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2015.03.30

떠들썩한 검찰 사정수사 MB 발톱도 못 건드릴걸?

첩보에 의존한 창고 방출식 수사…정권 ‘부정부패 척결’ 압박에 초조한 검찰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5-03-27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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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들썩한 검찰 사정수사 MB 발톱도 못 건드릴걸?

    3월 12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취임 후 처음으로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올 게 왔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수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3월 13일 36시간에 걸쳐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포스코건설의 한 임원은 속전속결로 끝날 것 같던 수사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이같이 말했다. 12일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정부패 척결’ 담화 바로 다음 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번 압수수색은 이후 진행된 검찰 수사, 즉 사정수사의 신호탄이 됐다. 법조계는 물론 야권에서조차 “이번에는 검찰이 이명박(MB) 전 대통령 본인이나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MB정권의 핵심 실세를 제대로 공격할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것 같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이런 믿음은 3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부패에 대한 단호한 조치”와 “비리덩어리를 뿌리째 들어내야 한다”고 발언한 후 기정사실화됐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이 확실한 증거를 잡고 총리실에 귀띔을 해준 것 같다”는 말까지 흘러 다녔다. 검찰이 박 대통령의 ‘단호한 조치’ 발언이 있었던 17일 박 전 차관과 깊은 인연을 가진 이모 회장의 J업체 등 하청업체들을 압수수색했기 때문이다. J업체는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공사를 실질적으로 진행한 하청업체로 일명 ‘포스코 비자금’의 세탁처로 의심받아온 곳이다.

    사정수사 용두사미 될라

    하지만 검찰의 ‘사전 증거 확보설’은 말 그대로 소문난 잔치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 워낙 오래전부터 MB정권 실세 연루설과 관련한 소문이 많이 돌아 관련 피의자들이 물증을 제거하고 수사에 대비할 시간이 그만큼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정수사의 신호탄이 된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설은 이미 지난해 초 증권가 정보지에도 등장할 만큼 잘 알려진 내용이었다. 각 언론에서도 ‘충분히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어’ 기사는 못 쓰는 애물단지 정보였다. 검찰과 경찰의 범죄정보 담당 수사관들도 상부에 첩보 보고를 마친 상태였다. 당시 떠돌던 소문의 내용은 이랬다.



    ‘포스코건설이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의 지시로 베트남에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하는 공사를 박 전 차관의 ‘아바타’ 같은 존재인 이 회장의 J업체 등 하청업체에게 맡겼고, 이 회장은 베트남 발주처(지방정부 관료들)에 리베이트 명목으로 뇌물을 주는 척하면서 그 돈을 빼돌려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거쳐 정 전 회장에게 건넸으며, 이 돈이 다시 박 전 차관과 MB정권 실세에게 흘러들어갔다.’

    검찰은 3월 24일 포스코건설 베트남사업단장인 박모 상무를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베트남 고속도로 공사 등에서 J업체에 대금을 부풀려줬다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 100억 원을 조성하고 그중 40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동남아사업단장을 지낸 또 다른 박모 상무가 다른 하청업체를 통해 같은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이 비자금이 ‘윗선’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용처를 수사하고 있지만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이 끝난 지 3주가 지나가는 시점에도 MB정권과의 접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포스코건설 비자금 횡령건은 이미 지난해 첩보를 접수하고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입건해 수사 중인 사안이었다. 문제는 횡령한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느냐를 찾는 것인데 쉽지 않을 것이다. 워낙 시간이 흘렀고 정보가 시중에 흘러 다니면서 관계인들이 준비를 단단히 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포스코건설 측은 베트남에서 조성한 비자금의 용처를 관행상 해오던 ‘발주처 리베이트’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검찰 한 관계자도 “대통령과 총리까지 나서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밝힌 터라 부담이 크다. 포스코건설 건은 자칫하면 정 전 회장이나 정 전 부회장까지 못 갈 수도 있다. 일단 소환은 하겠지만 포스코건설 측이 조성한 비자금에 대해 베트남 발주처 측에 관행적으로 준 리베이트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 리베이트에 영수증이 달린 것도 아니고 베트남 관료들을 소환해 추궁할 수도 없다. (검찰이) MB정권 실세뿐 아니라 그 당시 근무했던 청와대 고위인사와 연루된 모든 첩보를 한꺼번에 수사 대상에 올려놓은 것도 그런 고충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의 ‘묻지 마’ 식 기업 인수합병(M·A) 및 계열사 확장과 관련한 배임 혐의 수사도 녹록지 않다. 대표적 사건인 포스코플랜텍의 성진지오텍 인수 건은 이미 2010년 검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MB정권과의 접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박 전 차관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전정도 성진지오텍 회장을 160억 원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했지만 끝내 비자금 용처를 밝혀내지 못했다. 전 회장은 회사 돈 횡령과 사기 대출 혐의만 인정돼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떠들썩한 검찰 사정수사 MB 발톱도 못 건드릴걸?

    검찰이 3월 17일 포스코건설의 부산지역 하청업체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품을 차에 싣기 위해 건물을 나서고 있다(왼쪽). 검찰은 그다음 날인 18일에는 자원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했다.

    융단폭격하다 보면 언젠가 걸린다?

    자원외교 수사와 방산비리 수사도 실무진 차원의 처벌에서 끝날 개연성이 농후해 보인다. 검찰은 러시아 캄차카 석유탐사 정부융자금 횡령 의혹과 관련해 3월 18일 경남기업과 한국석유공사를 압수수색하고 해외개발사업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여부를 확인 중이지만, MB정권 실세와의 연관성을 밝힐 물증은 찾지 못한 상태다. 경남기업이 한국광물자원공사로부터 일반융자금 130억 원을 받아 진행한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개발사업 관련 비자금 조성 의혹도 130억 원에 대한 용처 수사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 방산비리 수사 또한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과 무기중개상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을 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끝날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판단이다.

    사정수사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전 인력을 사정수사에 쏟아붓고 있는 검찰은 지금까지 MB정권 실세들과 관련해 언론이나 재계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과 자체적으로 생산된 첩보를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수사 사건에서 MB정권 실세들과의 접점을 찾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라도 찾아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 대표적 의혹이 인천 송도 포스코건설 본사 사옥 소유 지분의 특혜 양도 의혹과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의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설이다.

    포스코건설 본사 사옥 소유 지분의 특혜 양도 의혹은 MB정권 초창기인 2008년 4월 포스코건설이 4000억 원의 본사 사옥을 지으면서 국내에서 건설 또는 분양 실적이 전혀 없는 자본금 5억 원의 영세업체에게 사옥 소유 지분과 임대회사 지분 51%를 넘기면서 불거졌으며, 재계에선 해당 업체의 실제 주인이 MB정권 실세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다(‘주간동아’ 921호 관련 보도 참조).

    검찰은 포스코가 정 전 회장 재임 시절 석탄처리 신기술 개발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통해 석탄 22만t에 해당하는 500억 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부 직원의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찰은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하청업체의 용역비를 부풀려 100억 원대 비자금을 만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정 전 회장과 MB정권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내부 제보를 확보하고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건설 또한 2011년 광주와 부산의 아파트 사업과 주상복합상가 개발사업으로 발생한 손실을 분식회계를 통해 무마했고, 그 과정에서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설이 돌고 있으며, 지난해 초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2심이 진행 중인 포스코건설 전 여직원 사건도 다시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1심이 진행되는 동안 횡령한 109억 원 중 40억~50억 원이 어디에 쓰였는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 당시 검찰 주변에선 포스코건설 측이 내부 감사를 통해 모든 사실을 밝혀내고도 횡령액을 30억 원으로 축소했으며 조직적 가담을 숨기려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떠들썩한 검찰 사정수사 MB 발톱도 못 건드릴걸?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만든 비자금이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을 거쳐 MB정권의 실세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각각 불법자금 수수와 알선수재 혐의로 교도소를 다녀왔다(왼쪽부터).

    왜 하필 지금 쏟아붓나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출 과정에서 MB정권 실세 개입 의혹과 비자금 조성설이 끊임없이 제기돼온 우리은행의 중국 화푸빌딩 3800억 원 프로젝트 파이낸싱(융자) 사건도 검찰이 들여다볼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화푸빌딩은 2010년 MB정권 실세를 줄줄이 감옥으로 보냈던 이정배 파이시티 대표의 중국인 파트너 민모 씨가 우리은행으로부터 3800억 원을 지급보증받아 중국 베이징에 세운 건물로, 우리은행 측은 민씨 부인과의 소유권 소송 등 화푸빌딩과 관련한 소송 수십여 개에서 줄줄이 패소해 현재까지 투자 대금의 30%조차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

    법조계는 물론, 검찰 내부에서조차 MB정권을 정조준한 문어발식 사정수사를 두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 MB정권 핵심 인사들과 관련한 신빙성 있는 비리 첩보가 끊임없이 쌓여왔지만 왜 당시 속전속결로 해결하지 않고 지금 와서 한꺼번에 수사에 착수해 검찰의 부담만 가중하느냐는 것.

    특히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사정수사와 관련해 3월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일해도 되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는 수사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라 내사만 하고 있었고, 상황이 바뀌었다고 본다”고 한 발언은 표적 수사 논란에 불을 지폈다. 2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인사에서 권력형 비리 수사를 맡고 있던 특수1부장이 지방의 지청 부장으로 발령 나는 등 특수4부장을 제외한 특수1, 2, 3부장이 전격 교체된 지 한 달 만에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하자 황 장관의 “지난해는 수사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무엇이냐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조차 말이 많다.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검사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상황을 자세히 보면 검찰 범죄정보 라인의 캐비닛에서 잠자던 모든 첩보가 실제 수사 선상에 올라왔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사정수사에도 기한이 있고 모든 검사가 이번 수사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특히 권력형 비리 수사는 인내심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렇게 많은 수사를 동시에 진행해서는 MB정권의 발톱도 못 건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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