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0

2015.03.23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어린아이 한국인 :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5-03-23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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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구본진 지음/ 김영사/ 436쪽/ 1만8000원

    흉악범의 글씨는 각이 많이 지고 마지막 부분이 흐려지며 필압(筆壓)이 무겁고 글자 사이 공간이 좁으며 글씨 쓰는 속도가 느리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의 글씨는 무질서하고 필압이 약하며 기초선이나 기울기, 크기, 간격, 속도 등의 변화가 심하고 억지로 꾸민 듯한 형태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글씨 간격이 매우 좁고 혼란스러우며 변화가 심한 데 비해, 치밀한 사람은 글씨가 작고 명료하며 정돈돼 있다.

    이쯤 해서 자신의 글씨를 다시 보게 된다. 글씨 쓰는 속도가 느린가. 필압이 약한가. 글씨 간격이 좁은가. 저자 구본진은 21년 동안 검찰청 조사실에서 수많은 피의자의 자필 진술서를 보며 ‘글씨가 곧 그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어떤 사람의 필적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추론하는 ‘필적학(Graphology)’을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2009년 발표한 ‘필적은 말한다’이다. 이 책에서 그는 항일운동가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각지고 힘차며 글자 간격은 좁고 행 간격은 넓으며 꾸밈이 별로 없고 필선이 깨끗한 반면, 친일파들의 글씨는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며 글자 간격이 넓고 행 간격은 좁으며 꾸밈이 심하다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다음 시도는 고대 글씨에 남아 있는 DNA 암호를 풀어내 한민족의 기원과 원형을 밝히고 정체성을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어린아이 한국인’이라는 책 제목에서 그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둥글고 불규칙하며 자유분방한 고대 한민족의 글씨는 어린아이 필체의 전형적인 특성이며, 이를 통해 고대 한민족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순박하고 꾸밈없으며 활력이 충만하고 행동이 신속하며 진취적이었음을 추론한다. 이러한 특징을 ‘네오테니(neoteny·어린이화, 유년화)’ 현상이라 하는데, 네오테니 맥락에서 보면 아이의 특징을 계속 유지하면서 느리게 발달하는 것이 더 ‘좋은’ ‘우수한’ 것이다. ‘어린아이 한국인’은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파고든 ‘필적 고고학’의 전 과정을 담은 책이다.

    2013년 그 존재가 드러난 신라시대 경주 금관총에서 나온 ‘이사지왕 세고리자루 큰칼’에 새겨진 글씨를 보자. 같은 무덤에서 나온 정교한 금관을 만든 이들의 솜씨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爾斯智王’ 네 글자의 크기가 제각각일 뿐 아니라 기우뚱하고 들쭉날쭉하게 새겨져 있다. 이처럼 그 시대의 글씨에는 ‘신들린 무당의 춤’처럼 자유분방한 신라, 위풍당당한 고구려, 우아하고 맑은 백제의 DNA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시대 완고한 양반 사회에서는 글씨체마저 중국화됐고,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경직되고 규칙성이 두드러지는 글씨체로 변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진위 논란(중국 홍산문화 유물이냐 모조품이냐)이 있는 ‘흑피옥기’에 새겨진 글씨들에 주목했다. 이 글씨들은 아직 해독하지 못했는데, 저자는 흑피옥기에 새겨진 글씨체가 신라 법흥왕 치세 이전의 고신라 글씨체와 같은 특징을 지니며, 고대 중국의 글씨체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흥미로운 주장과 함께 400여 쪽의 책에 실린 수많은 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룻밤이 훌쩍 지나간다.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창작의 힘

    유경희 지음/ 마음산책/ 268쪽/ 1만4000원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매일 새벽 6시 친구들을 만나 산책하고 티볼리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 뒤 자신의 화실로 돌아왔다. 스스로 ‘기도 여행’이라 명명한 이 일정을 30년간 계속했다고 한다. 다빈치, 고흐, 피카소, 뭉크, 오키프 등 예술가 24명의 삶을 통해 창작의 근원을 들여다본다.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도판 137점도 흥미롭다.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말하다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52쪽/ 1만2000원

    ‘보다’에 이은 두 번째 산문집.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가 그동안 해온 인터뷰, 강연, 대담 내용을 해체해 책으로 재정리한 것으로, 글쓰기와 문학을 통해 ‘감성 근육’을 키워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내면을 구축하라고 조언한다. 강연회 웹사이트 TED에 소개돼 136만 건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한 강연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도 수록돼 있다.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역사저널 그날 1, 2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민음사/ 각 270쪽 안팎/ 1권 1만4800원, 2권 1만3800원

    한국사 속 진실을 ‘수다’로 풀어낸 KBS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이 책으로 나왔다. 본문은 방송 분위기를 살려 대화체로 엮되 사료와 주석, 그림을 보충해 완성도를 높였다. 1권은 태조에서 세종까지, 2권은 문종에서 연산군까지로 구분하되 역사를 통사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한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그날’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푼 것이 특징이다.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 지음/ 불광출판사/ 322쪽/ 1만4000원

    전남 해남에서 단기 출가학교가 열렸다. 한 달간 인터넷과 스마트폰, 육식과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불교와 인문학 고전을 공부한 청년 7명은 어둠 속에서 빛을 느끼고 소리를 듣는 ‘감각의 회복’을 경험한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인 저자는 감수성을 회복하려면 먼저 잘못된 습관부터 바꿔야 하며, 삶을 바꾸는 것은 ‘생각의 힘’에 달렸다고 말한다.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메모로 나를 경영하라

    오경수 지음/ 상상미디어/ 272쪽/ 1만5000원

    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 명예회장인 저자는 30년 전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정보전략 업무를 담당하며 메모와 정보관리 기술에 눈떴다. 단순히 잊지 않기 위한 메모가 아니라, ‘내 경험의 모든 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정보에 가치를 더하는 기술을 삼성에서의 실전 경험을 토대로 설명한다. 그 밖에 ‘메시지 경영’ ‘메모 라이프’ 등 다양한 삶의 기술도 들려준다.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괴물의 심연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더퀘스트/ 260쪽/ 1만3500원

    살인마의 뇌 구조를 연구해온 저자는 어느 날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명확한 사진을 한 장 발견한다. 놀랍게도 그것은 자신의 것이었고, 집안 내력을 보니 조상 중에서 악명 높은 살인마가 줄줄이 나왔다. 그는 어떻게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유전과 양육의 본질을 파고들며, 상식을 깨는 결론으로 우리를 유도하는 책.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달콤한 제국 불쾌한 진실

    김경일 지음·그림/ 함께읽는책/ 272쪽/ 1만3000원

    다이아몬드, 커피, 와인, 모피의 공통점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화가 김경일은 이 ‘달콤한 물건’들 뒤에 도사린 ‘불쾌한 진실’을 바라본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의 원인이 된 다이아몬드, 다국적 대기업에 의해 ‘착취의 열매’가 된 커피, 취향이라는 명분으로 살육을 허용한 모피 등 만화를 통해 인간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끄집어 내놓는다.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조하나 보크만 지음/ 홍기빈 옮김/ 글항아리/ 588쪽/ 2만8000원

    1949년 유고슬라비아는 노동자 자주관리, 탈중앙집중화, 시장,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등에 기초한 혁신적인 사회주의 실험을 시작했다. 또한 헝가리에서 시도된 시장사회주의, 이탈리아 우익 싱크탱크에서 이뤄진 초국적 논의들을 통해 ‘자유시장=자본주의’ vs ‘사회주의=반(反)시장적 국가주의’라는 양분법에서 벗어나 ‘신고전파 경제학’의 재발견을 시도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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