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3

2014.04.14

“내용조차 숨긴 부부 재산 유별 이혼 사유다”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4-04-14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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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가 소유한 재산은 공동재산일까, 아니면 각자 몫일까. 각자 몫이라면 그건 또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옛 ‘민법’은 부부가 각자 재산을 취득, 보유할 수 있지만 재산 관리는 남편이 하는 ‘관리공통제’를 취했다. 하지만 1958년 민법을 개정하면서 부부별산제로 개혁했다. 부부가 자기 명의 재산을 각자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뜻이다. 단 귀속이 불분명한 재산은 남편 소유로 추정하는 등 불평등한 요소가 있었다. 이 부분은 77년 민법 일부개정에 의해 부부 공동소유로 추정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우리 민법을 제정하기 전 상당 기간 적용한 일본 민법에는 처가 재산을 처분하거나 재산에 관한 소송을 수행하는 등 중요한 법률 행위를 할 때는 남편 허가를 받아야 하고, 남편 존재가 불분명하거나 정신상태가 이상하면 시부모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이 같은 가부장제와 불평등 역사는 점차 사라져갔다.

    세태 변화에 따라 이혼도 늘었다. 항상 부부간 재산이 쟁점이 된다. 그럼 배우자에게 자신의 재산 명세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재정적 문제로 부부간 신뢰를 깨뜨린 것이 이혼사유가 되는지에 대한 최근 판결을 소개한다.

    서울 소재 명문대 대학원에 다니던 여성 A(34)씨는 2006년 지도교수 소개로 대기업에 재직 중인 B(39)씨를 만나 사귄 지 5개월 만에 임신하고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당시 B씨는 가족이 운영하는 부동산개발 사업에 들어간 자금과 생활비 등으로 2억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었지만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 월급이 얼마인지도 몰랐으며, 생활비가 필요할 때마다 몇만 원씩 타서 썼다. 푼돈까지 일일이 타서 쓰는 게 구차해진 A씨는 친정에 손을 벌리거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상여금으로 받은 돈과 미국 파견근무 때 추가로 받은 돈을 모아 만든 수천만 원을 본가에 사업자금으로 보냈고, 카드대출까지 받아 1억 원이 넘는 돈을 더 보냈다. 가족이 벌인 사업으로 생긴 수익을 나눠 받기도 했다. 물론 아내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이 같은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된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등 청구소송에서 이혼과 함께 “B씨는 A씨에게 재산분할로 4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B씨는 재정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생활비도 충분히 주지 않아 A씨가 스스로 궁색함을 느낄 정도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자신은 기존의 높은 소비수준이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소득을 초과해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면서까지 가족의 사업이나 소비를 지원했다”면서 “부부의 재정적 독립을 어렵게 만들고 A씨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상처를 줬으므로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부부 재산이 유별하다지만, 그 내용조차 숨기는 것은 신뢰와 애정을 깨뜨리는 일임에 분명하다. 사랑으로 가꿔야 할 가정이 돈 때문에 깨지는 일이 흔하다. 돈의 노예가 된 채 살아가는 우리 탓이다.

    “내용조차 숨긴 부부 재산 유별 이혼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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