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2

2014.08.25

돌밭이 정성으로 키운 ‘교황의 와인’

샤토네프 뒤 파프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08-25 11:1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돌밭이 정성으로 키운 ‘교황의 와인’

    겨울철 샤토네프 뒤 파프의 돌투성이 포도밭과 늙은 포도나무들.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는 우리말로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이다. 이름의 유래는 14세기 아비뇽 유수와 연관 있다. 샤토네프 뒤 파프는 교황이 한때 거주했던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이곳에는 교황의 여름 별장이 있었다.

    프랑스 국왕의 눈치를 봐야 했던 교황 클레멘스 5세가 교황청을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겼고, 그 뒤를 이은 요한 22세가 샤토네프 뒤 파프에 포도밭 건설을 추진했다고 한다. 지금도 교황의 와인을 생산했던 전통의 표시로 샤토네프 뒤 파프 와인 병에는 교황 문장이 새겨져 있다.

    역사와 전통 못지않게 샤토네프 뒤 파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돌과 바람이 많은 그곳의 테루아르(토양)이다. 샤토네프 뒤 파프 포도밭은 포도밭인지 돌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흙 한 점 보이지 않는 돌밭을 어떻게 일궈서 포도나무를 심은 것인지, 저 돌밭에서 과연 포도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다.

    하지만 이 돌들은 포도나무의 보호자다. 낮 동안 따스한 햇볕을 머금은 돌이 밤이 되면 온돌처럼 포도나무에 따스한 온기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돌은 여름에도 제몫을 한다. 지중해성 기후인 샤토네프 뒤 파프의 여름은 건조하다. 하지만 땅을 뒤덮은 돌은 땅속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렇게 돌이 흙의 촉촉함을 잘 보존했기 때문일까. 샤토네프 뒤 파프 와인에서는 옅은 흙 냄새가 난다.

    돌밭이 정성으로 키운 ‘교황의 와인’

    샤토네프 뒤 파프.

    샤토네프 뒤 파프에는 1년 365일 중 100일간 차고 건조한 미스트랄(Mistral) 바람이 분다. 북쪽에 위치한 마시프 상트랄(Massif Central) 고원지대에서 부는 시속 100km에 이르는 강풍이다. 이 강풍은 두 얼굴을 가졌다. 포도밭을 건조하게 유지해서 병충해 피해를 줄여주지만 워낙 강해 포도나무를 부러뜨리기도 한다. 강풍 피해를 덜 입도록 키가 작게 가지치기를 하다 보니 수령이 100년 넘은 포도나무는 이러저리 뒤틀린 모양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춤추는 듯 구부러지고 휘어진 모습은 인간에게 맛있는 포도를 제공하려고 그들이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다. 늙은 포도나무는 적은 양의 포도밖에 생산해내지 못하지만 그 열매에는 젊은 나무가 만들어낼 수 없는 다양한 향이 농축돼 있다. 마치 황혼의 현자가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뱉은 한마디에 젊은 지혜가 따라갈 수 없는 삶에 대한 통찰력과 지혜가 집약된 것처럼, 포도나무와 인간의 삶은 서로 닮아 있다.

    샤토네프 뒤 파프 와인은 최대 18가지 포도를 자유롭게 블랜딩해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와이너리들은 자신의 전통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와인을 만들지만 체리, 딸기, 후추, 스파이스, 흙 등은 샤토네프 뒤 파프 와인에 존재하는 일관된 향이다. 최근 생산한 어린 와인에서 싱싱함과 강건함, 감미로움이 느껴진다면 오래된 와인에서는 숙성이 빚어낸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진다. 한정된 크기의 척박한 땅, 그리고 늙은 나무가 내놓는 적은 수확량 때문에 샤토네프 뒤 파프 와인은 대체로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한 잔 음미하는 순간 내 코와 입이 느끼는 희열은 그 값어치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