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2

2015.06.15

공포가 만든 불황, 탈출구 없다

관광객 급감·내수 악화·경제성장률 하락…저성장에 덮친 악재, 정부 긴급대응 요원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6-15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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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가 만든 불황, 탈출구 없다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세월호 때보다 장사가 더 안 됩니다.”

    6월 8일 월요일 낮 2시쯤 서울메트로 3호선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물건을 구경하는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점포마다 주인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속버스 이용객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평일에도 액세서리, 의류, 신발 등 점포마다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다. 한 신발가게 점원은 “원래 평일 손님이 주말에 비해 적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메르스 때문에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이 없으니 매출도 반타작이다. 7~8월 휴가철에는 손님이 더 떨어질 텐데 여름 장사는 어쩌나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가는 곳마다 썰렁, 매출 타격 심각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5월 말부터 시즌 오프세일에 들어갔지만 한산했다. 1층 화장품 코너에서는 직원 대부분이 대기하며 손님을 기다렸고, 다른 층도 마찬가지였다. 나란히 마스크를 낀 채 의류매장을 둘러보던 한 모녀는 “메르스 때문에 노파심에서 착용했다. 안 끼는 것보다 안심이 된다. 딸과 남편 옷을 사러 나왔는데 아무리 월요일이라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외국인 여행객과 한국인 손님들로 붐비던 롯데마트 서울역점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 진열대 앞 직원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대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층 의류매장 직원은 “지난주보다 확실히 줄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주말에는 앉아서 쉴 틈도 없는데 고객이 거의 없었다”며 매출 하락을 우려했다.



    영화관과 공연장은 더 심각했다. 서울 종로3가 한 영화관은 평일 저녁시간임을 감안하더라도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흥행몰이 중인 ‘매드맥스’를 상영하는 300석 규모의 영화관 안에는 20명 남짓한 관람객이 전부였다. 매표소 직원은 “주말에도 사람이 적었는데 평일은 오죽하겠나. 아무래도 영화관은 밀폐된 공간이다 보니 더욱 찾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난타’ 전용극장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중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길게 줄 지어 서던 인기 관광코스. 그러나 6월 9일 극장 내부는 썰렁했다. 매표소 직원은 “평일 오후 5시, 8시 공연을 하는데 예약했던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일제히 취소하는 바람에 5시 공연만 한다”며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여행업계와 화장품업계는 메르스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세계 31개 지사를 통해 한국 여행상품 취소 건수를 파악한 결과 5월 29일~6월 7일 전체 4만5600여 명이 취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 취소 여행객 수는 4만1000여 명으로 전체 90%를 차지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한국 내 메르스에 관한 소식이 중화권 언론보도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면서 불안감이 커진 듯하다. 2003년 홍콩을 중심으로 사스가 창궐했던 중화권은 전염병에 민감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6월 9일 캐리 람 홍콩 정무사장은 “보안국이 한국에 대해 홍색 여행경보를 발령했다”고 밝혔다. 세 단계 경보 가운데 홍색은 두 번째 수준으로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하고 기존 여행 계획을 조정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이다. 같은 날 대만 보건당국도 서울로만 한정했던 여행경보를 한국 전역으로 확대했고, 마카오 정부도 불필요한 한국 여행을 피하라고 주문했다.

    공포가 만든 불황, 탈출구 없다
    이로 인해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은 서울 명동 화장품 매장들이다. 1인당 많게는 100만 원가량 화장품을 쓸어가던 중국인 관광객이 썰물 빠지듯 사라진 것. 6월 9일 명동거리는 10여 명씩 몰려다니던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찾기 어려웠다. 화장품 매장마다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멍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6월 첫 주부터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정확한 수치는 몰라도 50% 넘게 줄어든 것 같다. 요즘은 일본인 관광객도 거의 없고 중국인 관광객이 주 고객이었는데 며칠째 한국인 손님들만 간간히 들어오는 수준”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집 밖을 나서는 사람이 줄면서 소비 패턴도 달라져 유통업계 표정도 제각각이다. 대형마트 업계는 겉으로는 울상인 반면 온라인 쇼핑몰 매출이 늘면서 속으로 웃는 형국이다. 이마트는 6월 1~8일 전점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7%를 기록했다. 그에 반해 온라인 쇼핑몰 ‘이마트몰’의 같은 기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5% 올랐다. 이마트 홍보실 관계자는 “주로 먹거리, 신선식품 등의 매출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마트에서 장을 보기 꺼려지는 고객이 주로 이용하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마트는 온라인 매출이 늘어난 데 대응하기 위해 점포별로 2~3명의 직원을 온라인팀에 추가로 배치하고, 배송차량 대기시간을 단축해 배송량을 늘리기로 방침을 세웠다.

    온라인 쇼핑 업계는 반색, 메르스 관련주는 출렁

    롯데마트는 6월 1~8일 전점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를 기록한 반면, 온라인 쇼핑몰 ‘롯데마트몰’은 22.2% 증가했다. 온라인 구매 비중이 높은 품목은 식료품과 생필품, 위생용품 등이다. 롯데마트 홍보실 관계자는 “메르스 여파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온라인 매출이 늘어난 데 대응하기 위해 일단 16일까지 온라인 배송인력을 100여 명 정도 추가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마켓인 옥션, G마켓 등은 메르스 확진환자가 처음 발생한 5월 20일 이후 6월 첫째 주까지 지속적인 매출 상승을 기록했다. 옥션의 6월 1~8일 전체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증가했다. 세정제·세정용품(188%), 생수(32%), 우유(43%), 생선류(98%) 등의 판매량이 높았다. G마켓도 위생용품과 생필품 판매량에서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였다. 1~8일 손세정제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22% 증가했고 식품류는 라면류(31%), 수입돼지고기(138%), 고구마·감자(49%)의 판매량이 높았다.

    주식시장에서는 메르스 우려가 증폭된 6월 첫째 주, 관련 업계에 관심이 쏟아졌다. 특히 메르스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소식만으로 주가가 폭등한 업체도 있다.

    백신개발 및 생산업체인 ‘진원생명과학’은 5월 27일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이노비오와 함께 메르스를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DNA백신을 개발하는 내용의 공동연구계약을 체결했다”고 알렸다. 이에 따라 4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이어가다 6월 2일에는 최고가 2만2800원을 기록했다. 이어 6월 9일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국제규격 플라스미드 전문 생산시설 VGXI를 통해 임상에 필요한 메르스 DNA백신 생산에 착수했다”고 밝히자 주가는 전일 대비 14.9% 올라 1만4650원에 장을 마감했다.

    당시 회사 측은 “올해 하반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메르스 DNA백신 임상시험 승인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고, 백신 효과가 입증된다 해도 유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현 메르스 사태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 보도가 있기 일주일 전인 5월 20일 거래가가 9740원에 불과했으며, 지난해 4분기 순이익률은 -84.86%로 실적 악화 상태였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도 에볼라 수혜주로 주목돼 11거래일 연속 상승, 주가가 3배나 뛰었지만 이후 곤두박질치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또 6월 8일에는 혈당측정기 생산업체 ‘인포피아’가 “2시간 내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메르스 검사시약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히면서 이튿날 11.56% 오른 1만6400원에 주식이 거래되기도 했다. 진단키트 관련 업체 ‘바이오니아’ ‘서린바이오’ 등도 메르스 수혜주로 거론되며 한때 상승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외 백신 관련 기업들은 6월 초 메르스 사태가 악화하면서 대부분 주가가 급등했다. 동물용 의약품 제조업체 ‘제일바이오’는 5월 29일 5880원에 거래되다 4거래일 연속 상승, 6월 3일 한때 최고가 8600원을 기록했다. 또 백신주로 거론된 ‘이-글벳’ ‘한올바이오파마’ 등도 같은 기간 일제히 올랐고, 예방 관련주 가운데 마스크주로 분류된 ‘웰크론’ ‘케이엠’ ‘오공’ 등과 손세정제주 ‘파루’ ‘경남제약’ 등도 6월 첫째 주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둘째 주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6월 8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관련 기관에서 메르스 테마주로 거론된 백신·마스크·손세정제 관련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 이와 함께 증권가 내부적으로 예방 관련주를 제외한 메르스 수혜주들이 사실상 메르스와 관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대부분 하락세로 돌아섰다.

    메르스 진정돼도 경제 활성화 동인 없어

    공포가 만든 불황, 탈출구 없다

    내수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6월 10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긴급 자금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사진은 6월 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메르스 대응 관계장관회의 모습.

    과거 유행성 바이러스의 창궐 기간은 1년 안팎이었다. 홍콩 사스는 2002년 11월 발발한 이후 9개월 동안 지속됐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국가 경제는 침체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2003년 홍콩 민간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세가 1년 넘게 이어졌고, 상반기에는 4% 넘는 낙폭을 보였다. 특히 관광산업의 타격이 커 숙박·음식점업계 2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35.1%, 도·소매업은 -10.4% 등 전반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표 참조).

    현재로서는 메르스 사태가 언제쯤 진정 국면을 맞을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잠정적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최소 1개 분기에 걸쳐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메르스가 통제 가능 범위에 있다 할지라도 당장 종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의 소비활동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서비스·외식·여행·레저 업계 타격으로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와 재래시장 상인 등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 연구위원은 “수출과 내수가 오랫동안 부진하던 중 최근 살아나려는 조짐을 보이던 내수경기의 불씨마저 메르스가 꺼뜨렸다. 지금은 경제를 활성화할 만한 동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통관 기준 수출증가율은 올해 들어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5개월째 감소폭이 확대, 5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0.9% 감소했다. 반면 소비자심리지수는 3월 101에서 5월 105로 높아졌고, 4월 카드승인금액이 전년 동월 대비 15.4% 증가하는 등 내수경기 개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메르스로 그래프의 상승 곡선이 꺾인 셈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되는 가운데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6월 10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메르스 피해 업종과 지역에 따라 맞춤형으로 4000억 원 이상의 자금지원 패키지를 포함한 대책을 추진하겠다”며 긴급 자금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최 부총리는 “타격이 큰 관광·여행·숙박·공연 등 관련 업계 중소기업에 대해 특별운영자금을 공급하고, 6월 종합소득세 신고 및 납부 기한 연장 등 지원을 조속히 시행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거시경제 정책 측면에서 추가 금리인하, 추가 재정집행 등 좀 더 적극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추가 정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공포가 만든 불황, 탈출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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