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3

2014.11.17

아파트 물려받고 생활비 지급 증여 아닌 매매

  • 류경환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4-11-17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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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물려받고 생활비 지급 증여 아닌 매매

    최근 대법원 판결로 자식에게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아파트를 넘겨주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아파트를 물려받되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면, 증여가 아니라 매매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존 원칙과는 다른 내용이라 관심을 끈다.

    부모와 자식 사이, 부부 사이에서 부동산을 매매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증여로 본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4조(배우자 등에게 양도한 재산의 증여 추정)를 보면,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에게 양도한 재산은 양도자가 그 재산을 양도한 때에 그 재산의 가액을 배우자 등이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하여 이를 배우자 등의 증여재산가액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등기를 이전했더라도 아주 가까운 특수관계에 있기 때문에 매매로 인정하지 않고 증여로 본다는 얘기다.

    물론 법은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에도 부동산을 거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경우에는 부동산 시가에 상응하는 경제적 대가를 지불할 것이므로 매매로 인정한다. 하지만 ‘대가를 받고 양도한 사실이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에 한정한다(같은 법 제3항 제5호). 그러나 앞서 봤듯 부모 자식 간 부동산 매매는 증여로 보는 것이 원칙이다.

    기존에는 부모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자녀에게 증여하고 자녀는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부모 부양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게 법 상식이었다. 이 경우 자녀는 증여를 통해 부동산을 취득했으므로 당연히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부모가 자녀에게 부동산을 넘겨주고 그 대가로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받는 형태의 계약이 필요해졌고, 이러한 내용의 계약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됐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번 사건(대법원 2014두9752)이 딱 그랬다. 허모 씨는 2010년 6월 어머니 소유의 서울 노원구 소재 시가 1억6100만 원 상당의 아파트를 넘겨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아파트에 설정된 어머니의 채무 6200만 원을 인수하고 매달 120만 원씩 총 1억4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허씨는 실제로 어머니 채무 6200만 원을 인수해 상환했고, 아버지 명의 계좌로 매달 약 120만 원씩 6910만 원을 입금했다. 채무 인수 상환 금액과 매달 지급한 금액을 합하면 이미 부동산 시가에 근접하는 금액이 된다.



    이에 대해 법원은 “부모의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부동산이 여러 차례 강제집행 대상이 되는 등 부모의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허씨는 자신이 부동산을 매수하되 부모가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도록 하고 어머니에게 정기적으로 금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할 이유가 있었다”면서 “이 같은 거래는 아무런 대가관계가 없는 단순한 증여라기보다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동안 연금방식으로 매월 노후생활자금을 지급받는 주택연금과 비슷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 증여가 아니므로 증여세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자식연금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이 판결은 어디까지나 해당 부동산 매매계약이 정당한 대가가 지급된 경우로 증여가 아니라는 내용에 불과하므로 자식연금을 인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법원에서 부모 자식 사이 부동산 매매를 실제로 인정하고, 부동산 매매대금의 지급 모습이 부양의무의 이행 형태를 띠는 경우에도 정당한 대가의 지급이라고 인정한 것은 매우 큰 변화라 하겠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발달을 충분히 반영한 판결로 진일보한 내용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기분이 상쾌하지만은 않은 것은 부모 자식 간 부양이라는 선량한 풍속도 계약을 통해 이뤄지는 세태가 야속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으로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으려고 부모 자식 간 부동산 매매계약을 하려는 사례가 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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