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0

2014.03.24

또 도발 벌어지면 힘 모아 박살낼 수 있나

한국군 ‘뼈아픈 교훈’보다 각 군 조직 이익 추종에 서로 불신 여전

  •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입력2014-03-24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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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도발 벌어지면 힘 모아 박살낼 수 있나

    평택 2함대에 전시 중인 천안함 잔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리처드 클라크라는 대테러 전문가가 있었다. 2001년 1월 그는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 안보보좌관에게 “알카에다가 미국에 엄청난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고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라이스는 이를 무시했다. 그래도 주장을 굽히지 않자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당신은 빈라덴을 너무 과대평가한다”고 클라크를 핀잔하며 “여러 사람 시간낭비하게 만들지 마라”고 경고했다. 하찮은 테러리스트 한 명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걸 믿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클라크의 경고가 있고 몇 달 뒤 9·11테러가 터졌다. 역사는 누가 옳았는지 증명해줬지만, 정작 테러 이후 해고된 사람은 클라크였다. 그의 경고를 무시한 네오콘이 계속 승승장구하자, 야인이 된 클라크는 미국 시사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 나와 이 사실을 폭로했다. 이처럼 ‘조직에서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는 안전요원’을 가리켜 흔히 알라미스트(alarmist)라고 한다. 이를테면 ‘경고하는 인물’인 셈이다.

    모두가 ‘알라미스트’ 주장

    4년 전인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에서 강한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 이 사건은 분명 우리 직관과 상식으로는 예측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예측 혹은 경고한 사람, 즉 알라미스트가 있었는지는 다른 문제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4개월 전인 2009년 11월 우리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막강한 화력을 쏟아부어 북한 승무원 8명이 사상한 ‘대청해전’이 발생했고, 2010년 1월에는 김격식 북한군 총참모장이 해주를 관할하는 4군단장으로 부임했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4군단 관할인 서해 합동화력시범에 참석해 결전 의지를 독려하는가 하면, 2010년 1월 26일에는 NLL 부근에 대규모로 포를 발사하기도 했다. 북한은 3월 말까지 우리 측에 일방적으로 NLL 일원에서 ‘통항금지구역’을 선포하고 해안포를 앞세워 본격적으로 남을 압박했다. 북한군 서해사령부에 잠수정 약 8척이 배치된 것도 우리 정보기관은 파악하고 있었다.



    서북 해역의 군사적 긴장이 이처럼 최고점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북한의 수중 도발을 경고하지 않았을까. 4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이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명확한 교훈을 얻으려면 먼저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천안함 사건 두 달 후인 5월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2009년 말 이상의 합참의장과 작전본부장이 해군에 서해에서의 대잠수함작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대비하도록 지침을 주었으나 예하부대는 이를 무시했다’는 보도였다. 사실상 경계 실패 책임을 해군에 전가하는 내용이었다. 이 주장대로라면 알라미스트는 바로 합동참모본부(합참) 자신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처의 한 장교는 정반대로 “주한미군 측은 2009년 말부터 수차례에 걸쳐 합참에 서해상에서 북한의 비대칭 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며 “그러나 합참의 대비는 형식적 차원에 머물렀고 주한미군은 이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필자에게 설명한다. 합참으로부터 ‘명령불이행’으로 화를 자초했다고 낙인찍힌 해군은 어떤가. “비대칭 도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대형 함정을 NLL 부근에 전진 배치해 표적이 되는 비합리적 전술을 지시한 당사자는 합참”이며 “해군은 당시 이런 기동을 반대했다”는 게 해군 측 주장의 골자다.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김성찬 당시 해군참모총장은 필자에게 이러한 논리를 분명히 강조한 바 있다.

    또 도발 벌어지면 힘 모아 박살낼 수 있나

    2010년 6월 10일 박수원 감사원 제2사무차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장군 수뇌부 비판 책 무산

    정리하면 이렇다. 모두가 자신이야말로 북한의 잠수정 공격을 예상한 알라미스트고, 그럼에도 천안함이 경계에 실패한 이유는 자신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임 전가 논리만 난무할 뿐 명확한 사실관계나 책임 소재마저 여전히 분명치 않은 것이 천안함 4주기를 맞은 한국군의 현실이다. 사건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이러한 난맥상이 한층 강해졌음을 입증할 뿐, 본질과는 아무 관계없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해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 수중어뢰에 의해 폭침당했다는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감사원은 대규모 특별감사를 통해 군사대비태세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그러나 감사는 행정적 문제, 즉 절차와 규정 준수 여부만 따졌을 뿐 군사대비태세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징계처분을 받은 장교 대부분이 구제된 점도 감사 적절성에 의문을 갖게 한 요인이 됐다.

    정작 이 문제에 접근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에 근무하던 A장군은 이후 한미연합사령부로 발령받아 이동했다. 이 무렵 그는 2011년 말까지 대략 A4 용지 300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집필한다. 이 자료에서 A장군은 천안함 사건을 ‘대청해전으로부터 시작된 북한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도발’이라 규정하고 이를 ‘대청해전 나비효과’라고 불렀다. 군이 이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수뇌부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비전문성에서 비롯됐다는 일종의 대국민 고발장이었다.

    A장군은 이를 단행본으로 출판할 계획이었지만, 2011년 12월 군 검찰 수사관들이 그의 사무실과 숙소에 들어와 그간 집필한 원고와 자료, 노트북 컴퓨터를 압수하고 약 2주간 A장군을 조사했다. 그 결과 A장군의 출판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렇듯 사건 발생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와서 되짚어볼 때 천안함 사건의 가장 불행한 단면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정작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대부분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군의 어떤 정치적 동기, 어떤 지휘체계, 어떤 무기체계, 어떤 전술이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그 흔한 논문이나 세미나조차 없었다. 앞으로 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해도 과연 군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스러울 정도다.

    의심은 과학을 낳고 믿음은 종교를 낳는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는 믿음 문제로 취급되는 순간, 이 사건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통찰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정치적 편 가르기였다. 그 결과 북한 소행이라고 믿는 국민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분열적 양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군은 천안함 사건과 그해 11월 일어난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며 지휘체계와 작전의 전문성, 조직 간 협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여러 숙제를 떠안았다. 우리 군은 북한의 국지도발에 맞서 미군의 지원 없이 어느 선까지 응징하고 보복할 수 있는가, 무력행사에서 그 한계점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 극심한 혼선을 겪었기 때문이다.

    현장 군사력뿐 아니라 항공기를 동원해 북한의 도발원점과 그 배후까지 타격하는 절차 및 내용은 2012년 한미연합 국지도발대비계획을 통해 확정됐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계획을 가동하는 과정에서도 한반도 분쟁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미국과 독자적으로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한국 사이에 상당한 이견이 발생할 수 있고, 여전히 많은 부분을 한미 정부 간 정치적 절충에 맡겨놓았다는 한계 역시 분명하다. 최근 출간한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부 장관의 회고록은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또 도발 벌어지면 힘 모아 박살낼 수 있나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사건을 조사해온 민군합동조사단이 국방부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지도발 신속 대응에 의문

    또 도발 벌어지면 힘 모아 박살낼 수 있나

    2013년 12월 4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지휘관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고 있다.

    더욱 어려운 문제는 육·해·공군 간 원활한 협조를 통해 합동 전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우리 군은 평소 소리 높여 합동성 강화를 외치다가도 정작 안보 위기가 닥치면 감정적 앙금을 드러내며 반목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흡사 보통 때는 사이가 좋지만 유산 상속 문제만 나오면 얼굴을 붉히는 형제 같은 모양새다. 천안함 사건에서는 합참과 해군 작전사령부, 2함대 사이에서, 연평도 포격 당시에는 합참과 공군 사이에서 불거진 협조 미비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한계야말로 북한 국지도발에 신속히 대응하는 데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적시에 제대로 자위권을 행사하지 못한 군대가 피할 수 없는 뼈아픈 굴욕이었다. 이 때문에 합동성 문제는 2011년 군 지휘체계 상부구조 개혁을 둘러싼 극심한 논쟁으로 비화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사실상 좌초된 상황이다. 어떻게 하면 각 군 조직의 이익을 추종하는 논리를 초월해 3군 합동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여전히 우리 군 개혁의 가장 큰 숙제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3월 6일 박근혜 정부는 국방개혁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해 이번 계획의 핵심은 지상군 전력인 육군 개혁을 뒤로 미루면서 현행 군 구조와 부대 편성을 상당 기간 유지하는 것에 가깝다. 한마디로 천안함과 연평도의 교훈이 반영됐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국지도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전력은 지상군이 아니라 해군과 공군력이므로 지상군의 더 많은 양보는 사실상 불가피하지만, 이번 계획은 육군 구조개편을 사실상 다음 정부로 이월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표방한 이른바 ‘능동적 억제전략’이라는 군사교리 역시 그 실효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척도는 우리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높은 결의와 군을 재창조하는 실천적 노력이다. 이런 흐름이 군 전반의 자기 혁신으로 연결되는 것이야말로 천안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 돼야 옳을 것이다. 과연 우리 군은 지난 4년간 이 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갈 길은 멀고 불신은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역설적 상황이야말로 천안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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