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4

2015.02.02

내리막길 북한 경제, 다급한 평양

광물자원 가격 하락에 직격탄 맞은 수출 … 남북관계 개선에 매달릴 수밖에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5-01-30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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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리막길 북한 경제, 다급한 평양

    압록강 너머 중국과 북한을 잇는 조중우의교(왼쪽)와 압록강단교(6·25전쟁 때 끊어진 다리). 강 건너로 불 꺼진 북한 신의주가 보인다.

    2014년은 북한 경제에 ‘괜찮은 한 해’였다. 주민들의 삶도 나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일단 장마당 물가가 이전에 비해 크게 요동치지 않았고, 식량 생산 역시 400만t 안팎을 오가던 2000년대와 달리 520만t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올라섰다(유엔식량농업기구 2013년 말 기준). 한마디로 먹고사는 문제는 한결 나아졌고, 김정은 집권 이후 불안감이 적잖았던 주민들의 시선도 많이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이들의 말이다.

    이를 방증하는 또 하나의 징표는 급속히 늘어가는 ‘사(私)경제’다. 정확히 말해 이에 대해 국가가 섣불리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주민들이 당국 통제 밖에서 물건을 만들고 내다파는 경제 활동의 범위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 실패한 이후 북한 체제는 이를 막거나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감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 기업소와 농장의 자율권을 높이고 성과급을 장려해 생산성을 강화하는 각종 조치가 눈에 띌 따름이다. 소유권은 여전히 국가에 있지만 경영 방식은 하부 단위가 스스로 결정해 사실상의 시장에 의해 조정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이다. ‘국영(國營)경제에서 국유(國有)경제로’, 최근 북한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지난해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무역통계에 잡히는 중국의 대북(對北) 원유 수출량이 1년 내내 제로(0)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2014년 북·중 무역 총액은 전년도에 비해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경제를 오랜 기간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이 통계가 사실과 다를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다. 평양 시내의 차량 통행은 물론, 같은 기간 중국에서 수입된 화물차량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원유수출입 통계를 제외하면 두 나라 사이의 무역총액은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 전문가의 추론대로 중국이 한국이나 미국을 의식해 관련 통계만 공개하지 않는 것일 뿐 실제로는 비공식적인 경로로 석유를 공급하고 있다면, 두 나라의 경제 관계는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북·중 관계 악화로 북한 경제가 위험에 처했다는 관측이 사실상 의미 없어 보이는 이유다.

    지난 한 해 자못 만족스러웠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경제 성적표는 과연 2015년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특히 올해 10월 10일은 당 창건 70주년이다. 평양 정책결정자들로서는 어떻게든 주민들 삶의 질이 개선되는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어느 때보다 경제 성적에 대한 갈증이 심한 한 해가 되리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내리막길 북한 경제, 다급한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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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수출액 7분의 1 날아가

    그러나 최근 수년간 북한의 무역통계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전 세계적인 1차 자원 가격 하락 현상. 2011년을 전후해 정점을 찍었던 주요 지하자원의 국제가격이 근래 들어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 경제를 궁지에 몰아넣은 유가 폭락이다. 각 품목의 하락 추세는 서로 맞물리면서 상승효과를 일으켰고, 옥수수와 쌀 등 곡물의 국제시장 거래 가격 역시 하락세로 반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전형적인 1차 원자재 수출국가인 북한에게는 어두운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 누적된 경제제재로 다른 수출 경로가 사실상 차단된 북한은 2010년 이후 중국에 광물자원을 내다팔아 부족한 외화를 보충하는 경제 전략을 운용해왔다. 2010년 한국 정부의 5·24조치 이후 늘어난 대중 수출액은 월평균 1억 달러가 넘지만, 증가액 대부분은 무연탄과 철광석이라는 두 가지 품목으로만 채워졌다. 이들 품목의 수출액이 전체 북한 수출액 33억 달러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내리막길 북한 경제, 다급한 평양

    북한 형봉탄광에서의 작업 모습. ‘노동신문’ 1월 11일자에 실린 사진이다.

    광물자원 국제가격의 급속한 하락은 이러한 구조에 치명타를 날린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철광석 가격은 정점을 찍었던 2011년 상반기에 비해 53% 수준, 석탄 가격은 43%까지 떨어졌다(그래프 참조). 같은 양을 내다팔아도 수출액 자체가 반 토막 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케빈 스탈러 연구원의 분석은 그 심각성을 수치화해 보여준다. 2010년 이래 북한의 철광석·무연탄 수출액은 연평균 15억 달러 안팎을 오가고 있지만, 가격 하락이 본격화한 2014년 하반기에 이미 규모가 줄기 시작했고, 올해는 하락폭이 한층 가파를 수밖에 없다. 자원 가격이 2011년 수준을 유지했다면 얻을 수 있는 5억 달러 안팎의 외화가 올 한 해에만 허공으로 사라지리라는 게 스탈러 연구원의 추산이다. 한국 같은 중견국가에게는 대단치 않은 금액이지만 북한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수년간 연간 수출총액의 7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가격뿐이 아니다. 그간 중국이 북한의 지하자원을 빨아들이듯 수입할 수 있던 배경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진행돼온 동북 지역 개발과 연평균 10%대 성장률을 이어온 아찔한 경제 성장 속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이징 경제당국이 ‘내실 있는 발전’과 ‘부작용 최소화’를 외치며 완급 조절에 나선 현재로서는 광물자원 수요가 유지될 공산이 크지 않다. 석탄과 철광석을 내다파는 그간 평양의 경제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추진력 잃은 북·러 경제협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11월 중국 당국은 유황 성분이 0.5%를 초과한 석탄을 사용하는 업체에 대해 벌금 폭탄을 매기는 방식으로 환경기준을 강화하고 나섰다.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응하는 중국 나름의 대책인 셈. 1월 1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 때문에 유황 함량 검사를 따로 거치지 않는 북한산 석탄은 사실상 수입이 차단됐고, 새해 들어 1t도 반입되지 않고 있다는 중국발(發) 기사를 타전했다. 더욱이 극심한 가뭄으로 북한의 수력발전소 가동률이 형편없이 떨어지면서 북한 당국은 캐낸 석탄 대부분을 모두 자국의 화력발전소로 실어 보내는 중이다. 내다팔고 싶어도 석탄이 없는 셈이다.

    암(暗)이 있으면 명(明)도 있는 것이 국제경제의 기본법칙이지만, 2015년 북한은 그 수혜자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 수입해야 하는 주요 품목의 가격 하락은 경제 사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수입품인 옥수수와 쌀의 국제가격이 수년 전에 비해서는 낮은 편임에도, 북한 내 농업 사정이 개선됨에 따라 수입량 자체가 줄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주요 수입품목인 석유류 역시 앞서 본 것처럼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자체가 정상적인 무역통로를 통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최근의 가격 폭락에서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2013년 이전 매년 5억 달러 안팎을 오가던 원유 수입 규모까지 감안하면 철광석·석탄 수출 때문에 입는 타격을 만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나아진 식량 사정과 국제사회를 의식해 단행한 원유 수입 비공식화 조치가 도리어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 최근 북한이 공격적으로 서두르는 외교 행보는 이렇듯 낙관적일 수 없는 올해 경제 사정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 다양한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2014년 한 해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고립을 면치 못해온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화답으로 두 나라는 부채 탕감과 철도 현대화, 전력 공급에 이르기까지 많은 장밋빛 청사진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러나 연말 본격화한 러시아의 경제 사정 악화는 이러한 노력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국가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수준까지 떨어지자 1월 27일 모스크바 경제당국은 균형예산 운용을 골자로 하는 ‘반위기(anti-crisis)계획’을 발표하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돌입했다. 북한과 협의했던 엄청난 규모의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조기에 밀어붙일 실탄이 없는 셈. 투자액만 250억 달러에 달하는 북한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는 언감생심이다.

    근본적으로는 북·러 관계가 개선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크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두 나라는 서로 주고받을 게 많지 않다. 북한의 광물자원이 경제 성장에 여념이 없던 중국에게는 매력적이었을지 몰라도, 시베리아에 엄청난 매장량을 가진 러시아에게는 하품 나오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철도를 현대화해주는 대가로 광물자원을 받아가는 식의 거래는 러시아에게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것. 경제적 토대가 부실한 양국 관계 긴밀화는 정치적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정한 평가다.

    무역이 흔들리고 북·러 관계가 돌파구가 될 수 없다면, 남는 것은 해외직접투자(FDI)를 유치하는 길뿐이다. 북한은 이미 2013년 13개 경제개발구를 지정하고 지난해 7월 6개를 추가로 발표하는 등 외자 유치에 열을 올려왔다.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그간 발표된 개발구가 해외자본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변방 지역에 국한됐던 반면, 지난해 공개한 개발구에 평양 은정첨단기술개발구가 포함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심장을 내주고서라도 외화를 끌어들여야 하는 평양의 다급한 사정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1차 자원을 내다파는 후진국형 경제 전략에서 제조업 기반의 수출경제로의 전환. 폐쇄형 경제개발구에 외자를 유치해 공장을 짓고, 저렴한 노동력이라는 유일한 경쟁력을 활용해 저가 수출품을 생산하는 모델이야말로 평양이 목을 매고 있는 새로운 디자인인 셈이다. 1960~70년대 한국을 포함해 후발경제성장 국가 대부분이 채택했던 바로 그 전략이고, 중국과 베트남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본격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경로를 통해 해외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를 통해 고용이 늘어 돈이 돌기 시작하면 주민들 삶의 질도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다.

    언제나 그렇듯, 결정적인 걸림돌은 정치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개발구 활성화와 투자 유치에는 주변국과의 긴장 완화가 필수적”이라고 잘라 말한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한 이룰 수 없는 그림이고, 외국자본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길이다. 세계경제에 편입되려면 먼저 국제정치의 복판에 ‘정상적인 플레이어’로서 등판해야 하는 고전적인 딜레마다.


    다급한 것은 평양이지만…

    이렇게 해서 김정은 제1비서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피력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단초가 드러난다. 심지어 러시아의 경우도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거쳐 한국이나 일본에까지 이어지는 경제협력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러시아와 논의했던 프로젝트조차 힘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 서울과 풀어야 워싱턴과도 풀 수 있고, 그래야 외자 유치가 가능해진다는 이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15년 경제 전망에 드리운 그림자를 피할 수 없는 평양으로서는, 새해 벽두부터 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의 밀고당기기가 달가울 리 없다. 소니 엔터테인먼트 해킹 사건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일변도로 치닫는 현재 상황은 더욱 짜증스러울 따름이다. 여전히 다급한 것은 평양이지만, 문제는 ‘여건이 악화할수록 더욱 공세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는 북한 특유의 사고방식이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모든 그림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판단이 서고 나면 언제든 다시 핵과 미사일을 만지작거릴 수도 있는 까닭이다. 10월 당 창건 70주년까지는 쉽게 도발에 나설 수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에도, 언제나 그렇듯 젊은 지도자의 선택은 안갯속에 놓여 있다. 분명한 것은,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줄 수 없다면 ‘미제에 맞서는 핵무력의 자부심’을 대신 내밀려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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