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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유럽, EU 그리고 한국의 셈법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동유럽 시장’

EU 가입 10년 안정적 성장…우리에겐 서유럽 진출 교두보, 北 체제 전환 실험실

  • 이종규 KDI 부연구위원 jklee@kdi.re.kr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동유럽 시장’

동유럽국가들이 5월 1일로 유럽연합(EU)에 가입한 지 10주년을 맞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동유럽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사회주의 시절 이미지가 동시에 연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유럽국가들이 시장개혁을 시작한 지 이미 20년이 넘었으며, 개혁과 함께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함으로써 신흥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한계를 드러내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의문이 잠시 제기되기도 했으나 유로존의 재정위기 속에서도 폴란드 등이 안정적인 성장세를 지속하는 모습을 보이자 동유럽의 시장가치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동유럽국가들은 EU에 편입하면서 규모 경제를 실현해왔다. 총 11개국이 EU 회원국이 됐으며, 이 중 4개국이 유로존에 가입하는 등 통합을 통해 규모 경제를 실현하고 삶의 질을 향상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4년 중동부 유럽 8개국(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 3국)이 EU에 가입했으며, 2007년에는 남동부 유럽 2개국(불가리아, 루마니아)이 가입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크로아티아까지 가입함으로써 동유럽 11개국이 EU에 편입하는 성과를 이뤘다.

총 11개국 거침없는 성장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동유럽 시장’

2007년 준공한 기아자동차의 슬로바키아 공장. 천장 곳곳에 유리채광판을 달아 지역 명소가 됐다.

EU에 가입한 11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2012년 기준)은 1조3304억 달러(EU GDP의 8.0%)이며, 인구는 1억664만 명(EU 인구의 20.9%)에 이른다. 또한 1인당 GDP의 단순 평균은 1만4103달러로 중진국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 중 슬로베니아(2007), 슬로바키아(2009), 에스토니아(2011), 라트비아(2014) 등 4개국은 유로화 가입 기준을 충족하며 유로존에 가입했다. EU에 가입한 이들 11개국(유로존 4개국)뿐 아니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EU에 가입하려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개혁 초기에는 극심한 침체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예를 들면 개혁 초기 3년간(1991~93) 동유럽 11개국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평균은 각각 -8.1%, 433.6%였다. 그야말로 체제 전환에 대한 충격이 경제를 마비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동유럽국가들은 개혁 초기 혼란을 극복하고 J커브 성장과 안정적인 물가 수준을 달성했다. 2000년대(2000~2012) 동유럽국가들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평균은 각각 3.5%, 4.6%였다. 또한 거시경제 안정에 힘입어 동유럽국가들의 삶의 질도 향상됐다. 동유럽 11개국의 1인당 GDP 평균은 EU 가입 초기인 2004년에는 1만1571달러였지만 2012년에는 21.9% 증가한 1만4103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슬로베니아의 1인당 GDP는 2만 달러를 상회하며 체코, 슬로바키아는 2만 달러에 육박하는 선진국 수준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빠른 시장개혁을 통해 EU에 가입한 국가는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중산층 확대 등을 경험했다. 1985년 체결한 셴근 조약(Schengen Agreement)에 의해 EU 회원국 국민은 역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졌으며, 2000년대 전 세계적인 중산층 축소 추세에도 일부 동유럽국가는 경제 성장과 함께 소득불평등이 완화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동유럽 시장’

기아자동차의 슬로바키아 공장은 유럽 공략의 전진기지 노릇을 한다(왼쪽). 현대자동차의 체코 공장 생산라인 근로자들.

서유럽에 의존 외부 충격에 약해

이러한 성과에도 지속가능한 성장이 의문시되는 현 상황은 동유럽국가들이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노동과 자본 투입, 생산성 향상이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 전환 이후 인구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노동력이 감소하는 가운데 고급 인력 유출도 증가했다. 2000년대(2000~2012) 동유럽 11개국의 평균 인구 증가율은 -0.36%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서유럽과 세계의 다른 신흥국 인구 증가율이 각각 0.53%, 2.1%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1990년대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FDI) 촉진책, 인프라 투자 같은 체제 전환 특수 등 FDI 유입 가속화에 힘입어 성장을 지속해왔지만, 금융위기 이후 다국적 기업이 철수하는 등 앞으로는 FDI 감소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크게 미달하는 반면, 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생산성 향상 측면에서도 정체될 개연성이 높다.

금융과 수출 부문이 과도하게 서유럽 경제에 의존해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약점도 지니고 있다. 동유럽 내 외국은행 비율은 80% 이상이며, 외화표시 대출 비중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러한 금융구조 하에서 해외 자금 유입의 급감은 자금 조달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소규모 개방형 구조를 가진 국가가 많아 다른 신흥국에 비해 특정 지역(유로존, 특히 독일)에 대한 수출 의존도도 높다.

또한 눈부신 시장개혁(자유화, 안정화, 민영화)과 비교해 제도개혁은 전반적으로 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하경제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등 성숙한 시장경제 체제가 정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분명 동유럽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유럽 내 지역별 지하경제 비중은 동유럽(22.5%)이 남유럽(13.7%), 북유럽(13.7%), 서유럽(11.1%)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2012). 특히 지하경제 비중이 높은 상위 5개국에 모두 동유럽국가가 이름을 올렸다. 관료 재량이 여전히 높은 동유럽국가에서는 과도한 규제가 관료 부패를 부추기는 요인이 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주요 생산기지로 자리매김

그러면 동유럽 경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첫째, 동유럽 경제는 한국 기업에게 중요한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동유럽 수출과 수입이 빠르게 증가했으며, 생산 거점 관련 투자도 증가했다. 많은 한국 대기업이 유럽 진출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동유럽을 생산 기지로 활용하고 있으며, 한국-EU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그 중요성은 더욱 증대하고 있다.

또한 동유럽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한국의 EU 수출에 버팀목 구실을 해왔다. 금융위기 기간(2008~2012) 한국의 평균 수출 증가율은 동유럽 수출이 4.4%인 반면 서유럽 수출은 -5.7%였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동유럽 주요 수출품은 평판디스플레이, 자동차와 부품, 영상기기, 휴대전화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부품, 원동기 및 펌프 등 부분품과 곡식류, 목재류 등 1차 산품 중심이었다.

둘째, 동유럽국가들의 시장개혁 경험은 체제 전환 경제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제공한다. 즉 이들이 가진 시장개혁 경험은 사회과학에 하나의 큰 실험실을 제공하는 셈인데, 이는 북한 변화에도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옛 사회주의권 경제블록 간 무역의존도가 높을 때 무역 구조가 붕괴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충격에 대한 실험이며, 1차적인 경제개혁(자유화, 안정화)과 2차적인 경제개혁(제도화, 민영화)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에 내놓을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실험이기 때문이다.

즉 산업 및 무역 구조의 붕괴, 탈산업화 과정, 인접 국가 및 국제기구의 지원과 협조 등의 측면에서 동유럽국가들의 초기 상황과 유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경우 이념과 체제가 경직돼 유연하지 못하지만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고 시장경제가 정착한 주변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 전환 과정에서 주변국과 국제금융기구(유럽부흥개발은행, EU,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의 구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U 가입 10주년을 맞은 동유럽의 변화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동유럽 지역, 우리에게 멀리 있는 듯 느껴지지만 서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되는 주요 투자 지역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향후 북한이 체제 전환과 함께 걸을 수도 있는 과정을 미리 20년 넘게 걸어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주간동아 2014.05.12 937호 (p48~50)

이종규 KDI 부연구위원 jklee@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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