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術(술)에서 學(학)으로 사주-관상-풍수의 변신

‘인생 2막’ 꿈꾸는 이들로 대학 문전성시, 학문적 성숙 없는 무분별 확산 우려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術(술)에서 學(학)으로 사주-관상-풍수의 변신

術(술)에서 學(학)으로 사주-관상-풍수의 변신
“과거엔 의(醫)·복(卜)·풍(風)을 술(術)이라고 했습니다. 사람 고치는 의술, 앞날을 점치는 복술, 그리고 풍수를 읽는 풍술을 동격으로 본 거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각 분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어요. 요즘 의술은 첨단과학 대접을 받지만 복과 풍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많지 않습니까. 이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송석준 공주대 대학원 동양학과 교수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힘이 있었다. 그는 공주대 한문교육과에서 오랜 세월 교편을 잡았고 한국양명학회장을 역임한 정통 유학자다. 그런데 지금은 사주, 관상, 풍수 등 이른바 ‘술수’를 가르치는 동양학과 학과장으로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2002년 공주대가 대학원에 역리학과(이후 동양학과로 개칭)를 만들기로 했을 때, 그는 반대 의견을 낸 교수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고, 역술은 학문이 아니라고 여겼거든요. 경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술수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은 강아지털 깎는 것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시대더라고요. 학문의 폭이 이렇게 넓어졌는데 10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콘텐츠를 비학문으로 낙인찍어 사장시키는 게 맞나 싶었습니다.”

이후 새로운 눈으로 역술을 바라보며 그는 술수의 세계가 매우 깊고 넓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인문학적 바탕을 가진 학자가 뛰어들면 크게 발전할 분야라는 확신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국립대로는 유일하게 사주명리학을 가르치는 공주대 대학원 동양학과 석·박사 과정에는 지금 약 50명의 대학원생이 재학 중이다. 송 교수는 “앞으로 이곳에서 풍과 복을 의 수준으로 올리는 게 목표”라며 “오늘날 우리가 의학을 활용해 삶의 질을 높이듯, 풍과 복에 담긴 과학을 일상의 삶을 바꾸는 데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이 아니다. 최근 역술 연구를 상아탑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이가 늘고 있다. 류성태 원광대 동양학대학원장도 그중 한 명이다. 노장철학 전문가인 그는 현재 동양학대학원 내 기공학과 학과장도 겸하고 있다. 류 교수는 “이른바 정통 학문을 한 분들 중에는 여전히 역술, 기공 등을 무시하는 이가 있다. 우리가 가르치는 술수를 ‘권모술수’ 정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역술은 한국인의 삶과 더불어 발전해온 기층문화로,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학계에서 확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術(술)에서 學(학)으로 사주-관상-풍수의 변신
전국 대학 역술 관련 학과 개설 봇물

이미 전국 여러 대학과 대학원이 동양학과, 동양문화학과, 동양사상학과, 국학과, 미래예측학과 등의 이름으로 역술 관련 학위과정을 운영 중이다. 그동안 대학원 과정에만 동양사상학과를 뒀던 대구한의대가 올해부터 학부에 동양문화학과를 개설하는 등 관련 학과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학문적 관심’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규문 경기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대우교수는 캠퍼스 내에서 역술 분야가 급속히 확산하는 배경으로 ‘역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를 꼽았다. 원광대와 공주대에서 명리 연구로 각각 석사 학위를 받고, 대전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요즘 전국 어느 대학을 봐도 역술을 공부하려는 지원자가 넘친다. 다른 학과들은 모집 정원을 못 채우는 경우가 허다한데 동양철학 관련 분야는 그럴 일이 없다”며 “경기대 동양학과의 경우도 원래 학과 정원은 5명 안팎이나 미달된 다른 학과 정원까지 받아서 매년 15명 안팎을 선발한다”고 했다. 류성태 원광대 교수도 “2015년 입시에서 동양철학과 기공학 전공자만 25명을 뽑았다”며 “희망자가 더 많았는데 학교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어 가능한 만큼만 선별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 역시 “상당수 대학원이 학생 부족으로 고사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지방대 인문계열 대학원에 이처럼 지원자가 몰리는 건 매우 예외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처럼 역술 공부를 위해 대학원 문을 두드리는 이가 보통 40~60대 중·장년층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현재 원광대 동양학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 30대 직장인은 “학생 가운데 절반 정도는 현재 철학관을 운영하는 분이고, 나머지 절반은 은퇴 후 관련 분야 진출을 고려하는 분으로 보인다. 후자에 속하는 이는 대부분 지금 공무원이거나 공기업, 중견기업 등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대구한의대 대학원 동양사상학과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학과 설립 목적이 아예 ‘산업체 임직원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교직원의 퇴임 후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업교육의 일환으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자 함’으로 명시돼 있다.

조규문 경기대 교수도 “지난해 우리 과 학생 평균 연령이 49세였다”며 “기업체 간부급 임직원과 4~5급 공무원 등 화이트칼라가 많고, 올해 최고령 합격자는 중견기업을 경영하는 75세 남성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왜 역술을 공부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철학관을 운영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처음엔 ‘살다 보니 운명이나 인생이 궁금해졌다’고 추상적, 형이상학적으로 얘기하는 분들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잠재적인 노후 대비책’으로 이쪽을 살펴보고 있음을 털어놓는다”고 했다. 은퇴 후를 걱정하는 베이비붐 세대 사이에서 역술이 ‘정년 없는 평생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셈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규 대학에서 역술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관련 수요가 창출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주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은 한 직장인은 “예전처럼 알음알음 고수를 찾아다니거나 사설기관에 가야 했다면 역술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역술을 대학 캠퍼스에서 ‘학문’으로 접할 수 있게 된 덕에 화이트칼라 직장인과 가정주부 등도 부담 없이 접근하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그 역시 당장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학위를 받아두면 언젠가 쓸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자기계발의 한 방식으로 역술을 공부했다는 설명이다.

術(술)에서 學(학)으로 사주-관상-풍수의 변신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인근에 늘어선 천막 역술원들.

‘곡학아세’에 대한 비판

術(술)에서 學(학)으로 사주-관상-풍수의 변신

역술 관련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경기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인터넷 홈페이지.

어느 방향에서 보든 최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역술 학위 취득 열풍은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들에 ‘가뭄에 단비’가 되는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실무 전문가 양성’ 등을 내걸고 학생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교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한 역술인은 “최근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검증되지 않은 역술인들이 ‘초빙교수’ ‘대우교수’ 등의 직함을 갖고 대단한 전문가처럼 활동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일부 학교는 학생을 몇 명 데려올 수 있는지에 따라 강의 기회를 줄지 말지 정하기도 하는데, 그 결과로 역술계 전체에 혼란이 생기고 있다. 갖가지 추문이 빚어지고, 역술의 학문적 수준은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다. 학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교수도 “일부 대학이 학사관리 등을 부실하게 하면서 학위만 주고 있는 게 문제”라며 “그런 사람들이 ‘대학에서 공부했네’ 하면서 곡학아세를 일삼으면 역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역술을 학문의 반열에 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진 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매우 우려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역술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류성태 원광대 교수는 “21세기는 세계가 동양문화에 주목하는 시대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 사상과 문화 연구로 나아가는 동양학은 세계로 확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학부 과정에 동양학과를 두고 있는 원광디지털대는 인도, 일본, 유럽 전문가들을 초청해 국제술수심포지엄을 여는 등 국제교류를 확대해나가고 있기도 하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열전’ 등 저서를 통해 역술 대중화에 앞장선 조용헌 작가도 “최근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동양학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운명학과 과학의 만남을 영화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역술이나 서양 점성술 모두 뿌리는 고대 천문학이다. 역술을 연구하는 건 현재의 지역적, 시간적 한계를 넘어 고대인의 세계관, 우주관과 맞닿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2002년 원광대 대학원에서 불교경전 ‘능엄경’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조 작가는 당시 사주명리학 분야를 연구하려 했으나 지도교수가 “잘못하면 점쟁이로 낙인찍히고, 그러면 학계에서 활동하기 어렵게 된다”고 말려 뜻을 접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10년 사이 학계 분위기는 바뀌었고, 터부는 상당 부분 사라진 상태다. 조 작가는 “이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류래웅 공주대 대학원 동양학과 초빙교수도 “한국에서 역학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0년 정도밖에 안 된 만큼 혼란과 갈등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며 “현재 세계를 통틀어 역학을 현대화하고 학문화하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한국인 만큼 우리가 지금의 기회를 잘 살려 동양학 연구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5.02.02 974호 (p36~38)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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