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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총리 찾아 60일 허탈한 도로 鄭 01

‘총리감’ 찾기 그리 어려웠나

안대희·문창극 후보자 연이은 낙마에 결국 ‘정홍원 총리’ 유임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총리감’ 찾기 그리 어려웠나

‘총리감’ 찾기 그리 어려웠나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6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진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저는 오늘 총리 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친일 반민족 역사관 논란에 휩싸였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결국 6월 24일 90도 인사를 끝으로 자진사퇴했다. 첫 언론인 출신 후보자로 주목받았지만 언론인 시절에 쓴 칼럼과 교회 장로로서의 강연 때문에 논란을 빚다 14일 만에 낙마한 것.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고액 변호사 수임료를 받아 전관예우 논란을 일으키며 고개 숙인 데 이어 총리 후보자 2명이 인사청문회도 가기 전 잇달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초유의 사태는 또 생겼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6월 26일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로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인데 이런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오늘 정홍원 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밝혔다. 총리 후보자가 연쇄 낙마한 후 적임자를 찾지 못하자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를 유임한 것이다. 이는 사실 새누리당의 7·14 전당대회와 7·30 재·보궐선거를 염두에 두고 선택한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문 전 후보자의 경우 재산 증식과 논문 표절, 위장 전입 같은 공직자의 흠결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배와 위안부 관련 발언 같은 국가관과 역사관이 논란이 됐는데, 이는 총리 후보자의 검증 범위가 다양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 개혁과 인적쇄신을 천명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가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논란과 불안감을 가져온 데 대한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다. 보수우파 대 진보좌파의 분열 속에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자신의 거취를 정리했지만, 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후폭풍’은 거세다.



1 문제의 청와대 인사관리 시스템

총리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에 가장 비난받은 곳은 청와대 인사위원회다. 인사위원회는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며 박근혜 정부가 청와대에 설치한 인사의 핵이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을 맡고 정무·국정기획·민정·홍보수석이 참여한다. 사안에 따라 관련 수석비서관이 참여하는데, 박 대통령 보좌관 출신인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안전행정부 인사정책관을 지낸 김동극 선임행정관이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김기춘 비서실장 책임론이 이는 것도 그가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

인사위원회가 공직인사를 추천받아 대상 후보군을 압축하면,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이를 검증한다. 검경,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을 통해 세금 납부와 병역, 범죄 기록 등을 들여다보는 양적 검증을 하고, 해당 인사의 평판과 개인사를 살피는 질적 검증도 병행한다. 그 결과를 인사위원회가 검토해 최종 3배수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인사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기획관 구실을 하는데, 인사기획관 1인보다 합의제인 인사위원회를 거치면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강화된다는 게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인수위원장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시스템과 운영은 딴판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미 인수위 시절 김용준 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7명을 포함해 10여 명이 낙마하면서 ‘수첩인사’ 논란이 일었고,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으로 취임 77일 만에 처음 공식 사과했다.

‘총리감’ 찾기 그리 어려웠나

박근혜 대통령이 정홍원 국무총리(왼쪽)의 사의를 반려 유임했으며 인사수석실을 신설한다는 내용으로 6월 2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윤두현 홍보수석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에서 가진 언론사 정치부장단 만찬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앞으로 인사위원회도 좀 더 다면적으로 철저히 검증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해 철저하게 하도록 노력하겠다. 인사 자료도 차곡차곡 쌓으면서 상시적으로 하는 체제로 바꿔나가고 있다”고 했지만 결과는 달라진 게 없었다.

현 정부의 인사위원회를 만드는 데 핵심 구실을 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은 지난해 6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윤창중 사태’로 박근혜 정부 초창기 인사가 문제가 될 즈음이다.

“제도로서 인사위원회를 만들어 사람을 추천하고 검증하고, 또 검토하는 것 아닌가. 제도는 잘 만들어놓았는데 운영 과정에서 문제가 컸다고 본다. (중략) 우리는 인사를 검증하면서 ‘국민이 볼 때는 이럴 수 있다’고 (대통령에게) 얘기하는 방식이다. 사실 안(청와대)에서 보니 (인사 경쟁자 쪽에서) 좋지 않은 정보도 거꾸로 올라와 휘둘릴 개연성이 높더라.”

안대희 전 후보자의 경우 변호사 개업 5개월간 16억여 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것은 이미 검증 과정에서 발견됐지만, 정상적으로 번 돈이라는 점이 참작됐다. 법적 문제는 없지만 국민 눈높이 검증을 간과한 것이다. 문창극 전 후보자는 기존 논란 대상이 아닌 역사 인식 논란이라는 특이한 측면이 있지만, 과거사 문제에 민감한 국민 정서를 감안하지 못했다. 유 수석의 말대로, 인사위원회 운영이 제대로 돼 ‘국민이 볼 때는 이럴 수 있다’는 의견이 전해졌다면, 낙마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인사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인사위원회가 대통령 ‘낙점 인사’에 대해 ‘노(No)’라고 말하기엔 한계가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 인사위원회가 친박(친박근혜) 인사들과 가신 출신으로 구성된 만큼 제대로 된 ‘인사 시스템 가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각 수석비서관이 본연의 업무를 하면서 ‘추가로’ 일하는 꼴이라 집중도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전 정부로부터 인사 존안자료(인재풀)를 넘겨받지 못했고, 국민의 인사 눈높이는 무척 높아져 인사 검증에 어려움이 크다. 하루 이틀 만에 검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촘촘한 그물망 검증을 하기도 어렵다”고 말하지만 박 대통령의 말대로 ‘인사 자료를 쌓으면서 상시적으로 검증하는 체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결국 6월 26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신설키로 하고 1수석, 2비서관 체제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는 인사위원회의 한계를 인정한 셈이다. 앞으로 인사수석실은 인재 발굴과 검증, 관리를 총괄하는 인사위원회 실무 간사를 맡게 된다.

여당의 한 중진 인사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중앙인사위원회가 있었다고 하지만 ‘386 코드인사’ 문제가 계속 불거졌다”며 “결국 청와대가 검증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거다. 대통령이 얼마나 시스템을 존중하고 의견을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2 수면 위로 떠오른 청와대 권력투쟁설

‘총리감’ 찾기 그리 어려웠나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앞서 자진사퇴한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

두 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천거 책임론’이 일면서 불똥은 ‘누가 천거했느냐’로 튀었다. 문창극 전 후보자는 정치권이 예상하지 못한 깜짝 인사인 만큼 박 대통령의 자문그룹인 이른바 ‘7인회’ 추천설이 나돌았다. 7인회는 2007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을 도운 자문 그룹. 김기춘 비서실장과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김용갑 전 국회의원,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그 멤버다. 안 전 부사장과 문 후보자가 서울고 동문이다 보니 ‘7인회 천거설’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러나 김용갑 전 의원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7인회는 인사에 관여한 바 없다”며 문 후보자의 퇴진을 주장했고, 안 전 부사장도 ‘천거’를 부인하고 나서면서 가신 그룹 추천설이 주목받았다. 이른바 박 대통령의 보좌관 그룹인 이재만(총무비서관), 정호성(제1 부속비서관), 안봉근(제2 부속비서관) 등 ‘문고리 권력 3인방’, 그리고 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가 그 당사자.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주간동아가 만난 복수의 청와대·정부 인사도 “최근 낙마한 총리 후보자 인사는 김기춘 비서실장도 반대한 것으로 안다”며 보좌관 출신의 ‘3인방 추천’에 방점을 뒀다. ‘3인방’을 잘 아는 복수의 정치권 인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권력이동설을 제기했다.

“과거에는 7인회에서 박 대통령이 인사나 정치에 대해 자문을 받은 뒤 3인방에게 실행파일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최근에는 3인방이 인사를 천거하면 7인회 등에게 자문을 구하는 식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박 대통령이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3인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거 같은데, 비선이 나서면 인사위원회 검증도 무력화된다. 최근 7인회 김용갑 전 의원의 ‘7인회가 문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았다’는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3인방 중 한 명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인터뷰 진의를 물었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용갑 전 의원은 주간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7인회가 무슨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게 아니다. 인사에 대해 말할 계제도 아니다”라며 “3인방과의 만남이나 갈등도 없고,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6월 2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박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정윤회 씨가 비선라인이라며 ‘만만회’를 지목했다. 총리 낙마를 계기로 자문 그룹과 가신 그룹 간 갈등설, 권력이동설까지 나오면서 권력투쟁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3 ‘쇄신’ 초선들의 백화제방

총리 낙마는 새누리당 초선의원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기회가 됐다. 최근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서청원, 김무성 의원 간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흐르자 초·재선의원 30여 명이 ‘새누리당 쇄신전대추진모임’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이 모임은 6월 23일과 26일 잇달아 모임을 갖고 당·국정 쇄신 비전과 방법론, 당 가치와 정체성 확립 방안 등을 당권 주자들에게 공개 질의했다. ‘박근혜 키즈’로 2년여 동안 침묵하던 초선의원들에게 총리 낙마가 자극제가 된 것이다. 모임에 참여하는 한 초선의원의 설명이다.

“과거 새누리당에는 총선 뒤 미래연대, 새정치수요모임, 민본21 같은 초·재선의원의 모임이 결성됐는데, 19대 국회 들어서는 2년여 동안 모임은커녕 개혁 쇄신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물론 대통령선거도 있었지만,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의 도움으로 국회에 입성한 만큼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참사와 잇따른 총리 후보자 낙마로 대통령 지지율이 40%대 초반으로 급락하는 걸 보고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자각을 했다. 당 지도부, 청와대와 다소 불편해지더라도 쇄신 목소리를 내야 우리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고, 차기 공천도 유리할 거 아닌가. 앞으로 세월호 국정조사와 인사청문회 등에서도 청와대나 정부 처지와 다른 주장을 펴는 초선의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다.”

19대 국회에 진출한 초·재선의원들에게 총리 후보자 낙마는 각성제가 된 셈이다.



주간동아 2014.06.30 944호 (p10~12)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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