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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유럽, EU 그리고 한국의 셈법

‘동유럽 파워’…10년 기회 온다

5월 EU 의회 선거 유럽통합 향배 큰 의미…한국, 유럽의회 움직임에 신경 써야

  •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 hwjun10@mofa.go.kr

‘동유럽 파워’…10년 기회 온다

2014년 5월 22~25일 사흘에 걸쳐 8번째 유럽의회 선거가 실시된다. 1979년 직접선거로 처음 실시된 이래 유럽의회 선거는 유권자에게 잊혀가는 선거였다. 79년 63%였던 투표율이 2009년에는 43%로 떨어지면서 유럽의회 선거는 투표가 있는 5년마다 최저투표율을 갱신했다. 유럽연합(EU)의 민주성 결핍을 해소하려는 방안으로 유럽의회 권한이 강화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의회의 민주적 정당성이 하락하는 증거가 됐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2014년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통합 향배에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개연성이 높다. 이번 선거가 이전 선거와 다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이번 선거는 정치·경제 제도에 대한 대중적 의구심이 유례없이 만연한 상황에서 치러진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0년 유로존 위기 발생 후 긴축 재정 및 경기 침체 여파로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해 각국 주요 선거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도 주류 정당 지지율이 하락하고 유럽통합을 반대하거나 이민자에 비판적인 군소정당이 약진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직 경기 침체 해소가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선거는 유로존 위기 발생 후 처음 치르는 유럽의회 선거로, 유권자들이 EU 차원에서 유로존 위기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해결책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첫 기회다.

반(反)EU 정당 약진 가능성

다음으로는 EU의 제도적 측면에서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 의한 기대 효과가 달라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9년 12월 발효된 리스본 조약은 EU 정상회의가 유럽집행위원회 위원장을 지명할 때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 조항이 최초로 2014년 하반기 유럽집행위원장 임명 때 적용된다.



현재 유럽의회 주요 정치그룹은 각각 유럽집행위원장 후보를 내세우고 범유럽적 정책 요강을 제시해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리스본 조약은 EU 정상회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유럽집행위원장 지명 때 반영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유럽의회 선거에서 최다 의석수를 확보한 정치그룹이 내세운 유럽집행위원장 후보를 EU 정상회의가 지명해야 한다는 게 다수 견해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가 EU의 자체 이슈를 중심으로 진행될 여건이 조성됐다는 점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기존 유럽의회 선거는 각 회원국의 국내 이슈를 중심으로 나라별로 파편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유럽의회 선거는 EU의 고유한 의제가 선거 중심 의제로 부상할 여건이 마련됐다.

유로존 위기 대처를 위한 긴축 정책 실시, 재정위기 회원국에 대한 EU 차원의 구제, 재정·금융 부문 통합의 진전을 지켜보면서 EU 시민은 지난 60년간 진행된 유럽통합 결과를 실감하는 한편, 유럽통합 장래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또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각 정치그룹이 각각 유럽집행위원장 후보와 EU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유권자가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선거 영향을 예상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선거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관측으로는 2009년 선거보다 투표율이 조금 높고, 현재와 마찬가지로 중도 우파 정치그룹인 유럽국민당 그룹이 최대 정치그룹 지위를 유지하며, 반(反)EU를 표방하는 극단주의(극우, 극좌) 정당이 약진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극단주의 정당의 반EU 캠페인에 자극받은 유권자가 대거 투표에 참가해 투표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비록 득표율 상승 정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현재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반EU 정서를 표방하는 극단주의 정당의 부상은 자명한 듯하다. 다만 2014~2019년 유럽의회에서 극단주의 정당의 약진이 EU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할 개연성은 희박하다. 반EU 정당들이 단일 유럽의회 정치그룹을 구성하거나 상호협력이 가능한 복수 정치그룹을 구성해 의회 내에서 의미 있는 세력화를 달성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결성한다 해도 반EU 정치그룹이 실제 입법, 재정 활동에서 단결된 표결 행태를 보일 만큼 내부 응집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반EU 세력은 통합 반대라는 원칙론 외에 공유하는 바가 적고, 좌우 이념 성향이나 선호하는 EU-회원국 권한 배분 양상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유럽 파워’…10년 기회 온다

2007년 10월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 세워진 고급 철강재 가공센터. 폴란드는 안보적 구실을 앞세워 유럽연합(EU) 정치에서 부상할 개연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폴란드 부상 전망

유럽의회 각 정치그룹이 이번 선거에서 유럽집행위원장 후보로 내세운 인물의 국적을 보면 10년은 동유럽국가가 EU 안에서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6개 정치그룹이 내세운 8명의 유럽집행위원장 후보(녹색당 그룹과 유럽해적당 그룹은 각 2명)는 전 룩셈부르크 총리, 독일 출신 유럽의회 의장, 전 네덜란드 총리 등으로 동유럽 출신은 전혀 없다. 그만큼 기성 EU 정치 벽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와 2010년 유로존 위기로 EU 통합이 통화와 재정 분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비유로화 국가가 대부분인 동유럽은 전반적으로 통합 중심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향후 10년은 동유럽국가가 EU 핵심으로 진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영국의 EU 탈퇴 움직임과 프랑스의 경쟁력 약화로 독일-프랑스-영국 협력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동유럽이 입지를 다질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독일은 유럽통합의 유일한 리더 구실을 떠맡는 상황을 피하고자 폴란드 같은 새로운 파트너를 모색할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 내 안보가 핵심 현안으로 대두하면서 동유럽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재평가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강경론으로 위상을 높이는 폴란드가 안보적 구실을 내세워 EU 정치에서 부상할 개연성이 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는 한국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유럽의회는 EU의 모든 대외협정에 대한 비준권 외에도 통상 문제에 관한 권한, 외교안보·사회복지·조세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에 관한 입법권, 재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유럽과 긴밀한 통상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으로선 세계 무역 판도에 영향을 미칠 미국-EU 간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권을 가진 유럽의회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한국-EU FTA 발효 후 비관세장벽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EU 규제와 관련한 유럽의회의 입법 방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셋째, EU의 대외관계에서 인권 보호를 강조해온 유럽의회가 북한 인권에 대해 취할 태도의 정치적 파급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 유럽의회 선거와 연계된 유럽집행위원장 임명 과정은 EU 내에서 각 기구 및 회원국 간 힘의 역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이 앞으로 5년간 EU 정치의 동향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14.05.12 937호 (p52~53)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 hwjun10@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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