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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Global Asia - 주간동아 특약 | 동북아 냉전 부활하나

위험한 게임, 지정학의 그림자

미·중 양극체제 힘겨루기 한창…혼란스러운 역내 바다에서 크고 작은 충돌

  • 외이스테인 튄쇠 노르웨이 국방연구소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위험한 게임, 지정학의 그림자

지정학(Geopolitics). 국제 정치의 기본틀을 ‘우리’와 ‘상대’의 대립 및 경쟁구도로 파악하는 이 고색창연한 용어가 지구촌 곳곳에서 부활하고 있다. 장기판 위 말을 옮기듯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해 상대를 압박하고 세력권을 넓히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는 것.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세를 이뤘던 지정학적 사고가 동아시아를 무대로 위세를 떨치면서 한국의 운명에도 우울한 그림자를 던진다. 해외 석학들이 냉전 부활 가능성과 중국, 일본의 인식을 분석한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최신호 특집을 번역, 소개한다.

1970년대 미·중 간 화해무드가 조성된 이후 동아시아 대륙에 대한 주도권은 중국으로, 해상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이후 냉전 종식과 함께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위상을 굳히자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지역으로 꼽히기 시작했다. 아직 중국의 힘은 미약했고, 지역 패권을 다투겠다는 의지도 부족했다. 이 때문에 당시 중국의 선택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 속에서 이른바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다(韜光養晦) 평화로운 방식으로 부상하는(和平堀起) 길이었다.

이제 미국의 유일 패권이 힘을 잃고 미·중 양극체제가 등장함에 따라 동아시아 내 ‘지정학적 평화’도 도전받고 있다. 중국은 역량이 강화되면서 미국의 영향력 안에 있는 동아시아 지역 해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이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5분의 1에 불과하던 중국의 GDP는 2분의 1까지 바짝 추격했고,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러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접근저지·지역방어(Anti-Access/ Area Denial)’ 개념의 군사 능력을 구축함으로써 연근해에서 미 해군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잠수함 함대의 현대화를 통해 공해상 정찰능력을 배가한 중국은 이를 통해 동아시아 해역에서의 자주권을 도모하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증강된 중국의 군사 능력은 미국 항공모함 전단을 근거리에 두고 작전을 펼치면서 미 해군 함대와 공군을 위협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은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이뤄지는 미국의 감시활동에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규모는 여전히 중국의 3배에 달하지만 2000년 10배, 1990년대 초 20배였던 것과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전쟁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단언하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유럽에서의 냉전은 소련이 강력한 지상군 전력을 통해 지역 패권국이 되고자 야심을 품으면서 비롯됐다. 지금의 중국 역시 최강의 지상병력을 자랑하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 긴장관계는 중국 지상군의 침략행위에 대한 우려가 아니다. 핵심은 해군력 증강과 해상 영향력 구축을 향한 중국의 야심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미·중 갈등은 유럽에서의 냉전과는 다르다. 핵 보유국인 두 나라 사이의 전쟁 가능성 역시 극히 희박하다. 하지만 양극체제가 지배했던 과거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의 전쟁 가능성은 오히려 더 높다고 말할 수도 있다. 냉전시기 유럽의 정치 환경이 정적이었던 것에 비해, 동아시아의 대륙과 해상을 둘러싼 지정학 환경은 훨씬 역동적이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해상 충돌은 확전 가능성 내포

냉전 당시 바르샤바조약기구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 가운데 하나가 유럽의 동서 분할선을 군사적으로 건드렸다면 그대로 핵전쟁을 포함한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와 달리 현재 동아시아 주요 분쟁지역은 해상이다. 또한 이 해상전이 침략 지상전쟁이라는 형태로 번져 ‘존재 자체의 위협’을 가하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 뜻하지 않은 역설이 자리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거꾸로 분쟁이나 충돌이 발생할 위험은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할되고 전 유럽이 둘로 갈라지자 한쪽이 상대방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후 유럽 대륙이 실질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던 배경에는 이렇듯 너무나 위험한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를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이러한 공포가 없다.

1970년대 동아시아는 지형학적으로 평화시대를 구가했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은 해안 방어만 가능한 수준이었고, 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한 이래 동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해양에서 국익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적극 표출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바다라고 해서 피해 가지 않는다. 지정학의 눈으로 볼 때, 대륙 세력이 해양 진출을 시도하면 긴장과 분쟁, 전쟁이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태평양이라는 드넓은 바다의 존재는 위험을 오히려 가중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대양을 두고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양국 본토가 선제공격의 피해를 입을 개연성은 그만큼 적다. 한 대륙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비해, 해양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군사적 수단을 한층 손쉽게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열려 있는 선제공격 가능성이야말로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해상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단발성에 그치기 힘들다. 언제나 확전 가능성을 내포한다. 탄도미사일과 항공전력 등 이 지역에 배치된 미국 전력은 언제든 중국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자국 해군이나 영토가 공격을 받는다면 중국은 그 보복 조치로 일본 본토 등 동아시아의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 해도 미국이 느끼는 위험은 소련이 유럽을 침공하는 경우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두 나라 모두 핵전쟁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동아시아는 냉전시기 유럽보다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소재도 훨씬 많다. 도서지역을 둘러싼 영토 주권 분쟁, 천연자원 쟁탈전, 항로 통제, 대만 문제, 강고한 민족주의, 역사 문제 등 지뢰가 널려 있다. 냉전시기 유럽에서도 1948~49년 독일 베를린 봉쇄나 56년 헝가리 사태, 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중봉기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적잖았지만, 소련의 강력한 지상군 병력이 이를 가라앉히는 구실을 수행했다. 핵전쟁을 염려하는 서유럽 국가들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긴장은 고조됐지만 안정세는 유지됐다.

반면 동아시아 바다는 편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지 않다. 중국과 미국이 휘말릴 수 있는 분쟁 요인은 매우 까다롭고도 복잡하다. 지리적 요건에 더해 경제, 군사, 기술, 이념, 정치적 차이가 혼란스럽게 엉켜 있다. 두 나라가 언제든 상대방 영향권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일례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무수한 섬은 미국에게 언제든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이 처한 위치는 한층 더 불리하다. 태평양은 대서양보다 훨씬 넓다. 그만큼 본토로부터의 즉각적 군사력 전개가 어렵다. 중국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자국 군대를 주둔할 수 있는 추가 후보지는 아시아 대륙 어디에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교두보 구실을 맡아온 한반도가 있지만, 중국 본토와 분리돼 있는 주한미군 기지들의 위치는 냉전시기 서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자국 군대를 철수해야 했던 미국은 유럽 대륙 안에서 여러 다른 대안을 찾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일본이 프랑스처럼 주일미군 기지의 철수를 요구한다면, 미국 영향력은 곧장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특히 아시아에는 NATO 같은 다자동맹기구가 없다 보니 미국은 한층 더 지역 내 동맹국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워싱턴이 일본과 중국의 영토 주권 분쟁에서 훨씬 강하게 일본 편을 들게 되는 이유다. 꼭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분쟁에 말려들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일본 같은 동맹국도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이 전진기지 배치를 위해 자신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겹치면, 중국과의 분쟁 상황에서 무모한 행동에 나설지도 모른다. 냉전 당시 유럽 내 미국 동맹국들은 소련 지상군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대소(對蘇) 관계 개선에도 힘을 기울였지만, 동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은 군사적 침공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약한 만큼 중국을 향해 적대적인 정책을 추구할 개연성이 더 크다.

바다를 놓고 필연적인 대립

남은 질문은 하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무엇인가.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소련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면 냉전시기 유럽에서와 같은 ‘힘의 균형’이 동아시아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중국은 1950년대 한반도에서 미군과 싸웠고, 60년대에는 중국 국경지대에서 소련군을 저지했다. 오늘날 중국 인민해방군 지상전력은 과거 소련이 누렸던 만큼이나 강력하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지리적 여건이 사뭇 다르다. 상대적으로 편평한 유럽 대륙과 달리 정글과 산맥, 사막, 동토층 등 지형 장애물이 즐비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중국 주변에는 지상에서 군사적으로 팽창할 수 있는 권역이 없다. 세력 확장에 대한 중국의 야심은 필연적으로 바다를 향할 테고, 그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해양 세력의 대표주자인 미국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해양강국으로 우뚝 서려고 시도했던 다른 대륙 강국들처럼, 바다로 나가려는 중국의 야심 역시 미국에 의해서만 균형을 찾게 될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동아시아의 양극 체제가 유럽에서와 같이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게 될지는 의구심이 남는다. 오히려 균형을 맞추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시도가 불안정성을 더욱 증가시킬 공산이 커 보인다. 두 나라의 직접적 충돌을 막는 대양의 존재가 반대로 안정을 해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 지리적 아이러니다. 2014년 내내 동아시아 바다에서 들려온 크고 작은 물리적 대립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이유다(영어 원문은 www.globalasia.org/Issue/ArticleDetail/579/the-cold-war-as-a-guide-to-the-risk-of-war-in-east-asia.html 참조).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 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주간동아 2014.12.01 965호 (p26~28)

외이스테인 튄쇠 노르웨이 국방연구소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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