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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물 흐린다고 학원도 기피해요”

성지중고 아이들 ‘문제아’ 낙인에 차가운 시선까지 여전히 추운 겨울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물 흐린다고 학원도 기피해요”

“물 흐린다고 학원도 기피해요”

2013년 9월 1일 성지중고가 폴란드 세계합창대회에 진출하게 돼 학생들과 김한태 교장 등이 환호하고 있다.

‘강서의 끝판왕. 방황하는 아이들의 종착역.’

2013년 추석 SBS TV에서 특집으로 방송한 프로그램 ‘송포유’에서 성지중고등학교(성지중고)를 표현한 말이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아이들이 합창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제작한 3부작 다큐멘터리 ‘송포유’가 방송된 직후 성지중고는 여론으로부터 혹독한 심판을 받았다. 누리꾼은 성지중고 학생들이 과거 폭력 경험에 대해 얘기한 것을 두고 “카메라 앞에서 가해자가 학교폭력 무용담을 늘어놓는 건 학교폭력을 미화하는 것으로, 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비판했고 “성지중고는 폭력배나 다니는 쓰레기 학교”라는 식의 마녀사냥도 이어졌다.

아픔 있지만 미래를 보는 청소년

당시 합창단 지휘를 맡았던 가수 이승철이 “나도 고교생 때 전과 9범에 교도소도 2번 다녀왔다”고 ‘과장 발언’한 것이 덩달아 화제가 되면서 성지중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깊어졌다. 당시 성지중고 인터넷 사이트는 1주일간 불통됐고 성지중고 학생들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됐다. 반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성지고’를 치면 ‘분만실’ ‘일진’ ‘폭력’ ‘문신’ 같은 무시무시한 연관검색어가 나올 정도. 1년간 냉혹한 사회적 비판을 받은 성지중고 아이들, 지금 어떤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

‘성지고 전교 1등’ 남민영(17) 양은 꼭 토끼처럼 귀여웠다. 작은 체구에 동그란 눈, 웃음 띤 얼굴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고교 1학년 학생이었다. 기자는 남양과 대학, 가족, 다이어트, 연예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거침없이 수다를 떨다 공부 방법을 물었다. “개인과외를 받는다”는 대답에 “과외는 비싸지 않느냐”고 별생각 없이 물었더니 남양이 웃으며 대답했다.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성지고는 학원에서 안 받아줘요. 물 흐린다고….”

방송에서는 ‘선생님들도 다루기 무서운, 조폭과 다름없는 아이들’로 그려졌던 성지중고 아이들. 하지만 실제 만나본 아이들은 여느 고교생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몇몇 여학생은 짧은 치마에 뽀얗게 화장을 하고 몇몇 남학생은 팔에서 문신 흔적을 찾을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성적, 대학, 미래, 다이어트 등 아주 평범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여론의 직접적인 뭇매를 맞은 송포유 합창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12월 2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강서구민회관에서 열린 ‘성매매 근절을 위한 형사모의재판’을 시작하기 전 화제의 송포유 합창단 18명이 무대에 올랐다. 흰색 티와 검은색 바지를 맞춰 입은 학생들은 ‘아리랑’ ‘런웨이’ 등 방송에서 불렀던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 앞에서 율동하기가 부끄러운지 고개조차 못 드는 학생이 있고 율동을 틀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달콤하고 따뜻했다. 무대를 내려온 아이들의 한껏 상기된 표정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음악을 즐기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물 흐린다고 학원도 기피해요”

2013년 가을 SBS는 추석 특집 프로그램 ‘송포유’를 통해 가수 이승철과 성지중고 학생들이 함께 합창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방송했다. 사진은 당시 방송 화면.

성지중고는 1972년 김한태 교장이 서울 영등포구에서 구두닦이, 신문팔이, 넝마주이 등을 대상으로 연 야학을 시초로, 81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자리 잡았다. 기존 화곡동 건물이 노후해 안전문제가 제기되자 2008년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서울시 용지에 컨테이너 40여 개를 설치, 교실로 쓰고 있다. 재학생 대다수가 자퇴, 강제전학 등으로 정규학교에서 중도 탈락했거나 소년소녀가장이다. 소년원, 소년교도소 등에서 출소한 학생도 있다. 최근에는 조리, 미용, 제빵 등 직업훈련을 받으려고 자발적으로 성지중고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김 교장은 성지중고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안타깝다.

“가출 청소년, 전과자 청소년이 성지중고에 많이 다니는 건 사실입니다. 교도소,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 대다수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데, 우리라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또다시 감옥에 가고 사회악이 되는 겁니다.”

재학생에게 성지중고는 ‘마지막 기회’다. 고3 졸업을 앞둔 이아영(20) 양은 성지고 재학 중 한식조리사자격증을 따고 3월 경기도 소재 모 대학 식품영양학과 진학을 앞뒀다. 이양은 “만약 성지고에 오지 않았다면 일반고에서 성적 ‘바닥’ 깔고, ‘좀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학교에서 교내 흡연과 왕따 문제에 휘말려 성지고에 입학한 1학년 조모(17) 양도 “이곳 선생님들은 우리를 ‘문제아’가 아니라 ‘학생’으로 봐준다”며 고마워했다.

가수 이승철과 졸업식 ‘화해공연’

2학년 안우성(18) 군은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시간만 3시간 걸리지만 지각이나 결석한 적이 없다. 그는 “일반고에 다니며 공부할 때는 집중이 잘 안 됐지만 요즘은 지하철 안에서도 조리 레시피를 찾거나 책을 본다”며 “성지고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잔잔하던 성지중고에 ‘송포유’는 거대한 돌덩이를 던졌다. 김 교장은 “가수 이승철 씨가 야생마를 명마로 만들겠다고 해 허락했지만 결과적으로 학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양은 “방송 특성상 과장하는 게 당연하다지만, 몇몇 자극적인 사례를 전체인 양 보여줬다. 합창단에 참가한 학생들도 실제로 보면 다들 순하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송포유 합창단 학생들이 폴란드 세계합창대회에 참가한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폴란드 클럽에 갔다’ ‘술을 마셨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조양은 “당시 SNS에 글을 올린 이들은 20세가 넘은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성지중고 재학생 중 상당수가 유급, 재입학 등으로 또래보다 학년이 낮다. 김 교장은 “욕설이나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것은 성지중고 아이들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청소년의 문제”라며 “실제 송포유 합창단에 참가한 아이들은 협동과 대화를 배우고 더욱 성실해졌는데, 방송 후 부정적 여론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성지중고는 일반계 수업뿐 아니라 조리, 제빵, 피부미용 등 전문 직업교육에 힘쓰고 있다. 아이의 미래에 실질적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이양은 “조리교육의 경우 일반 학원 수강료의 30%만 받고 훨씬 좋은 재료를 공급한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성지중고가 ‘학교폭력 가해자 집합소’로 그려졌지만, 교내 폭력사건은 거의 없다. 남양은 “서로 아픔이 있어 잘 이해하려 하고, 무사히 졸업해야 하니까 사고 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40년째 ‘결손 청소년의 아버지’를 자처하며 방황하는 숱한 청소년을 사회 품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는 “작지만 따뜻한 배려 하나가 사람을 바꾼다”고 믿는다.

“흔히 ‘도둑놈은 씨가 있다’고 하지만, 그럼 ‘도둑놈 씨’가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같이 안 삽니까. 사회가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그 아이들을 다시 품어줘야죠.”

2월 성지중고 졸업식 날 송포유 합창단 아이들은 가수 이승철과 합동 축하공연을 할 예정이다. 방송 때문에 문제는 좀 있었지만 아픈 과거가 있어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묻어두는 것, 그것이 바로 성지중고의 정신이기에.



주간동아 2014.01.06 920호 (p40~41)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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