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6

2015.05.04

애플카 vs 구글카 불편한 자동차 업계

디자인 중심 사고가 몰고 올 혁신…자동차 기업과 빅딜 가능성

  • 성낙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nakhwans@lgeri.com

    입력2015-05-04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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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의 꿈 중 하나였던 애플카(Apple Car)가 2020년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2월 다수 외신은 애플이 애플카를 비밀리에 개발하고자 타이탄(Titan)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의 지시에 따라 2020년까지 전기자동차를 출시한다는 목표하에 직원 1000여 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애플카 개발 작업을 위한 비밀 연구시설과 시험 제작한 차량 사진까지 등장하자, 이미 시장에서는 애플의 자동차산업 진출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애플의 자동차 개발이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2013년 폴크스바겐과 협업해 아이비틀(iBeetle)이라는 차량을 선보인 바 있고, 2014년에는 차량과 아이폰을 연결해 음악, 전화, 지도 기능 등을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카플레이(Carplay)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과 스큐어모피즘

    애플 단독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이번 경우는 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라는 점에서 얘기가 다르다. 아이폰 이후 신성장동력으로, 혹은 혁신에 목말라하는 애플 고객을 만족게 하는 제품으로 애플카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전기자동차의 테슬라, 자율주행 시스템의 구글이 속속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할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 정보기술(IT)산업 혁신주자인 애플이 이를 피해갈 리 없다.

    그렇다면 애플카는 어떤 방향으로 개발될까.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애플답게 애플카의 구체적인 내용 역시 아직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알려진 몇 가지 사실로 유추해보면 먼저 애플은 자율주행차 개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해외 전문지에 노출된 시험차량 사진을 보면 자율주행 시스템에 필요한 카메라와 센서 등을 탑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운전에 개입할 필요가 전혀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차가 만들어지면, 자동차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형태의 제품이 된다. 출퇴근시간 차 안에서 영화를 보거나 주요 신문 기사를 검색하고, 긴급한 업무도 처리할 수 있다. 이렇게 자동차 특성이 변화할 경우 주행능력이나 연비보다 실내 환경, IT 연결성, 콘텐츠 플랫폼 등 애플의 기존 강점이 한결 중요해진다. 애플이 자율주행 분야에 힘을 쏟는 이유다.

    애플카 vs 구글카 불편한 자동차 업계
    자율주행차로 이미 100만km 이상 시험주행을 마친 구글을 보자. 2014년 공개된 구글카는 차량 안에 핸들이나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이 없다. 시작, 정지 버튼과 함께 지도가 표시되는 화면뿐으로, 사람은 말 그대로 좌석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구글은 자동차를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으로 생각하는 이러한 콘셉트를 여러 자동차 제조업체에 공급,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애플의 경우는 방향이 조금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운영체제 iOS를 독점적으로 탑재한 아이폰을 개발, 판매했듯 자율주행 시스템을 장착한 애플만의 자동차를 개발할 개연성이 높다. 자율주행 시스템에 기존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생태계, 인공지능 음성인식서비스 ‘시리(Siri)가 결합해 애플 고유의 사용자 환경을 제시할 수도 있다. 급진적으로 생각하면 구글 안드로이드와 애플 아이폰으로 형성된 스마트폰 시장구도가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구글 무인카와 애플카로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애플은 버튼 배치, 나사 모양, 아이콘 등 디테일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 쓰는 디자인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를 감안하면 애플카 역시 인간의 감성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하이터치 디자인의 자동차가 될 것이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 제품에는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나 존재하는 사물을 그대로 디자인에 반영하는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 같은 디자인 철학이 담겨 있다. 이러한 애플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자동차에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 디자이너 총괄 수석부사장은 원래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었고, 그의 친구이자 세계적 디자이너로 애플이 새로 영입한 마크 뉴슨도 ‘포드(Ford) 021C’라는 혁신적인 자동차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점 역시 향후 애플카가 어떠한 디자인으로 출시될지에 관심이 쏠리게 한다.

    유력 자동차 업체 인수합병?

    시장의 혁신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창조적인 제품이라도 가격이 높거나 제조 물량이 적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면 시장의 변화를 불러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애플카가 자동차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대규모 생산체제와 판매망 확보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애플은 별도의 생산시설을 두지 않고 폭스콘 같은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IT 제품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자동차 생산은 전자제품 생산과 차원이 다르다. 차량에 대한 오랜 노하우와 숙련된 노동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3만 개 이상의 부품을 조달하고 운전자의 안전을 담보하려면 높은 신뢰성을 유지해야 한다. 반면 자동차 생산 공장 하나를 건설하는 데는 보통 10억 달러(약 1조685억 원) 이상이 들고 개발에서 생산까지 5년 넘게 걸린다. 아웃소싱하기에는 애플의 자동차 역량이 너무 미약하고, 생산기지를 건설하기에는 재원과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이러한 난제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애플과 자동차 기업의 빅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2015년 애플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은 팀 쿡 CEO에게 테슬라를 인수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

    충성심으로 정평이 나 있는 애플 고객들을 자동차 시장에서도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최근 애플이 공개한 애플워치는 최저성능 가격이 384달러지만 18K 금박을 입힌 에디션은 1만 달러에 달했다. 더욱이 배터리 문제로 지속시간이 18시간에 불과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출시해 예약주문을 받자 애플워치는 단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 글로벌 브랜드 가치 1위라는 애플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자동차 시장은 시계보다 더욱 고가고 보수적이지만, 애플카의 브랜드 파워를 낮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애플은 지금까지 이른바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혁신을 주도해왔다. GUI(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 MP3, 스마트폰 등은 모두 이전에 존재했던 기술이었으나, 그 성공적인 대중화는 애플을 통해 이뤄졌다. 마찬가지로 자율주행차나 전기차도 구글이나 테슬라가 먼저 시작했지만 자동차 시장의 혁신은 애플카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2014년 말 1800억 달러)을 보유한 기업이기도 하다. 다양한 무기를 장착한 애플이 정체된 자동차산업에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을지, 또 미래 자동차 시장을 바꿔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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