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에 토마토주스… 미국식 해장술

톰 크루즈 출연 영화 ‘칵테일’에서 인상 깊게 등장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4-01-06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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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칵테일’은 로저 도널드슨 감독의 1988년 작품으로, 지금도 세계적 흥행배우로 자리 잡고 있는 톰 크루즈의 20대 중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뒀지만 작품성 측면에서는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영화의 기본 얼개는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들의 세상을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황금만능주의에 찌든 세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돈 많은 여자를 통해 단번에 인생역전을 이루고자 하는 남자들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한 깨달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영화 도입부는 막 군복무를 마친 패기만만한 브라이언(톰 크루즈 분)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브라이언은 특별한 경력과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구직에 실패한다. 할 수 없이 생계를 위해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면서 낮에는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는 생활을 시작한다. 바 매니저 덕(브라이언 브라운 분)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해박한 칵테일 지식으로 단번에 그의 바텐더 스승이 된다. 현실적인 덕은 돈 많은 여자를 만나 성공하는 것이 목표다. 브라이언은 이런 덕의 인생관에 모두 동의하진 않지만,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선다.

    마침내 브라이언과 덕은 부유층 대상 나이트클럽에서 본격적인 바텐더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 고객으로 인한 갈등 끝에 브라이언과 덕은 결별하고 만다. 덕과 헤어진 브라이언은 돈을 벌려고 자메이카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해변가 작은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중 우연히 조던(엘리자베스 슈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천사의 젖꼭지, 오르가슴… 수많은 술



    그런데 뜻밖에 덕이 브라이언 앞에 나타난다. 덕은 평소 소원대로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해 신혼여행을 온 것이다. 덕은 브라이언에게 가난한 여자만 만나는 못난이라고 놀리면서 자극한다. 약이 오른 브라이언은 바 손님 중에 돈 많은 여자를 유혹해보겠느냐는 덕의 내기를 받아들인다. 그는 결국 여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지만 조던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미국 뉴욕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에는 ‘칵테일’이란 제목이 보여주듯 수많은 칵테일이 등장한다. 진토닉, 마티니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칵테일부터 쿠바 리브레, 벨벳 해머, 앨라배마 슬래머, 가미카제 같은 비교적 생소한 칵테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이름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천사의 젖꼭지(Angel Tit), 오르가슴(Orgasm), 해변의 정사(Sex on the Beach), 죽음의 발작(Death Spasm) 같은 매우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이름의 칵테일도 나온다.

    물론 영화에서 이들 칵테일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이름만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몇은 독특한 이름만으로도 흥미를 끌 수밖에 없다. 천사의 젖꼭지는 화이트 크림 드 카카오, 체리 리큐어, 생크림을 재료로 사용해 비중의 차이로 층을 지게 만든 것이다. 천사의 젖꼭지라는 묘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잔 안에 봉긋이 솟은 생크림 중앙에 장식으로 체리를 놓은 모습 때문이다.

    오르가슴은 튀는 이름과 달리 국제바텐더협회 공식 칵테일 중 하나다. 이 칵테일 레시피는 변형이 많은데 일반적으로 아이리시크림, 아마레토, 칼루아를 재료로 쓰는 레시피가 많이 사용된다. 여기에 보드카를 섞을 경우 스크리밍 오르가슴이라는 더 묘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해변의 정사 역시 국제바텐더협회 공식 칵테일 중 하나다. 공식적으로는 보드카, 복숭아 리큐어, 오렌지주스, 크랜베리주스를 재료로 사용한다. 또 하나 많이 이용하는 레시피는 보드카, 샹보르, 미도리(멜론 리큐어), 파인애플주스, 크랜베리주스를 넣는 것이다.

    죽음의 발작은 사실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칵테일이 아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이 칵테일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간혹 인터넷에 질문을 올리기도 했지만 정답은 찾지 못했다. 아마도 영화의 재미를 위해 급조한 이름이거나 창작 칵테일의 한 종류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작 칵테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온갖 특별한 이름을 달고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에 이처럼 많은 칵테일이 등장하지만 가장 인상 깊게 관객의 주의를 끄는 것은 ‘레드아이(Red Eye)’ 칵테일이다. 이 칵테일은 브라이언이 처음 덕을 만났을 때를 시작으로 영화 전편에 걸쳐 계속 등장한다. 자메이카에 있는 브라이언을 찾아간 덕이 처음 건넨 인사말도 레드아이를 만들 줄 아느냐는 것이었다. 그 후 브라이언이 배 위에서 덕 부부를 만날 때도 레드아이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브라이언이 조던과 데이트할 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술도 바로 레드아이다.

    블러디 메리의 한 변형

    맥주에 토마토주스… 미국식 해장술
    그러면 이 영화에서 수많은 칵테일을 물리치고 이처럼 비중 있는 구실을 담당하는 레드아이는 과연 어떤 칵테일일까. 레드아이 칵테일은 한마디로 맥주와 토마토주스를 혼합한 것이다. 구체적인 제조 방법은 브라이언이 처음 바에서 덕을 만났을 때 자세히 소개된다. 제조법은 매우 간단하다. 큰 컵에 맥주를 먼저 부은 다음 토마토주스를 담뿍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 단계로 달걀을 첨가하는데, 보통 잔 모서리에 날달걀을 톡 쳐서 껍질은 버리고 속은 그대로 잔 안에 넣는다. 이때 붉은색 칵테일에 들어 있는 달걀 노른자 형상을 보고 레드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름에 관계없이 달걀을 넣지 않아도 무방하다. 실제 영화에서도 달걀을 넣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레드아이는 독립된 종류라기보다 유명 칵테일인 블러디 메리(Bloody Mary)의 한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보드카에 토마토주스를 섞고 약간의 소스를 가미해 만드는 블러디 메리는 미국에서는 숙취해소용으로 종종 이용하는 칵테일이다. 말하자면 서양식 해장술인 셈이다. 블러디는 칵테일의 붉은색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메리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블러디 메리는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재료를 조금씩 바꾼 변형 칵테일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면 보드카 대신 럼을 넣은 블러디 파이럿(pirate), 사케를 넣은 블러디 게이샤 등이다. 이런 맥락에서 레드아이는 보드카 대신 맥주를 넣은 블러디 비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레드아이는 톰 크루즈가 역시 주연을 맡은 캐머런 크로 감독의 1996년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도 등장한다.

    레드아이는 만들기 쉽고 청량감이 뛰어난 칵테일이다. 가끔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것에서 벗어나 영화 장면을 생각하며 레드아이를 만들어 마신다면 생활의 색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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