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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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세대의 자조 “효도가 최고 재테크”

대졸 51%가 캥거루족…고도성장 혜택 누린 부모세대, 자식에게 퍼주다 빈곤층 전락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5-08-24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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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포세대의 자조 “효도가 최고 재테크”
    2월 대학을 졸업한 김성은(27·가명) 씨는 직업이 있지만 부모와 함께 살며 용돈을 받는다. 김씨의 꿈은 방송사 PD가 되는 것. 재학 중 지상파 방송 3사에 모두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방송사 채용 공고는 하반기에 나기 때문에 현재는 외주제작 프로덕션에서 월급 100만 원을 받고 일하는 중이다.

    김씨는 “일반 사무직 취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20대니 꿈을 이루기 위해 좀 더 노력해보고, 차선책은 서른 넘어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어머니 이성미(53·가명) 씨도 매달 50만 원씩 용돈을 주며 딸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그는 “맞벌이라 아직은 경제적으로 감당할 만하고, 퇴직해도 두 사람 모두 사학연금이 나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딸의 경제적 독립이 더 늦어지면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른 넘은 아들 학원비 대는 경비원 아버지

    30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4년 전 퇴직한 이현철(60·가명) 씨는 이성미 씨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 상황에 놓여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째 백수생활 중인 아들이 매달 100만 원씩 타 가면서도 좀체 취업 소식을 들려주지 않고 있는 것. 심지어 대학 졸업 뒤 누구나 알 만한 직장에 취업해 잘 다니던 20대 후반 딸마저 입사 1년 만에 “일이 재미없다”며 사표를 던지고, 재취업 준비를 위해 학원비를 지원해달라고 나서 속을 끓이는 상태. 이씨는 “지난해 말에는 고교 동창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들이 불쑥 전화를 걸어 ‘오늘 여자친구랑 집에서 데이트할 거니까 밤 10시 넘어 들어오시라’고 해서 기가 막혔던 적이 있다”며 “언제까지 자식들 뒤치다꺼리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성인이 된 후에도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 일명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덩달아 ‘부모 노릇이 대체 어디까지냐’는 50~70대의 탄식도 깊어지고 있다. 자녀 사교육비와 대학 학자금을 대느라 허리 휘는 세월을 보냈는데, 대학 졸업 후에도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이 도통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수천만~수억 원씩 들여 결혼을 시킨 뒤에도 결혼한 30, 40대 자식이 손주까지 데리고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일이 늘어나면서 ‘자녀 키우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도 나온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2013년 60세 이상 서울시민 가운데 45.2%가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자녀와 동거 이유 1위는 ‘자녀의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39.7%)였다. 여기에 ‘손주 양육 및 자녀 가사 지원을 위해’라고 응답한 6.8%를 포함하면 60세 이상 부모의 46.5%가 자녀 ‘부양’을 위해 자녀와 함께 산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경비원으로 버는 돈이 한 달에 120만 원 남짓입니다. 둘째가 이제는 그만 욕심을 버리고 제 밥벌이라도 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10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배성철(73·가명) 씨도 ‘자녀 부양을 위해 자녀와 함께 사는 부모’ 중 한 명이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지금까지 쉼 없이 일해왔다. 큰아들이 올해 마흔 살인데, 그 애 사업자금으로 쏟아부은 돈이 2억 원이 넘는다. 30대 중반 둘째아들은 대학 졸업 후 한참 동안 대기업에 취직하려다 실패하고 지금은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다. 아내와 함께 평생 뼈 빠지게 일해 돈을 벌었는데, 얼마 전부터 아내가 건강이 나빠져 일을 못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칠포세대의 자조 “효도가 최고 재테크”
    인생 후반 최대 리스크는 성인 자녀 지원

    칠포세대의 자조 “효도가 최고 재테크”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개발원)이 34세 이하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캥거루족 실태와 과제’에 따르면 캥거루족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부모와 동거하면서 용돈을 받는 경우(10.5%), 부모와 동거하지만 용돈은 받지도 주지도 않는 경우(35.2%), 부모와 동거하지 않지만 용돈을 받는 경우(5.4%)다(상자기사 참조).

    캥거루족이 양산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고용 없는 저성장으로 굳어진 경제체제, ‘취업 빙하기’라 부를 만큼 심각한 청년실업, 비정규직 확산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이유로 꼽는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젊은 층은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인 부모 때와 달리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결혼 기피나 저출산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대응방식이다. 우리나라는 공적 토대가 부족해 사회가 젊은이들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니까 결국 사적(가족) 해결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 이어 최근에는 집·인간관계·꿈·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할 만큼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 일흔 살이 넘은 아버지에게 기대 사는 배씨의 둘째아들(35)은 “당장을 생각하면 어른들 말대로 일단 아무 데나 취직하는 게 맞다. 그런데 비정규직에다 적은 월급으로 미래가 불안하면 어떻게 결혼하고 집 사고 애 낳아 기르나. 부모님에게는 죄송하지만 미래를 생각해 하는 데까지 노력해보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소방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김순철(29·가명) 씨는 최근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한 아버지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자신이 부모의 노후자금을 갉아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수차례 취업문을 두드렸고 인턴도 해봤지만 취직이 안 됐다. 2년간 사귄 동갑내기 여자친구도 기다리다 지쳐 떠났다. 아무리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현실이 기가 막힌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불안해서 그만 포기해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마지막 희망을 공무원시험에 걸고 있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100만 명 시대.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효도가 최고 재테크”라는 말이 농담처럼 떠돌고 있다. 어떻게든 부모에게 잘 보여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는 게 최고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자녀 과잉보호’가 캥거루족을 있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다.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은퇴교육센터장)의 말이다.

    “부모들이 자녀를 놓아줄 마음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주지 않고 일일이 간섭하면서 끼고 키웠기 때문에 사회에 내놓으면 행여 상처받고 다칠까 봐 겁내고 있어요. 면접시험 당락 여부를 묻기 위해 회사 인사과에 전화하고 결혼 배우자도 직접 골라주는 게 요즘 부모입니다. 가만있어도 부모가 알아서 다 해주니까 자식들이 의타심이 생기고 독립 의지가 없는 게 당연하죠. 자식들도 기댈 곳이 있어야 비비는 법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일수록 품에서 자식들을 내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해외 유학을 앞둔 김기태(30·가명) 씨는 “몇 달 전부터 아버지 사업이 크게 흔들려 유학을 포기하려고 했다. 지금이라도 취직해서 부모님을 돕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펄쩍 뛰셨다. 어떻게든 뒷바라지할 테니까 딴 생각 말고 계획대로 떠나라고 하셔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지만 전문가들은 ‘몰빵’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김혜령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인생 후반을 좌우하는 5대 리스크’ 중 하나로 ‘성인자녀 지원 문제’를 꼽았다. 은퇴 후에도 40~50년을 더 살아야 하는 100세 시대에 부모가 자신들의 노후를 고려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녀를 지원할 경우 노후생활이 흔들리는 심각한 경제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칠포세대의 자조 “효도가 최고 재테크”
    자식은 절대 안 떠나, 부모가 먼저 놓아야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49.6%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 OECD 평균(12.6%)의 4배에 이르는 수치다. 노인자살률도 인구 10만 명당 81.9명으로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자식한테 아낌없이 쏟아붓고 노후에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부부가 동반자살을 하거나 독거노인이 쓸쓸히 죽음을 맞은 사례는 언론을 통해 수없이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캥거루족을 막으려면 어릴 때부터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동엽 이사는 “부모가 독한 마음을 먹고 성년이 돼서도 기대고 의존하는 자식을 독립시켜야 한다. 부모가 먼저 놓지 않으면 자식은 절대 안 떠난다. 부모가 그나마 뒷받침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자녀를 놔줘야 한다. 나중에 여력이 없어져 어쩔 수 없이 자녀를 놔버리면 그때 가선 이미 자녀도 방법이 없게 된다. 그전에 자녀들은 언제까지 자식으로 살 것인지, 부모는 몇 살까지 부모 노릇을 할 것인지 미리 정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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