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5

2014.02.17

‘솔로몬 지혜’로 갈등 해결사 맡아야

한국의 동북아 전략 유일한 길…세 나라 생존 아교 구실을

  • 이석수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 sslee@kndu.ac.kr

    입력2014-02-17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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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 지혜’로 갈등 해결사 맡아야

    2012년 9월 20일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유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마주하는 길목, 이것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이다.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첨예한 위치 역시 마찬가지다.

    19세기 후반 세계 열강이 한반도에서 벌인 각축은 이러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조선이 내부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자,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은 물론 러시아, 프랑스, 영국, 미국까지 영향력을 확보하려 사활을 걸었다. 자체 역량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던 조선은 주변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외교적 노력을 통해 외세로부터 자주와 독립을 지키려 했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일본에 합병되는 비운을 맞았다.

    21세기 한반도는 분단된 상태다. 주변 강대국의 위세 역시 당시 못지않다. 19세기 한반도 상황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시도가 최근 부각되는 이유다. 한국의 지정학적 의미는 변함없고, 중국은 다시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 중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지금 상황은 당시와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분명 더 많다. 21세기 한국이 처한 전략적 상황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를 그대로 적용해 해결책을 논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유럽 국가들 “조만간 中·日 전쟁”

    지금 우리는 뚜렷한 다층적 전략구도 아래 놓여 있다. 먼저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구도가 드리워져 있다. 지역 차원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개돼온 중국과 일본의 패권경쟁이 영향을 미친다. 한반도 내부에는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는 분단 상황이 있다.



    이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두 나라 모두 본격적인 대립구도를 드러내기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남북관계는 북한 체제의 왕조적, 전체주의적 특성으로 여전히 개선이 매우 더딘 상태다. 결국 최근 들어 가장 빠른 속도로 한국의 전략적 부담을 가중하는 것은 바로 중국과 일본의 지역 패권경쟁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대중(對中), 대일(對日) 관계는 예전처럼 단순한 역학구도 안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대립구도 말고도 국가 간 전략적,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심화했다는 사실이 추가 요인으로 작동한다. 오히려 냉전시대 존재하던 진영 간 대립구도가 한국에는 훨씬 용이한 상황이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현재의 중국과 일본 관계를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영국과 독일 관계에 비유하며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영국과 독일은 강력한 경제관계를 맺었지만 갈등 발발을 막지 못했다. 중국과 일본이 이와 유사한 상황”이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아베 총리의 이 발언으로 중국과 일본의 긴장관계가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다. 조만간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특히 유럽 국가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따지고 보면 중국과 일본은 협력과 갈등의 여건을 모두 갖고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중국은 개방 이후 일본의 경제 원조와 협력에 크게 의존해 성장했다. 두 나라 사이의 경제적 상호의존도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반면 정치·외교·군사 부문에서 양국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했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를 결여한 채 잘못된 언동으로 중국을 자극했고, 중국은 식민지 침략의 피해자로서 일본의 도발적 태도와 언행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과거사 문제는 양국관계를 악화한 도화선이었고,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 분쟁은 이에 기름을 끼얹었다.

    다시 우리 시각으로 돌아와보자. 중국은 이제 한국의 제1 수출국이고, 두 나라의 경제적 상호의존도는 엄청나다. 전략적으로 봐도 한국은 당장 북한 문제를 풀려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원만한 한중관계가 필요한 이유는 넘쳐나지만,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자 북한 동맹국이다.

    한편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한다. 각각 미국 동맹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다양한 지점에서 우호적 협력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아베 정부의 우경화로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일본군 위안부 부인과 독도 영토 주장으로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분노는 절정에 이르렀다.

    한쪽 편드는 일은 지양해야

    이렇듯 지금 동북아에는 고전적인 진영 대립구도에 입각해 대중, 대일 관계를 단선적으로 처리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가득 잠복해 있다. 한국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내리든 쉽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동북아에 갈등과 협력 여건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두고,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냉전시기보다 희망적인 것 아니냐는 낙관론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질문을 바꿔보자. 한국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바로 안보와 번영이다. 안보를 위해서라면 한국은 미국의 다른 동맹국인 일본과 안보 부문에서도 일정 수준 협력해나가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반면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고 핵 폐기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북한 동맹국은 중국이다. 한국으로서는 북한에 관한 전략적 문제에 대해 중국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번영도 마찬가지다. 세계 2, 3위 경제대국인 두 나라 어느 쪽과의 경제관계도 포기할 수 없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교역과 투자를 늘려나가야 옳다.

    이렇게 보면 답은 명확하다. 단칼에 잘라내듯 진영을 갈라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한국의 결론이 될 수 없다. 동북아에 잠들어 있는 협력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갈등 여건을 최소화하는 지혜만이 유일한 길이다. 세 나라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구실이야말로 한국이 가진 선택지다. 일본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과거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득하는 작업이 바로 우리 몫이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 일본이 최소한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교착화한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길만이 어른거리는 위기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첫 번째 수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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