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7

2015.07.20

지금, 경제적으로 행복하십니까

현재·미래 ‘경제적 행복감’ 최저 수준…고용 불안이 최대 원인

  •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dykim@hri.co.kr

    입력2015-07-20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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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경제적으로 행복하십니까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행복을 오랫동안 연구해 ‘행복의 기원’이란 책을 쓰기도 한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을 좀 다른 시각에서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과 달리,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래 살아남으려면 행복을 느꼈던 과거의 구체적 경험을 자주 반복하는 게 좋다는 설명이다.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나 가족과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수다를 떠는 일 같은 것들이다.

    가치관, 문화, 환경, 소득 수준 등 여건이 다른 나라들 사이의 행복을 비교할 수 있을까. 유엔은 이 어려운 문제를 풀고자 오랜 기간 고민해왔다. 4월 발표한 ‘2015 세계행복보고서’가 그 일환이다.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 선택의 자유, 부패 등과 관련해 가능한 한 객관적인 지표를 중심으로 행복지수를 만들었다. 그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총 5.984점으로 158개국 가운데 47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5위 정도임을 감안하면 행복 순위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으로는 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측면으로 범위를 좁혀 생각해보자.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경제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0명 중 1.7명만이 ‘그렇다’고 응답했을 뿐 4.9명은 ‘반반이다’, 3.4명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자신 있게 ‘경제적으로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 가운데 2명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퇴한 후에는 어떨까.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내 노후의 경제 상황은 안정적일 것’이라는 데 공감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한 사람은 10명 중 2.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7.8명은 그렇지 못했다(‘반반이다’ 4.1명, ‘아니다’ 3.7명). 2012년을 기준으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가입률이 15%에 불과한 60세 이상 고령자의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국민이 ‘경제적 불평등이 대단히 심각하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평등해질 것’이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긍정적 답변은 10명 가운데 1명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 부정적 답변은 10명 중 7.7명. 2014년 ‘피케티 신드롬’에서 봤듯, 이제 불평등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적 어젠다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의 심화’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불평등이 커질수록 민주주의가 훼손됨은 물론 경제적 효율성도 떨어지는 등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과 아울러 더 큰 문제는 우리 국민이 ‘고용 불안’을 매우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용 불안은 경제적 행복감을 크게 떨어뜨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체감실업률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은 10명 중 5.8명이나 된다. ‘반반이다’는 2.3명, ‘아니다’는 1.9명에 불과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한눈에 보여주는 결과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경제행복지수’를 조사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질문들을 포함해 모두 11개 질문을 던지고, 그 결과를 토대로 지수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2015년 상반기 ‘경제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40.4점에 불과했다. 2012년 하반기 조사(40.4점) 이래 가장 낮은 점수를 다시 기록한 것이다(그래프1 참조).

    더 큰 문제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앞으로 경제적으로 보다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은 10명 가운데 5.7명이었고, ‘아니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4.3명이었다. 긍정적 답변이 부정적 답변보다 많으니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긍정 비율이 2007년 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임을 감안하면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지금, 경제적으로 행복하십니까
    ‘행복 느낌 종합선물세트’가 필요하다

    지금, 경제적으로 행복하십니까
    현재의 경제적 행복감은 물론 미래의 경제적 행복감 전망치 역시 크게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앞서 설명한 ‘경제적 불평등’ ‘고용 불안감’ ‘노후 준비 부족’ 등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다. ‘경제행복지수’의 6개 구성 항목 가운데 ‘경제적 평등’이 20.2점, ‘경제적 불안’이 29.0점으로 매우 저조해 전체 평균(40.4점)을 깎아먹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낮은 경제적 행복감이 저조한 체감경기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경기회복을 체감하는지 질문한 결과 ‘체감한다’는 긍정적 답변은 5.9%에 불과했고 ‘체감하지 못한다’는 부정적 답변이 94.1%에 달했다(그래프2 참조). 이렇듯 엄청난 부정적 답변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고용 불안’(42.2%)이었다. 뒤이어 저금리 상태가 지속되면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29.2%) 역시 체감경기 부진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나타난다.

    연령별 소비 위축 배경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생애주기에 따라 소비 위축의 원인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20대 청년은 취업난, 30대 신혼부부는 내 집 마련, 40대 가장은 자녀를 위한 사교육비와 대학 학자금, 은퇴를 앞둔 50대는 노후 준비 부족, 이미 직장에서 물러난 60대 이상 고령자는 소득 감소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국민이 경제적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원인이 이처럼 분명하다면, 그 해법 역시 자명하다. 불평등과 격차를 완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고용 안정성 제고나 노후 불안 해소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추경예산 편성 등 재정정책 집행을 통해 경기 회복세를 체감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경기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 연령별로 각기 다른 소비 위축 원인에 대해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대책도 중요할 것이다. 내년 총선이나 내후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이렇듯 ‘행복 느낌 종합선물세트’를 면밀하게 준비한 정당과 후보자에게 한 표를 행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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