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0

2015.03.23

법안 따로 평가 따로, 대학들 전전긍긍 눈치 경쟁

대학구조개혁 평가보고서 제출 앞두고 대학가 비상…‘학교 문 닫을지 모른다’ 위기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3-23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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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안 따로 평가 따로, 대학들 전전긍긍 눈치 경쟁

    서울 17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사립대학 이대로는 아니 된다’ 모임 회원들이 3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교육당국의 일방적 학사 운영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얼마 전 교수협의회에서 조사해보니 최근 3년 새 신규 임용된 교수 비율이 전임 교원의 4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대부분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이른바 비정규직 교수들이죠. 주위 다른 대학도 다 비슷한 상황이에요.”

    부산지역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구조개혁평가’(대학평가)를 앞둔 학교 분위기를 알려달라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지방대에선 오래지 않아 비정년 교수가 정년 교수보다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학이 성적 평가 기준과 재수강 제도 등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데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등 서울 지역 17개 사립대 총학생회가 구성한 ‘사립대학 이대로는 아니 된다’(사이다) 모임은 최근 서울 시내 상당수 대학이 성적 평가 방법을 바꿨다고 밝혔다. 한양대의 경우 절대평가 방식으로 운영하던 전공 및 영어 강의를 상대평가로 전환했고, 성신여대와 세종대, 홍익대는 재수강 성적 상한선을 ‘B+’로 정했다. ‘사이다’는 이에 대해 “교수 재량을 제한하고, 학생 간 과잉경쟁을 낳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월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16만 명 줄이는 내용의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2014~2022년 9년을 3주기로 나눠 각 주기마다 전국 대학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해 차등적으로 정원을 줄일 계획이다.

    교육부, 차등적 정원 감축 요구



    이 평가에서 A등급을 받으면 대학 스스로 정원 감축 여부를 정할 수 있으나 B~E등급에 속한 대학은 교육부가 정한 비율에 따라 입학정원을 줄여야 한다. D, E 등급으로 분류되면 2016년부터 국가 재정지원 사업 참여를 제한받고, 국가장학금 미지급, 학자금 대출 제한 등의 조치도 추가된다.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지난해 4월 대표발의한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에는 ‘(전략) 연속하여 2회 이상 최하위 등급의 평가를 받은 대학의 학교법인에 대하여는 (중략) 대학의 폐쇄를 명령하거나 해당 학교법인의 해산을 명령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대학들이 이번 평가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가 국면이 본격화된 것은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 기본계획’을 확정한 뒤부터. 현재 전국 대학들은 이 기준에 따라 자체 평가를 진행 중이다. 첫 보고서 제출일은 4월 3일로 정해졌다. 1단계 평가기준은 △교육여건 △학사관리 △학생지원 △교육성과 등 4개 항목 12개 지표. 각 지표 아래는 ‘전임교원 확보율’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제도 운영’ 등의 평가요소가 적시돼 있다. 대학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고자 비정규직 교원을 선발하고, 학사관리 제도를 개편하면서 대학 사회에 일대 회오리가 불고 있는 셈이다.

    윤지관 한국대학학회 회장(덕성여대 영문과 교수)은 “대학정보 공시시스템 ‘대학알리미’에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모의평가한 결과를 보면, 총점 1점 차이로 대학 순위가 20~30위까지 뒤바뀐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학들이 학생 교육보다 지표 관리에 몰두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교육의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 고등교육 체제를 어떻게 바꿔나가겠다는 청사진 없이, 마치 기업의 구조조정처럼 진행하는 구조개혁 작업이 대학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평가를 통한 대학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이를 선제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피해가 지방대에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번 평가에서 ‘학생충원율’ 지표는 수도권대와 지방대별로, ‘졸업생 취업률’의 경우는 권역별로 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다. 지역별 특성과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해 평가함으로써 지방대가 수도권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놓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서울 소재 한 여대의 교수는 “이 조치 때문에 수도권 중하위권 대학들에 비상이 걸렸다. 교육 경쟁력 없는 대학을 퇴출하겠다면서 정작 세부 기준을 만들 때는 정치적 고려를 하는 비교육적 상황에 대학들이 일희일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도권대와 지방대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법안 따로 평가 따로, 대학들 전전긍긍 눈치 경쟁

    ‘좋은 학생회 만들기 모임’ 소속 대학생들이 1월 5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육개발원 앞에서 ‘교육부 대학평가 규탄, 대학생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위).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월 4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열린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대학 구조개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반면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동의대 사학과 교수)은 “여전히 평가지표가 지방대에 불리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장학금 지급률이나 교육비 환원율 같은 정량지표는 지방에 있는 소규모 대학에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모의평가 결과 지방사립대가 대거 D, E 등급에 속하는 걸로 나타났다. 이대로 가면 지방대에 쓰나미가 덮치고,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방 경제마저 붕괴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월부터 전국 사립대를 방문해 각 대학 교수회 관계자들과 ‘공동전선’을 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비록 규모가 작더라도 건전하게 운영되는 대학이 있다. 반면 비정규직 교원을 대거 임용하고, 입학하지도 않은 학생들을 등록한 것처럼 꾸며 별도로 관리하는, 외양만 화려한 부실 대학도 많다. 교육부가 진짜 해야 할 일은 부실 비리 사학재단을 단죄해 학문 생태계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평가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눈여겨볼 것은 현장에서 대학평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인위적 대학 구조개혁에 반대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 부총리는 2월 25일 순천향대 신 입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 자리에서 “대학들이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정부는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는 방식이 올바르다”고 밝혔다.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대학 구조개혁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은 발의 후 아직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윤지관 회장은 이에 대해 “현재 교육부는 황 부총리 발언이나 법안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정해진 평가일정을 진행 중이고, 이에 따라 교육현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국대학학회 등 교육단체들이 조만간 정책 대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대학평가방식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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