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7

2015.07.20

K리그를 뒤흔드는 ‘차이나 머니’와 ‘저팬 시스템’

전북 스트라이커 에두 중국행, 수원 스트라이커 정대세 일본행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honey@donga.com

    입력2015-07-20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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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를 뒤흔드는 ‘차이나 머니’와 ‘저팬 시스템’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킨 ‘길거리 응원’의 원조국이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 열광하고, A매치에는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지만 정작 국내 프로리그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의 평균 관중은 경기당 8000명도 되지 않고, 올 시즌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앞으로 K리그 앞날을 더 어둡게 할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이 7월 17일 올스타전을 앞뒤로 브레이크에 돌입한 가운데 전반기 막판 대형 뉴스가 연달아 터져나왔다. 전북현대 에두(36·브라질)는 중국으로 이적했고, ‘자이니치’(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북한 출신 한국인을 통칭하는 일본식 용어)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북한 대표팀으로 나섰던 수원삼성 정대세(31)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관중이 줄어들 소식만 터져 나온다”는 한 관계자의 자조 섞인 한탄은 K리그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다.

    에두와 정대세는 올 시즌 클래식에서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전북과 수원의 간판 스트라이커였다. 여름 이적 시장이 한창이고, 이맘때면 선수들의 이동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지만 K리그를 대표하는 두 빅클럽이 간판선수를 각각 중국과 일본에 빼앗겼다는 점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충격이다.

    에두는 11골로 12개 구단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올 시즌 득점랭킹 단독 1위에 올라 있고, 정대세는 6골 5도움으로 수원의 상승세를 이끈 1등 공신이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더 나은 조건을 내건 중국과 일본 구단의 제안을 받고 한국을 떠났다.

    세계 축구의 신흥 큰손



    30대 중반 나이로 축구선수로는 ‘말년’을 보내고 있는 에두는 ‘차이나 머니’의 위용 앞에 중국 갑리그(2부 리그) 소속 허베이 종지로 이적했다. 당초 전북의 입장은 확고했다. 처음 러브콜이 왔을 때 에두를 보내지 않겠다는 강경한 뜻을 전했다. 그러나 허베이의 의지도 대단했다. 단장이 직접 전북사무국이 위치한 전주 월드컵축구경기장을 찾아 전북과 에두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내밀었다.

    현재 허베이 사령탑은 과거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이상 스페인) 등 유럽 명문 클럽들을 지휘했고, 한때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로도 지목됐던 라도미르 안티치(67·세르비아)다. 아무 구단이나 쉽게 데려갈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허베이는 이처럼 중국 프로축구 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준급 자금력을 자랑한다. 전북에 안겨줄 이적료로 500만 달러(약 56억8000만 원) 이상을 제시했고 에두에게도 연봉 200만 달러(약 22억7000만 원)와 다년 계약을 보장했다. ‘세계 축구의 신흥 큰손’으로 불리는 중국의 물량 공세에 K리그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쓴다는 전북은 끝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허베이는 최근 중국 축구계에서 ‘제2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불릴 만큼 대규모의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팀이다. 갑리그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다음 시즌 슈퍼리그(1부 리그) 승격을 노리고 있어 K리그 최고 골잡이에게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2013시즌부터 수원 유니폼을 입고 3번째 시즌을 보내던 정대세는 올해 득점과 도움 등에서 고른 활약을 펼쳤다. 최근 J리그 내 여러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이 중 가장 정성을 보인 시미즈 에스펄스로 팀을 옮겼다. 시미즈가 제안한 계약 조건은 3년 6개월에 이적료 4억~5억 원, 연봉은 6억 원 선이다. 수원과의 계약기간 마지막 해인 올해 연봉 재조정을 하면서 지난해보다 대폭 삭감된 금액에 서명했던 정대세로선 시미즈의 오퍼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수원으로선 물론 잔류를 요청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모기업 차원에서 이뤄진 예산 삭감 여파로 일찍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돌입한 터라 정대세의 이적을 가로막을 명분이 없었다.

    일본은 중국 같은 공격적 투자는 아니더라도 탄탄한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K리그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J리그 구단들은 대부분 흑자 경영으로 돌아서 재정적으로 탄탄한 데다, 인기와 구단 운영 등 시스템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내세워 K리그 선수들을 데려가고 있다.

    중국의 ‘K리그 선수 사들이기’는 이미 위험 단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중국 구단의 몸집 불리기에 K리그 팀들은 직격탄을 맞은 지 이미 오래다. 김주영, 장현수, 박종우, 김영권, 하대성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과 데얀, 에스쿠데로 등 K리그에서 이름을 떨친 수준급 용병들이 이미 ‘차이나 머니’에 넘어갔다.

    K리그를 뒤흔드는 ‘차이나 머니’와 ‘저팬 시스템’
    썰렁한 K리그 경기장

    에두의 허베이행에 앞서 슈퍼리그 장쑤 궈신 세인티가 최용수 FC서울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최 감독이 잠시 흔들리면서 K리그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장쑤가 최 감독에게 내민 조건은 2년 6개월간 총액 약 50억 원이었다. 엄청난 조건에 팀을 떠날 생각까지 했던 최 감독이 마지막 순간 클래식 지도자로서 자존심을 지키는 선택을 하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차이나 머니’가 K리그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도 언제든 데려갈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축구 굴기’ 프로젝트 이후 중국 축구의 머니 파워가 K리그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

    K리그 경기장은 올해도 한결같이 썰렁하다. 기업구단들은 아직도 자생력 없이 모기업 지원에 의존하고, 도·시민구단들은 빈약한 재정형편 탓에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 정도다.

    K리그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학범슨’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학범(55) 성남FC 감독은 “일본보다 중국이 더 문제”라고 했다. 2010년부터 2년간 슈퍼리그 허난 전예에서 지휘봉을 잡았고, 이후에도 꾸준히 중국 축구의 움직임을 주시해온 그는 “중국은 앞으로 점점 더 발전해나갈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어차피 돈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프로는 돈이고, 돈 싸움에서 K리그는 중국 거대 자본에 버틸 수 있는 힘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냉혹한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최소 4~5년간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것으로 전망한 그는 “나이 든 선수의 경우 돈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은퇴를 앞둔 선수들에게 K리그를 위해 희생하라는 것은 (붙잡을) 명분이 안 된다”고 지적한 뒤 “하지만 어린 선수는 중국에 가면 성장이 끝난다고 봐야 한다. 이를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젊은 유망주들의 중국 진출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 프로축구의 경우 한국처럼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성장 자체에 지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감독은 물론, 선수 버리기도 어느 리그보다 쉽게 행해지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선수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슈틸리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대학 재학 선수들은 올림픽대표팀 진입을 가장 먼저 목표로 삼아야 한다”며 “한국 축구의 미래들이 더 발전하려면 어린 나이에 중국이나 일본으로 나가지 말고 K리그에서 성장해야 한다. 젊은 재능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젊은 피’의 무분별한 유출을 막는 체계적인 시스템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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