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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인문 군대’ 만들기

책 읽는 병사가 ‘멋진 사나이’

사회와 연결 미래 걱정 해소…일과 후 독서활동 병영문화 개선 효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책 읽는 병사가 ‘멋진 사나이’

책 읽는 병사가 ‘멋진 사나이’

경기 이천시의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부대 안 ‘병영도서관’에서 장병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최근 발생한 GP(경계초소) 총기 사고 등 일련의 군 내 사건·사고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병영문화개선대책위원회가 출범된다. 국방부 관계자는‘정부는 병영생활 전반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따른 문제점을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민·관·군 전문가가 참여하는 병영문화개선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2005년 7월 ‘국정브리핑’에 실린 내용이다. 9년이 지난 올해 정부는 또다시 일련의 군 관련 사건·사고에 대처하겠다며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한 번‘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마련도 공언했다.

반인권·반인륜적 ‘병영 악습’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건 또 있다. 국방부가 6월 말 해병대 포항 1사단에서 선임병이 전입 신병에게 ‘화장실 청소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변기를 혀로 핥도록 한 사실이 있다고 발표한 것. 2005년엔 육군 논산훈련소에서 한 대위가 훈련병 195명에게 역시 ‘화장실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인분을 먹으라고 강요한 게 문제가 됐다. 2005년 6월에는 경기 연천 530GP에서 김모 일병이 생활관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했고, 올해 6월 육군 22사단 GOP(일반 전초)에서는 임모 병장이 생활관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2005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여전히 부대 내에서 젊은 병사들은 갖가지 ‘불이익한’ 처우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병영 악습’이 있다.



시민들은 우리 군이 2005년 마련한 종합대책만 제대로 실천했어도 이런 ‘적폐’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그해 10월 정부는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를 만들겠다며, 9개 과제 30개 실천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선진 병영문화 비전’을 발표했다. 군 내부에 인권위원회를 설치하고, 외부에 옴부즈맨(국방감독관)을 두는 등 사병 인권 보장을 위한 각종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였다. 또 병사의 자기계발 여건 조성, 자율적 생활 보장 등의 조치도 담았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전투형 군대 육성’이 군의 최우선 목표가 되면서 이런 방안들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이 된 이상희 전 장관은 “군 내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다 발생한 사고는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병영문화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지만, 정작 군대 지휘관들은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 그 결과가 최근 이른바 ‘윤 일병 사망’ 같은 참혹한 결과로 드러난 셈이다.

이 때문에 이제라도 우리 병영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법·제도 정비와 더불어 군 내 인식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첫 번째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독서교육 강화다.

일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냈다. 박 대통령은 8월 1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부대 안에서 운영하는 독서 프로그램이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관심병사를 변화시키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 성공 사례가 있다”면서 “인간존중이 몸에 배어 있어야지 법과 제도만으로는 (병영문화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또 “국방부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힘을 써 지원을 확대하고 독서공간을 잘 만드는 등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책 읽는 병사가 ‘멋진 사나이’

경기 파주시는 2013년 4월 파주시 10번째 병영도서관인 ‘충성병영도서관’ 개관식을 열었다.

새누리당 정병국, 송영근, 홍철호 의원도 8월 18일 국회에서 ‘병영문화 혁신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열고 병영 내 독서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단법인 ‘사랑의 책나누기 운동본부’가 진행하는 군부대 내 ‘독서코칭’ 사업에 참여해온 소설가 이철환 씨는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아 ‘인성을 바탕으로 세운 군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성은 사람을 올바르게 대하고 상황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자세로, 진정한 의미의 인성은 좋은 인문학 책을 읽어야 얻을 수 있는 인문정신”이다. 이씨는 “3년 전부터 전국에 있는 여러 부대를 방문해 독서교육과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는데, 병사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뜨겁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군기가 세워질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인성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군기

역시 병사들을 대상으로 독서교육을 하는 독서코칭전문가 백순보 씨는 “병사들이 책을 읽으면 사회와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이 줄어들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해소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며 “그 덕분에 책을 읽는 병사가 군대에 더 잘 적응하고, 군대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사랑의 책나누기 운동본부 외에도 여러 기관이 군대 내 독서문화 확산을 지원해왔다. 201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병영 독서활동 지원 사업’에 참여한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김익진 교수는 “일선 부대를 가보니 규모가 작은 곳도 자체 도서관을 갖고 있을 만큼 하드웨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한 점을 봤다”며 “병사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적절한 독서지도를 해주면 훨씬 더 풍요로운 독서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강한석 전 육군소장도 “가장 중요한 건 군에서 독서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일과가 끝난 뒤 책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군대의 독서운동과 인문학 교육이 또 하나의 의무사항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학사장교 출신으로 장교 재임 시 부대 안에 있는 ‘진중문고’의 책을 읽으며 인터넷 블로그에 서평을 올렸던 이경준 씨는 “병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서를 권장하는 건 문제없다. 하지만 그것이 강제사항이 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군에서 간부가 주도하는 일은 무엇이 됐든 병사들에겐 ‘귀찮은 일’ 혹은 ‘명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세심한 정책 마련을 주문했다. 김익진 교수도 “정말 병사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부대가 있는 지역, 참여하는 병사의 계급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며 “단기간에 결과물을 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병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책 읽는 병영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부대의 사례는 참고로 삼을 만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랑의 책나누기 운동본부, 국방부가 함께 진행하는 ‘2014 책과 문화가 있는 병영캠페인’대상으로 선정돼 도서와 명사 특강, 특별활동 등의 프로그램을 지원받고 있는 육군 1군단은 그중 하나다. 1군단에서 ‘병영도서관’ 업무를 담당하는 황의섭 중사는 “장병들이 도서관에 찾아오게 하려고 점호시간과 아침저녁 식사시간에 홍보를 많이 했다. 또 책을 대출해 읽은 사람을 대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게 하는 ‘독서 릴레이 운동’을 펼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책 읽는 병사가 ‘멋진 사나이’

충북 청주시 공군 제17전투비행단의 어쿠스틱 기타 동아리 소속 병사들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왼쪽). 비슷한 계급의 병사가 함께 생활하는 ‘동기생활관’에서 휴식을 취하는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일병들.

‘책과 함께 군생활을 시작하자’는 뜻을 담아 ‘아미 북 스타트(Army Book Start) 운동’을 벌이고 있는 육군 7사단은 자체적으로 책을 마련해 장병들에게 선물한다. 2011년 11월 전입 보충병들에게 주기 시작해 2012년 5월 수혜자를 신병교육대 수료생으로까지 넓혔고, 지난해부터는 전역병에게도 선사하고 있다. 최전방 GP와 GOP에 ‘골든 브리지(Golden Bridge)’라는 이름의 도서실을 열어 부대 내에서도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작명한 ‘골든 브리지’는 최전방 부대와 사회를 연결한다는 뜻이다.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문화예술 체험 기회 확대가 제안되기도 한다. 2010년 한국국방연구원이 발표한 ‘2010 국방사회조사통계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장병 2명 중 1명(45.2%)은 자신이 군에서 누리는 문화 수준이 ‘사회의 20%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사회의 40% 수준’(24.4%),‘사회의 60% 수준’(13.2%),‘사회의 80% 수준’(5.9%),‘사회와 비슷(5.7%)’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창의성과 잠재성 개발해야

반면 군에서 보장돼야 할 문화 수준에 대한 질문에는 ‘사회의 80% 수준’이라는 응답(32.6%)이 가장 많아 군 문화활동에 대한 기대와 현실 간 격차를 보여줬다. 이 질문에서는‘사회의 60% 수준’(30.0%),‘사회와 같은 수준’(21.6%),‘사회보다 높은 수준’(4.8%),‘사회의 40% 수준’(4.3%) 등의 응답이 뒤따랐다.

2005년 작성된 ‘병영문화예술활동 검토보고’에 따르면 병영 문화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일반 사회와 군대 사회의 문화예술적 환경의 괴리로 인한 정신적, 감성적 충격으로 신세대 장병의 정서불안 초래 및 인화단결 저해, 문화예술 활동이 제한적이며 형식화로 실효성 미흡, 문화예술활동 여건 열악해 프로그램이 장병의 문화욕구와 성향 미반영 등이다. 국방부는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적인 병영환경 조성을 위한 업무협력합의서’를 체결하고,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양해각서(MOU)를 맺는 등 장병 대상 문화예술사업에 관심을 쏟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숙명여대 문화관광학부 김세훈 교수는 “우리 병영문화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기존 군문화 속에 가려진 개인을 찾아내고 이들의 창의성과 잠재성을 개발해야 한다. 엄격한 규율, 위계 질서, 집단주의, 권위주의 같은 기존 군문화에 대응해 장병들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이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창출될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새로운 군문화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장병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도 “병영 내 인문학 교육은 병사들이 사회에 나간 뒤 유용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인문학 교육과 군 인권 운동이 발을 맞춰가면 머잖아 우리 군도 인권 침해 없는 군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민·관·군이 겉핥기식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시 출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952호 (p28~30)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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