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3

2014.11.17

외국 깃발 단 북한 선박 우리 항구 수시로 들락날락

북한 소유 선박 제3 국적으로 위장…뚜렷한 증거 없어 검색 손 놓아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4-11-17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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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깃발 단 북한 선박 우리 항구 수시로 들락날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위장선박으로 의심하는 캄보디아 국적의 푸홍(Fu Hong)호가 10월 초 인천항에 입항했음을 보여주는 관련 데이터베이스 기록(왼쪽). 해상운송정보사이트 \'마린트래픽(Marine Traffic)\'에는 이 배가 부산항에 정박해 있는 사진(아래 대형 선박)도 올라와 있다. 촬영일자는 2013년 11월 22일로 기재돼 있다.

    5000t급 일반 화물선 푸홍(Fu Hong)호. 캄보디아 국적의 이 배는 최근 중국 단둥을 출발해 부산항을 들러 10월 5일 인천항에 정박했다. 중국 동부해안 항구와 홍콩, 북한을 주로 오가는 배는 최근 수개월 사이 평택과 포항에도 머문 적이 있다.

    문제는 2006년 건조돼 북한 고려삼흥기업소(Korea Samhung Corp.) 소유였다가 2012년 캄보디아 국적으로 바뀐 이 배가 실은 북한이 운용하는 위장국적 선박일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 국제해상운송정보 기록에 따르면 푸홍호는 한국을 드나드는 동안 한 차례도 검색을 받은 일이 없다.

    2013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이 배를 북한이 해상운송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마련한 위장선박의 대표적인 경우로 꼽은 바 있다. 명의주인 캄보디아 회사는 배의 소유권 이전 직전에 설립됐으며, 오로지 이 배만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이 배는 ‘위장명의’가 빈번하게 발견되는 캄보디아 국적인 데다 북한에도 주기적으로 정박하고 있다. 국제해상운송정보 기록에 의하면 부산을 돌아 나간 이 배는 11월 13일 현재 홍콩에 머물고 있다.

    인천·부산항 등에 주기적 정박

    제3 국적으로 위장한 북한 선박들이 한국의 주요 항구에 드나들고 있다. 유엔 등의 연이은 대북제재 조치로 해상운송이 상당 부분 차단된 북한이 이른바 ‘편의치적(flag of convenience·FOC)’ 형태로 다른 나라에 유령회사를 세운 뒤 위장명의로 운용하고 있다는 것. 통상 편의치적은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 해운회사들이 인건비나 세금을 아끼고자 선주회사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 등록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를 활용하는 북한은 아예 회사 자체를 위장으로 설립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11월 중순 미국의 북한 전문 회원제 정보사이트 ‘NK뉴스’는 이들 배가 인천, 부산, 평택, 포항 등 한국의 주요 항구에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며 관련 데이터를 공개했다. 공식적으로는 2010년 5·24조치로 북한 선박의 국내 출입이 완전 중단됐지만, 북한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회로’를 뚫어 관련 조치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것. 이렇듯 명의를 위장한 해상활동은 테러 등 안보 위협에도 좀 더 쉽게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1월 3일 평택항에 머물렀던 6200t급 카로 브라이트(Karo Bright)호의 경우를 보자. 지금은 시에라리온 깃발을 달고 있는 이 배 역시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유엔 대북제재가 본격화한 2012년 이전까지 북한 소유였다. 당시 이름은 동팡(Dong Fang). 2013년 안보리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서 마찬가지로 북한 위장선박일 개연성이 높다고 지목된 이 배의 선주는 홍콩에 주소를 둔 아오양해운(Aoyang Marine)이다.

    자본금이 1만 홍콩달러(약 141만 원)에 불과한 아오양해운의 투자자는 버진아일랜드 소재의 정체불명 회사다. 대표적인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출자한 북한의 위장 해운회사일 개연성이 높다. 2013년 안보리 보고서는 카로 브라이트호와 함께 2011년 파나마로 국적이 바뀐 광해호와 몽골로 깃발을 바꿔 단 혜성2호, 시에라리온으로 등록지가 변경된 지성11호, 화생호 등을 의심 선박으로 지목한 바 있다.

    세계 선박정보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MMSI(해상이동 업무식별부호)를 변경한 북한 선박은 32척. 배 명칭이나 국적, 소유주 등이 바뀐 경우가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나라에 비해 이례적으로 많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그중 7척이 안보리가 2014년 보고서에서 제재 대상에 포함한 북한 원양해운관리회사(OMM) 소속이었다는 사실이다. OMM은 2013년 7월 미그21 전투기 등 무기를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던 중 적발, 억류됐던 북한 선박 청천강호의 실소유주였다.

    외국 깃발 단 북한 선박 우리 항구 수시로 들락날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2013년 보고서. 제3 국적으로 위장한 북한 선박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뤘다(왼쪽). 9월 2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정상급 회의.

    의심 선박 주의 깊은 대응 필요

    이렇듯 국적만 바꾼 선박의 상당수는 북한 승무원이 탑승해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4월 4일 여수 공해상에서 침몰한 몽골 선적 화물선 그랜드포춘1호.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에 등록된 이 배는 선원 16명 전원이 북한 국적이었다. 당시 이 배는 북한 천진항에서 철광석을 싣고 중국 상하이 근처 장두항으로 항해하던 중 사고를 당했고, 한국 정부는 현장에서 구조한 북한 선원 3명을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낸 바 있다.

    ‘NK뉴스’는 이러한 위장선박과 관련해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으로 검색의 어려움을 꼽았다. 한국 정부의 경우 5·24조치가 발효되기 전에는 북한 국적 선박이 영해를 통과하거나 주요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해양경찰청 순시선이 근접해 동향을 관찰하는 등 주의를 기울였지만, 아예 다른 나라 깃발을 달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국제해상운송정보에 등록된 소유 이력을 일일이 확인해 의심 선박을 추려낸 뒤 별도로 관리한다 해도, 뚜렷한 증거가 없다면 명의 국가와의 외교적 분쟁으로 이어질 공산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들 선박을 테러 등에 활용하는 시나리오의 개연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2009년 2월 미국 의회정보조사국이 작성한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 보고서는 민간상선을 이용한 위장공격을 안보상의 주요 위험으로 거론한 바 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민간선박에 미사일 발사장치나 핵폭탄 등을 장착해 미국 본토 또는 동맹국을 기습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전직 정보당국 고위관계자는 “제3국 위장선박이 크게 증가해 감시가 어려워진 현재 상황에서는 그러한 개연성이 한층 심화됐을 것”이라며 “주의 깊은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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