그 병의 출신지와 연관 있는 와인이 담긴다. 보르도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나 메를로(Merlot) 와인은 보르도 병에, 부르고뉴 품종인 피노 누아르(Pinot Noir)나 샤르도네(Chardonnay) 또는 부르고뉴와 가까운 론(Rhone) 지방 품종인 시라(Syrah)는 부르고뉴 병에 담는다. 따라서 병 모양만 봐도 어떤 와인이 담겼을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와인은 병 안에서도 숙성이 진행되는 살아 있는 술이어서 병 색상과 크기도 와인 숙성에 영향을 미친다. 병 색깔이 진한 녹색이나 갈색을 띠는 이유는 숙성되는 동안 직사광선이 닿아 와인 맛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병 크기도 750mℓ표준 용량 외에 375mℓ하프 보틀(half bottle)과 1.5ℓ매그넘(magnum)이 간혹 눈에 띄는데, 와인은 큰 병에 담겨 있을수록 천천히 맛있게 익으므로 와인을 오래 보관했다 특별한 날에 열고 싶다면 매그넘 사이즈를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와인에게 숙성이라는 제2 삶을 부여하는 와인 병. 그 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와인을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일 터다.



주간동아 2015.08.24 1002호 (p71~71)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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