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7

2015.07.20

누가 중앙아시아를 차지하나

인도 상하이협력기구 가입 계기로 중·러 맞물린 전략싸움 본격화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7-20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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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가 상하이협력기구(SCO)에 가입하는 등 중앙아시아에 적극 진출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SCO 회원국들은 7월 10일 러시아 우파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인도와 파키스탄을 정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절차를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인도는 지금까지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아프간), 몽골 등과 함께 옵서버로 SCO 활동에 참여해왔다.

    2001년 설립된 SCO는 현재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국가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 6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중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SCO를 반미·반서방 지역협력체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SCO를 주도하면서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인도가 SCO에 가입하려는 것은 중앙아시아가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의 보고인 데다 지정학적으로 전략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는 ‘21세기 제2 중동’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우라늄이 집중 매장돼 있다.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인도로선 중앙아시아 각국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에 있는 중앙아시아는 교통요충지다. 동쪽으로 중국, 서쪽으로 유럽, 남쪽으로 이란과 인도, 북쪽으로 러시아를 잇는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통상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크로드경제지대 vs 유라시아경제연합



    중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중앙아시아를 차지하기 위해 각각 실크로드경제지대(Silk Road Economic Belt)와 유라시아경제연합(EEU) 구축 계획을 추진해왔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에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유럽 동부 지역과 연결해 실크로드를 부활한다는 계획이다. 실크로드경제지대와 관련한 국가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파키스탄, 이란, 터키, 조지아(옛 그루지야),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이다.

    EEU는 러시아가 옛 소련 국가들과 상품·자본·인력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1월 출범한 지역 경제협력체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 등 5개국이 회원국이다.

    인도의 SCO 가입은 두 나라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기만 하던 인도가 드디어 경쟁에 뛰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인도를 자극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중국이 그간 밀월관계를 맺어왔던 파키스탄과 경제회랑 구축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파키스탄 과다르 항에서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카스까지 3000km를 연결하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은 고속도로, 철도, 송유관, 광케이블, 산업단지 등을 건설하는 460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다.

    중국은 또 아프간에도 눈독을 들여왔다. 중국은 미군이 내년 말 아프간에서 철수하면 아프간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여 SCO 회원국들과 파키스탄까지 합쳐 실크로드경제지대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추진할 계획이다. 결국 인도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견제하고자 SCO 회원국들과의 관계 강화에 나선 셈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SCO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7월 6일부터 12일까지 중앙아시아 5개국을 순방하면서 무굴제국과 티무르를 거론하는 등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역사적 유대를 강조했다. 무굴제국은 1526년부터 1857년까지 중앙아시아와 북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다. 무굴제국을 창시한 바부르 초대 황제의 선조는 14세기 중앙아시아 일대에 티무르왕조를 건설했던 티무르(1336~1405)다. 티무르는 중앙아시아는 물론 오늘날의 이란, 아프간, 파키스탄, 캅카스 산맥 등을 정복하고 통치했던 위대한 군주로, 지금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최고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모디 총리는 “중앙아시아는 인도의 소중한 친구”라면서 “인도와 중앙아시아가 힘을 합친다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누가 중앙아시아를 차지하나
    모디 총리가 추진하는 전략은 이른바 ‘중앙아시아 연결정책(Connecting Central Asia Policy)’이다. 인도-이란-중앙아시아-러시아-유럽을 잇는 남북국제운송회랑(INSTC)을 구축하는 사업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국의 에너지를 수송할 수 있는 철도 및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인도는 이미 5월 이란과 INSTC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인도는 이를 위해 이란 남동부 차바하르 항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과다르 항에서 서쪽으로 72km 떨어진 차바하르 항은 호르무즈 해협 입구에 있으며, 인도가 이란을 거쳐 내륙국가인 아프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에 진출할 수 있는 관문이다. 인도는 차바하르 항 개발을 위해 8500만 달러(약 971억 원)를 투자해 양국 합작법인을 만든 뒤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과 다목적 화물터미널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인도는 차바하르 항에서 아프간 하지가크까지 900km 구간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는 청사진도 마련해놓고 있다.

    21세기 ‘그레이트 게임’

    특히 모디 총리는 러시아가 추진하는 EEU와의 협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도는 6월 EEU와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FTA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FTA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러시아는 인도와 EEU 간 FTA는 물론,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인도의 SCO 정회원국 가입을 가장 강력하게 후원한 국가도 러시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7월 8일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인도가 SCO에 가입하는 과정이 시작된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며 새 회원국 가입을 환영했다.

    러시아가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호의적인 이유는 중국이 추진하는 실크로드경제지대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앙아시아-유럽 수송로를 담당해온 만큼 러시아는 실크로드경제지대가 만들어지면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 인도를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고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또 다른 수송로를 만들고자 하는 속내다.

    중국은 러시아의 의도와 인도의 SCO 가입을 마뜩잖게 생각하고 있지만, 실크로드경제지대 구축을 위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중국은 인도의 라이벌인 파키스탄의 SCO 가입이란 카드를 내세웠다. 큰 틀에서 보면 중국과 러시아가 반미 노선에선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선 눈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세 나라가 벌이는 21세기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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