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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북 투자 함정에 빠진 오라스콤

이통사업 수익금 본국 송금 막막… ‘신의성실의 원칙’ 모르쇠 평양도 자충수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대북 투자 함정에 빠진 오라스콤

오라스콤(Orascom). 이집트에 기반을 둔 이 다국적 통신회사가 한반도 뉴스에 종종 등장한 지 벌써 7년째다. 이동통신 서비스가 부실하기 짝이 없던 북한에서 독점사업권을 따내 고려링크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평양은 물론, 북·중 접경지역과 변방에 이르기까지 휴대전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다. 어느새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240만 대에 이르는 아찔한 성장 속도. 일반 주민까지 동참한 이동통신시장 확대는 고스란히 오라스콤의 성공 스토리였다.

그리고 6월 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독점사업 기간이 마무리된 이후 이 회사가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는 것. 이 무렵 공개된 오라스콤의 1분기 회계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3월 31일을 기준으로 이 회사가 고려링크를 통해 보유 중인 총자산은 58억4400만 이집트파운드(약 7억6600만 달러·약 8800억 원)로, 그중 현금 자산이 41억2000만 이집트파운드(약 5억4000만 달러)에 이른다.

보고서의 현금 자산 대부분은 북한에서 벌어들인 원화 수익금을 북한 공식환율로 환산한 것. 문제는 이 수익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오라스콤은 이를 공식환전소에서 달러로 환전해 본국으로 송금하기를 원하지만, 평양 당국은 공식환율 대신 흔히 ‘장마당 환율’이라 부르는 비공식환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비공식환율이지…”

고정환율제를 택하고 있는 북한은 환율을 국가가 지정한다. 북한 당국이 개설해놓은 공식환전소에서만 쓰는 공식환율이 2014년 기준으로 달러당 98.4원. 그러나 어렵게 벌어들인 달러를 공식환전소에서 바꾸는 북한 주민은 사실상 전무하다. 장마당 암시장에 나가면 환율이 8000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80배를 넘는 엄청난 차이는 공식환율을 실제 구매력보다 훨씬 높게 유지하려는 북한의 외환정책 탓이다. 외화가 개입되는 공식거래에서 화폐가치 우위를 유지하려는 평양 나름의 고육책이다.



오라스콤의 북한 내 현금 자산 5억4000만 달러(약 6200억 원)는 앞서 말했듯 그간 벌어들인 북한 돈을 공식환율로 계산한 수치. 그러나 비공식환율을 적용할 경우 수익금은 7000만 달러(약 804억 원) 안팎으로 줄어든다. 그간 계산해온 수익이 80분의 1로 줄어드는 것. 당장 오라스콤의 회계장부에는 큰 구멍이 생기고, 주주들에게 보고해온 재정 상황은 완전히 거짓말이 된다.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평양의 이러한 조치에 몇 가지 배경이 있다고 풀이한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북한 당국이 외국인 투자사업의 대규모 수익금 문제를 처리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오라스콤의 고려링크 설립은 북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직접투자(FDI) 사업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진행됐던 그간의 FDI는 북한에 공장을 짓는 식의 장기투자였을 뿐, 4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독점사업권을 주고 정산하는 방식은 전례가 드물었다. 이 때문에 공식환율과 비공식환율 가운데 무엇을 적용할지를 두고도 뚜렷한 원칙이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외국 자본이 우리 재화를 약탈해간다’는 북한 당국자들의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는 “(북한 당국은) 외국 사업가들이 돈을 버는 것을 북한의 경제적 손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 회사가 투자한 사업이 성공해도 그 이익을 해외에 보낼 수 없도록 다양한 제약을 가하는 건 늘 벌어져온 일”이라고 풀이한다. 원래는 없던 세금을 새로 만들어 부과하는 일까지 있을 정도라는 것. 오라스콤의 경우 역시 이러한 그간의 행동 패턴과 꼭 맞아떨어지는 사례인 셈이다.

실물경제 논리로 따지면 공식환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오라스콤 측의 주장이 반드시 정당한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일반 소비자로부터 벌어들인 현금 수익의 가치를 실제로 통용되는 장마당 환율에 따라 정산하는 것은 일종의 ‘구매력지수’에 따른 환전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이렇게 놓고 보더라도 그간 북한 당국이 공식거래에서 쓰던 환율을 이 경우에만 적용하지 않는다는 건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애초 장마당 환율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합의하지 않은 한,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한 비공식환율로 환전하라는 건 떼쓰기에 불과하다는 것. 자본투자에 관한 국제규범이나 원칙에 비춰보면 결론은 더욱 자명해진다.

대북 투자 함정에 빠진 오라스콤
제 발등을 찍는 격

그간 오라스콤 문제를 심도 깊게 전해온 미국의 북한전문 웹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는 7월 8일 북한 당국이 고려링크와 경쟁할 새로운 국영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했다고 전했다. 그간 평양의 외국인 전용 유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왔던 ‘별’이라는 업체가 앞으로는 내국인용 휴대전화 사업에도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 오라스콤이 전체 지분의 75%를 가진 고려링크로서는 시장점유율 감소 등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북한 당국이 별과 고려링크를 합병해 하나의 회사로 만드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식도 거론된다. 오라스콤으로서는 이동통신사업에서 밀려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여 하나의 산업 분야를 궤도에 올린 뒤 국가나 국내 기업이 나서서 사업권을 회수하는 방식은 그간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 자주 활용하던 수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간의 수익금마저 제대로 정산할 수 없게 만드는 이러한 북한식(式) 외국인 투자 처리법이 장기적으로 북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있다. 김정은 체제 이후 평양이 경제 개발의 종잣돈 구실을 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 ‘사업이 대박 나도 번 돈을 들고 나올 방법이 없다’는 인식이 퍼져나가는 순간 벌어질 일은 불을 보듯 뻔하다. 스테판 해거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남긴 말이다.

‘(오라스콤의 최근 상황은) 명성과 신뢰도, 확신 같은 개념을 북한 당국자들이 따라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말 그대로 제 발등을 찍는 격이다.’



주간동아 2015.07.20 997호 (p16~17)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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