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인민회의.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북한 입법기구다. 5년에 한 번씩 주민들이 지역·직능별 대의원을 선발해 구성하는 이 기구는 북한 헌법상 최고주권기관이지만, 조선노동당의 결정사항을 추인하는 기능에 머물러왔다. 1년에 한두 번씩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전체회의가 당 대표자회의에 비해 훨씬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다. 4월 9일 13기 최고인민회의 3차 회의 직후의 평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보름여가 지난 4월 하순, 국내외 정보당국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간 눈여겨보지 못했던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4월 9일 본회의에 앞서 열린 예산위원회에서 2015년 예산을 보고한 기광호 재정상이 그 주인공. 공식적으로는 ‘민간경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 북한에서 내각 재정성은 사실상 국가 경제 전체를 이끄는 실무사령탑 노릇을 하는 기관이다. 조직도로만 따지면 재정상은 한국 기획재정부 장관과 비슷한 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렇듯 주요 직책을 맡은 인물이 외부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뉴 페이스’라는 사실. 2월 15일 평양 빙상관에서 열린 피겨축전을 소개하는 북한 관영언론 보도에서 재정상 직함을 사용해 승진 기용 사실이 확인됐을 뿐, 북한 측은 그의 임명을 따로 보도하지 않았다. 주요 인사 290여 명을 수록했다는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도 그에 관한 정보는 없을 정도. 경제부서에서 일하다 서울에 온 탈북자들에게조차 낯선 얼굴이기는 마찬가지다.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사람”
기묘하게도 ‘기광호’라는 이름 석 자가 그나마 더 알려져 있는 곳은 국제금융계다. 2000년대 중반부터 그가 금융 문제와 관련한 주요 대외 협상 테이블을 사실상 지휘해왔다는 것. 2007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여 있던 북한 자금을 해제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과 벌인 협상이 대표적이다. 그해 11월 19일부터 이틀간 뉴욕 유엔 미국대표부에서 열린 금융실무회의에서 기광호는 재정성 대외금융국장 자격으로 북한 대표단장을 맡았다.
이 무렵 북한과 미국은 2007년 6자회담을 통해 도출된 2·13합의의 일환으로 금융제재를 해제하는 등 북한을 국제금융체제에 편입하는 문제를 두고 협상을 벌였다. 기 단장을 비롯한 6명의 북측 대표단은 당시 미국 금융전문가들을 잇달아 면담하고 월가 금융회사를 방문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는 후문. 당시 북측의 주된 관심사는 세계은행(WB) 등 국제금융기구 가입 문제였다는 게 이에 관여한 미국 측 인사들의 설명이다.
기광호 일행과 월가 인사들의 면담을 주선한 한 전직 미국 당국자는 ‘주간동아’와 e메일 인터뷰에서 “내가 아는 한 기광호는 국제금융 시스템에 대해 식견이 있는 북한 내 유일한 인물”이라며 “다른 북측 관계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여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 출신이라는 배경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개인적 특성은 최근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창립 실무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진리췬 임시사무국장과도 비견할 만하다는 것. 진 국장은 세계 각 나라와 AIIB 가입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인이 아니라 금융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알렉산더 만수로프 미 존스홉킨스대 겸임교수는 기광호에 대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는 사람(who knows how the world works)’이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금융계에서의 이러한 평판과 달리 그간 평양 내부에서는 권력 핵심과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4년부터 2009년까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동선을 분석해 동행·동석자 전체를 집계한 자료에서 그의 이름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된 계기는 2011년 5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와의 차관 협상. 이 무렵부터 북측 언론에서는 그를 ‘재정성 부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옛 소련 시절 러시아에 진 채무 12조 원을 조정하는 이 협상에서 그는 북측 재정대표단장이었고, 2012년 9월 모스크바에서 이를 전액 탕감하는 최종 협정을 완성해 서명한 당사자였다. 북·러 관계가 급물살을 타게 된 상징적 사건으로 남은 이 협정은 이후 줄줄이 이어진 양국 경제협력계획의 신호탄 노릇을 했다. 북한에서 금융 분야에 종사했던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올해 재정상에 임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대외경제, 그것도 국제금융을 중심으로 경력을 쌓아온 인물의 재정상 발탁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사실. 전임자들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진 속 얼굴 역시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2012년까지 재정상을 맡았던 박수길은 함경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지방행정관료 출신이고, 이전 시기 역대 재정상 역시 주로 예산회계에 잔뼈가 굵은 관료가 맡아왔다는 게 경제 부문 출신 탈북자들의 설명. 요컨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인물이 국가 재정실무의 키를 쥐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김정은 체제가 향후 국제금융을 활용해 경제개발계획을 본격화하고자 준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그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계속된 경제제재로 북한이 국제금융망에서 완전히 배제돼왔고, 이 때문에 위안화와 루블화를 무역결제에 활용하는 등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시도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 여기에 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4월 25일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북측에 설명하며 참여를 요청했다는 외신보도를 더하면, 평양이 AIIB 등 새로운 국제금융기구를 경제개발에 활용하려 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위험하고도 미묘한
또 다른 포인트는 북한 국내 경제다. 최근 수년간 급속도로 증가한 사(私)경제 부문을 공식 경제에 끌어들이기 위해 일반 주민이 예금할 수 있는 소매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기존 북한 은행은 경제기관의 대외결제를 위한 창구 개념으로, 개인 예금을 받거나 민간에 대출해주는 기능은 사실상 전무했다. 이 때문에 그간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가 한 단계 진화하려면 장마당에서 달러를 벌어들인 ‘돈주’들의 자금을 금융기관으로 흡수해 다시 민간에 빌려주는 ‘승수효과’가 작동해야 한다고 분석해왔다.
기광호와 함께 경제 부문의 새로운 인물로 꼽히는 김천균 북한 중앙은행 총재는 2월 3일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이 확립되는 데 맞게 금융사업의 방법도 개선하고 경제기관과 기업체들이 벌이는 주동적이며 창발적인 기업 활동에 금융 조치들을 따라 세우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09년 화폐개혁 시도로 상징되는 막무가내 국가 개입 대신, 통화량과 금리로 경제를 조정하는 서구식 정책 메커니즘의 도입을 고민하는 듯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한 장밋빛 해석에도, 아직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 역시 만만치 않다. 평양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모색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이를 현실화할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 싱가포르와 캐나다 등에서 진행되는 단기 연수 교육만으로 존재하지 않던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한 전직 북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마도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잘라 말했을 정도다. 더욱이 이는 북한 당국이 어떤 형식으로든 금전 형태의 사유재산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체제 근간에 해당하는 사안. 아무리 기대효과가 크다 해도 섣불리 나설 만한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의 역대 재정상은 10명에 3~4명꼴로 숙청 혹은 처형당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자리다. 책임이 큰 만큼 위험도 크다. 기광호는 과연 이 미묘하고도 복잡한 과업을 성공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평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인물’의 험난한 줄타기에 북한 경제의 미래가 걸려 있다.
그러나 보름여가 지난 4월 하순, 국내외 정보당국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간 눈여겨보지 못했던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4월 9일 본회의에 앞서 열린 예산위원회에서 2015년 예산을 보고한 기광호 재정상이 그 주인공. 공식적으로는 ‘민간경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 북한에서 내각 재정성은 사실상 국가 경제 전체를 이끄는 실무사령탑 노릇을 하는 기관이다. 조직도로만 따지면 재정상은 한국 기획재정부 장관과 비슷한 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렇듯 주요 직책을 맡은 인물이 외부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뉴 페이스’라는 사실. 2월 15일 평양 빙상관에서 열린 피겨축전을 소개하는 북한 관영언론 보도에서 재정상 직함을 사용해 승진 기용 사실이 확인됐을 뿐, 북한 측은 그의 임명을 따로 보도하지 않았다. 주요 인사 290여 명을 수록했다는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도 그에 관한 정보는 없을 정도. 경제부서에서 일하다 서울에 온 탈북자들에게조차 낯선 얼굴이기는 마찬가지다.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사람”
4월 9일 열린 13기 최고인민회의 3차 회의 소식을 전한 이튿날 ‘노동신문’ 2면. 박봉주 내각총리와 기광호 재정상의 보고 내용을 전면에 편집했다.
이 무렵 북한과 미국은 2007년 6자회담을 통해 도출된 2·13합의의 일환으로 금융제재를 해제하는 등 북한을 국제금융체제에 편입하는 문제를 두고 협상을 벌였다. 기 단장을 비롯한 6명의 북측 대표단은 당시 미국 금융전문가들을 잇달아 면담하고 월가 금융회사를 방문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는 후문. 당시 북측의 주된 관심사는 세계은행(WB) 등 국제금융기구 가입 문제였다는 게 이에 관여한 미국 측 인사들의 설명이다.
기광호 일행과 월가 인사들의 면담을 주선한 한 전직 미국 당국자는 ‘주간동아’와 e메일 인터뷰에서 “내가 아는 한 기광호는 국제금융 시스템에 대해 식견이 있는 북한 내 유일한 인물”이라며 “다른 북측 관계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여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 출신이라는 배경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개인적 특성은 최근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창립 실무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진리췬 임시사무국장과도 비견할 만하다는 것. 진 국장은 세계 각 나라와 AIIB 가입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인이 아니라 금융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알렉산더 만수로프 미 존스홉킨스대 겸임교수는 기광호에 대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는 사람(who knows how the world works)’이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금융계에서의 이러한 평판과 달리 그간 평양 내부에서는 권력 핵심과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4년부터 2009년까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동선을 분석해 동행·동석자 전체를 집계한 자료에서 그의 이름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된 계기는 2011년 5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와의 차관 협상. 이 무렵부터 북측 언론에서는 그를 ‘재정성 부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옛 소련 시절 러시아에 진 채무 12조 원을 조정하는 이 협상에서 그는 북측 재정대표단장이었고, 2012년 9월 모스크바에서 이를 전액 탕감하는 최종 협정을 완성해 서명한 당사자였다. 북·러 관계가 급물살을 타게 된 상징적 사건으로 남은 이 협정은 이후 줄줄이 이어진 양국 경제협력계획의 신호탄 노릇을 했다. 북한에서 금융 분야에 종사했던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올해 재정상에 임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대외경제, 그것도 국제금융을 중심으로 경력을 쌓아온 인물의 재정상 발탁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사실. 전임자들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진 속 얼굴 역시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2012년까지 재정상을 맡았던 박수길은 함경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지방행정관료 출신이고, 이전 시기 역대 재정상 역시 주로 예산회계에 잔뼈가 굵은 관료가 맡아왔다는 게 경제 부문 출신 탈북자들의 설명. 요컨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인물이 국가 재정실무의 키를 쥐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김정은 체제가 향후 국제금융을 활용해 경제개발계획을 본격화하고자 준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그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계속된 경제제재로 북한이 국제금융망에서 완전히 배제돼왔고, 이 때문에 위안화와 루블화를 무역결제에 활용하는 등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시도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 여기에 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4월 25일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북측에 설명하며 참여를 요청했다는 외신보도를 더하면, 평양이 AIIB 등 새로운 국제금융기구를 경제개발에 활용하려 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위험하고도 미묘한
또 다른 포인트는 북한 국내 경제다. 최근 수년간 급속도로 증가한 사(私)경제 부문을 공식 경제에 끌어들이기 위해 일반 주민이 예금할 수 있는 소매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기존 북한 은행은 경제기관의 대외결제를 위한 창구 개념으로, 개인 예금을 받거나 민간에 대출해주는 기능은 사실상 전무했다. 이 때문에 그간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가 한 단계 진화하려면 장마당에서 달러를 벌어들인 ‘돈주’들의 자금을 금융기관으로 흡수해 다시 민간에 빌려주는 ‘승수효과’가 작동해야 한다고 분석해왔다.
기광호와 함께 경제 부문의 새로운 인물로 꼽히는 김천균 북한 중앙은행 총재는 2월 3일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이 확립되는 데 맞게 금융사업의 방법도 개선하고 경제기관과 기업체들이 벌이는 주동적이며 창발적인 기업 활동에 금융 조치들을 따라 세우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09년 화폐개혁 시도로 상징되는 막무가내 국가 개입 대신, 통화량과 금리로 경제를 조정하는 서구식 정책 메커니즘의 도입을 고민하는 듯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한 장밋빛 해석에도, 아직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 역시 만만치 않다. 평양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모색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이를 현실화할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 싱가포르와 캐나다 등에서 진행되는 단기 연수 교육만으로 존재하지 않던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한 전직 북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마도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잘라 말했을 정도다. 더욱이 이는 북한 당국이 어떤 형식으로든 금전 형태의 사유재산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체제 근간에 해당하는 사안. 아무리 기대효과가 크다 해도 섣불리 나설 만한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의 역대 재정상은 10명에 3~4명꼴로 숙청 혹은 처형당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자리다. 책임이 큰 만큼 위험도 크다. 기광호는 과연 이 미묘하고도 복잡한 과업을 성공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평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인물’의 험난한 줄타기에 북한 경제의 미래가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