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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장기 경기 침체 일본 닮아간다

기술 정체·인구증가율 둔화가 부른 ‘구조적 침체’ 가시화

  • 김선태 KB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david.kim@kbfg.com

장기 경기 침체 일본 닮아간다

장기 경기 침체 일본 닮아간다

서울 중구 명동 골목의 지난해 세밑 풍경. 한 점포에 폐업정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표적인 번화가 명동도 연말 특수가 사라진 썰렁한 모습이다.

세계 경제는 과연 성장을 멈춘 것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된 경제 부진이 단순한 경기순환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름 하여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가설이다.

1938년 미국 경제학자 앨빈 핸슨이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미국 경제가 30년대 발생한 대공황 이후에도 회복되지 못하고 과소 투자나 총수요 부족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탄생했다. 기술 정체와 인구증가율 둔화에 따라 투자 기회가 대폭 축소되면서 침체가 만성화할 수 있다는 게 그 골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2013년 10월 열린 브루킹스-후버 연구소 콘퍼런스와 같은 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포럼 연설에서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선진국 경제는 2000년대 초부터 구조적 요인에 의해 장기침체에 진입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댕겼고, 이후 다수의 저명한 경제학자가 이에 동조하고 나선 바 있다.

잠재 GDP에 못 미치는 실제 GDP

여기서 잠시 장기침체라는 용어를 학문적으로 정의해보자. 한 줄로 정리하자면 대체로 ‘실제 GDP(국내총생산)가 잠재 GDP에 못 미치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총수요가 억제돼 있거나, 공급 측면에서 잠재 GDP가 정체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용어 자체에 수요 요인(경기순환)과 공급 요인(성장잠재력)이 혼재 혹은 복합돼 있는 까닭에 특정 국가의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졌느냐 여부와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비슷한 다른 개념 또는 현상과 곧잘 혼용되거나 오인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분명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최근까지 선진국 중에서도 유럽, 일본 등이 상당 기간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고 총수요 부진마저 함께 나타나면서 이들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졌다고 보는 시각이 적잖다는 점이다(그래프1 참조). 경기순환 측면뿐 아니라 경제구조의 취약성으로 성장잠재력이 약화됐으며,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정책 오류가 함께 나타났다는 점도 이들 선진국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다.



특히 유로존 경제는 금융위기와 인구증가율 둔화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대표적인 경우다. 노동시장에 남아도는 유휴인력도 상당한 수준인 데다 강력한 통화 확대 정책에도 물가 하락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본 또한 1990년대 이후 대불황(great recession)이 진행되면서 제로(0)금리 정책으로 총수요를 지지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예외를 꼽자면 미국이다. 양적완화 같은 통화정책이 경기부양에 유용하게 작용하자 최근 들어서는 금융위기 이전의 성장률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를 다소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견해가 많지만, 금융위기 이후 실제 GDP가 잠재 GDP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기는 마찬가지여서 장기침체 우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마디로 주요 선진국 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에 대해 우려와 부정이 병존하고 있기는 해도 이들 국가의 경제 회복세가 빠른 시일 안에 강화되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적 요인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이 가시화하고 순환경기의 회복세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자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 역시 장기침체 상태에 진입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인구증가율 둔화와 소득분배 악화, 기업투자 부진, 생산성 회복의 제약 등 여러 구조적 취약성이 잠재성장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 경기 침체 일본 닮아간다
구조적 요인이 발목 잡으면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국내 경제는 간헐적인 성장률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전에 비해 그 회복세가 상당히 미약한 편이다. 인구감소와 함께 기술 진보나 생산성 향상도 지체되면서 잠재성장률 반등이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 연평균 5.4%에 달하던 평균성장률이 위기 이후에는 3.2%에 그쳤다(그래프2 참조).

물론 반론도 있다. 2011년 선진국 재정위기 이후 미국 경제의 회복세나 국내 경제 확장 정책 등에 의해 성장률이 완만하게나마 회복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경제가 유럽이나 일본 같은 전형적인 장기침체 상황에 돌입한 것은 아니라는 반대 견해 역시 만만치 않은 설득력을 갖는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장기침체라는 용어 자체가 사후적으로만 확인해볼 수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지금의 한국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졌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향후 순환경기 회복 과정에서 정책 실패나 금융위험이 발생하고 구조개혁이 실패한다면 국내 경제 역시 장기침체 상태에 빠질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장기침체에 대한 학문적 논쟁과 별개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정체되고 성장 회복력이 미약해지면서 발생하는 ‘저성장·저물가 현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특히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경우 각 경제 주체의 행동 양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저성장 현상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한국 경제에 내재된 장기침체 위험이 눈에 들어올수록 국내 각 기업과 금융기관은 위험관리나 수익 기반 다변화 작업에 나설 것이다. 저성장·고령화 현상 등을 반영한 상품과 서비스 트렌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흔히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추세에 모두가 적응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의미다. 그간 이어온 성공 역사와는 사뭇 다른 한국 경제의 불투명한 미래다.



주간동아 2015.02.02 974호 (p46~47)

김선태 KB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david.kim@kbf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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