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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거친 겨울을 뜨겁게 살아낸 한 그릇

제주 꿩메밀국수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거친 겨울을 뜨겁게 살아낸 한 그릇

거친 겨울을 뜨겁게 살아낸 한 그릇

꿩 샤브샤브(위)와 꿩메밀국수.

온도와 습도는 사람과 음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요리할 때도 그렇다. 초보 요리사는 대개 온도와 습도를 고려치 않고 정해진 양과 재료만 사용하다 요리를 그르친다. 찬바람이 불면 따듯한 음식을 찾는 건 인간 본능이다. 그래서 이번엔 제주의 따스한 꿩메밀국수를 소개한다.

겨울 제주는 스산하다. 제주에서 가장 작은 골목시장의 좁은 골목에 ‘골목식당’이 있다. 겨울에 제맛을 내는 꿩메밀국수가 이 집 간판 메뉴다. 현지인과 외지인이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테이블은 6개뿐인 작고 수수한 식당이다. 꿩으로 우린 진하고 고소한 국물과 덤덤한 메밀로 만든 면을 숟가락으로 퍼 먹는 이 집의 수제비 같은 꿩메밀국수는 제주 겨울 음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논이 거의 없고 밭이 땅의 중심을 이루는 제주에서는 오랫동안 감자, 보리, 조, 메밀이 주식이었다. 제주의 메밀 생산량은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꿩메밀국수 같은 음식은 물론 메밀전병과 메밀범벅, 전통 제주 순대인 ‘수애’에도 메밀이 빠지지 않는다. 태풍이 잦고 바람이 많은 제주에는 여름 태풍이 지나간 후 8월 말경 메밀을 심고 10월이면 수확을 시작한다.

유채꽃이 제주 봄을 노랗게 물들인다면 메밀꽃은 제주의 초가을을 하얗게 뒤덮는다. 하얀 속살을 검고 단단한 껍질로 감춘 메밀은 가을에 수확하는데, 껍질을 벗기면 뽀얀 속살을 드러낸다. 이 가을걷이 메밀과 가을에서 초봄까지만 제맛이 나고 먹을 수 있는 꿩고기가 만나야 제주의 꿩메밀국수가 만들어진다.

1980년대 제주 관광 붐이 일면서 꿩고기는 제주의 새로운 특산품으로 등장했다. 제주는 꿩 사육지로도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그런데 이 사육 꿩도 날이 더우면 제맛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제주의 많은 꿩 전문점이 가을 이후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꿩 가슴살과 다리살은 얇게 저며 샤브샤브로 먹고, 뼈에 붙은 살과 다른 부위는 육수로 끓여 메밀칼국수와 함께 먹는다.



토종닭 마을로 유명한 제주 조천읍 교래리에는 닭고기 전문점이 많고 대부분 맛있게 잘한다. ‘교래손칼국수’는 칼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꿩메밀칼국수는 겨울에만 맛볼 수 있다. 봄과 여름, 가을에는 토종닭칼국수와 바지락칼국수가 대신 메뉴판을 차지한다. 꿩 대신 닭은 이 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살점은 적지만 깊고 그윽한 꿩 고기 맛과 구수한 메밀의 조화는 차가운 메밀면인 냉면이나 막국수와는 또 다른 맛의 세계를 보여준다.

제주 이도2동에 있는 ‘비자림 꿩메밀손칼국수’도 유명하다. 1981년 시작한 뒤 오랫동안 메밀 산지 주변인 비자림에서 장사하다 몇 년 전 제주 시내로 자리를 옮겼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제주 중산간(中山間) 지역이 메밀 주산지자 소비처였다. 꿩 뼈로 우린 이 집 육수는 맑고 곱다.

하얀 메밀은 순하고 달다. 순하고 고운 것들이 만나 만들어진 국수 한 그릇은 강하고 거칠며 센 양념으로 범벅된 대도시 국수와 본질부터 다르다. 제주에선 강원도와 달리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메밀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겨울 꿩과 메밀로 만든 따스한 음식을 먹으며 제주 사람은 거칠고 추운 겨울을 버티고 살아왔다. 임부는 해산을 잘하려고, 감기 걸린 사람은 보양식으로 메밀을 먹었다. 겨울에 제주를 찾는 외지인에게도 꿩메밀국수 한 그릇은 속을 채워주고 위로가 된다. 제주에 가면 제주법을 따라야 한다.



주간동아 2013.12.30 919호 (p77~77)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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