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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칵테일 | 깁슨

마티니에 미니 양파…순하게 원샷!

영화 ‘네트’에서 주인공 앤절라를 유혹했던 그 술, 순정과 로맨스 상징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마티니에 미니 양파…순하게 원샷!

영화 ‘네트(The Net)’는 어윈 윙클러 감독의 1995년 작품이다. 20년 전 당시엔 첨단 컴퓨터 지식을 동원해 만든 스릴러물로 평가받았다. 컴퓨터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 미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려는 사악한 컴퓨터 회사와 본의 아니게 사건에 개입돼 그들과 싸우게 되는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앤절라 베넷(샌드라 불럭 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캐세드럴사에서 새로 나온 소프트웨어의 바이러스나 에러를 분석하는 전문가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젊은 여성이다. 그는 틈틈이 온라인상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를 고쳐주면서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앤절라는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지만 컴퓨터를 통한 통신 외에는 외부와 일절 교류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다. 이따금씩 찾는 홀어머니마저 중증 치매로 병원에 장기 입원한 상태다.

사악한 컴퓨터 회사와 한판 전쟁

사건은 캐세드럴사의 중견 직원인 데일이 새 인터넷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며 이를 분석해달라고 컴퓨터 디스크에 프로그램 파일을 담아 보내면서 시작된다. 파일에는 ‘π(파이)’라는 의문의 아이콘이 붙어 있다. ‘모차르트의 유령’이란 이름이 붙은 이 파일은 놀랍게도 사용자가 원하는 사이트는 어디든 마음대로 접속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가공할 위력을 알아챈 데일은 앤절라를 직접 만나 자세하게 상의하려고 연락한다. 앤절라는 바로 다음 날 멕시코 여행을 가기로 한 데다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는 성격 때문에 처음엔 그의 만남 제의를 내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멕시코로 출발하기 전 몇 시간 만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는 데일의 간곡한 요청에 만남을 승낙한다. 그런데 데일은 앤절라의 집으로 가던 중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앤절라는 데일의 사망소식에 놀라긴 했지만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판단하고 계획대로 멕시코로 떠난다. 멕시코 한 휴양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컴퓨터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잭을 만난다. 친근하면서도 깔끔한 인상, 그리고 컴퓨터에 대한 해박한 지식 때문에 앤절라도 잭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잭은 앤절라가 갖고 있는 데일의 컴퓨터 디스크를 노린 범죄 조직의 일원. 우여곡절 끝에 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앤절라는 미국으로 간신히 돌아온다. 그러나 자신의 집이 깨끗이 비워진 채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캐세드럴사에 전화해보니 이미 그곳에도 그로 행세하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앤절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옛 애인이자 정신과 의사인 앨런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마저 범죄 조직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그때부터 그는 ‘π’ 아이콘으로 상징되는 무서운 사이버 테러리스트 조직인 프레토리안의 끊임없는 위협과 싸우면서 그들의 음모를 분쇄해야 할 운명에 처한다.

첨단 컴퓨터 관련 영화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앤절라의 숨겨진 로맨스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칵테일이 등장한다. 이 칵테일은 영화에서 앤절라가 가장 좋아하는 단 하나의 무엇으로 특정된다. 앤절라가 집 안에서 술을 마시면서 컴퓨터를 하는 영화 첫 장면. 그 술은 앤절라가 옛 애인 앨런과의 추억을 간직한, 연애 시절부터 가장 사랑하는 칵테일이었다.

컴퓨터 전문가로 위장한 범죄 조직원인 잭이 그와 친해지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 칵테일이다. 컴퓨터 디스크를 빼앗으려고 그에 관한 모든 것을 해킹하면서 감시한 잭이 이런 사실을 놓칠 리 없다. 앤절라를 몰래 추적해 멕시코 휴양지까지 따라간 잭은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하는 그의 관심을 끌려고 큰소리로 바 종업원에게 이 칵테일을 주문한다. 그 칵테일 이름은 바로 ‘깁슨(Gibson)’이다.

잭은 앤절라가 가장 사랑하는 칵테일에 대해 아는 척하면서 필연을 우연으로 가장한다. 종업원에게 깁슨을 주문하면서 “마티니에 올리브 대신 양파를 넣은 칵테일인데 주문이 가능하겠느냐”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이 말을 들은 앤절라는 평소 즐겨 마시던 깁슨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자기에게도 “한 잔 갖다달라”고 한다. 그러자 잭은 “나 말고 그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을 찾기 힘든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곧 이어 잭과 앤절라는 바 테이블에서 깁슨을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잭은 술을 마신 뒤 술 안에 들어 있는 미니 양파까지 맛있게 먹는다. 그들의 다음 데이트에서도 깁슨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깁슨이 또 한 번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은 앨런이 잭에게 쫓기는 앤절라를 도와 호텔 방을 구해줬을 때다. 호텔 방의 냉장고 안 미니바에서 미니어처 술병들을 발견한 앨런이 옛 추억도 살림 겸 앤절라의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술병들을 꺼내며 “깁슨을 마실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양파가 없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미 지친 상태인 앤절라는 “지금만큼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한다.

마티니에서 변형된 술

마티니에 미니 양파…순하게 원샷!

영화 ‘네트’ 포스터.

영화에서 앤절라가 가장 아끼는 대상으로 나오는 깁슨은 잭이 말한 것처럼 한마디로 ‘마티니에 올리브 대신 양파를 넣은 것’이다. 이 때문에 깁슨은 하나의 독립적인 칵테일이라기보다 마티니의 변형으로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깁슨을 만들 때 사용하는 양파는 우리가 보통 보는 큰 양파가 아니고 칵테일용으로 가공한 것이다. 작은 크기의 양파 껍질을 벗기고 소금에 절인 미니 양파(baby onion)다.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는데, 보통 병에 넣어 파는 것을 사용하면 된다. 영화에서도 마티니 글라스에 올리브 대신 예쁘게 담긴 미니 양파를 잘 볼 수 있다.

깁슨 칵테일이 만들어진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전설적 삽화가 찰스 데이나 깁슨(Charles Dana Gibson·1867~1944)에서 이름을 땄다는 설이다. 뉴욕 플레이어스 클럽의 단골이던 깁슨이 어느 날 그곳 바텐더였던 찰리 코널리에게 “기존 마티니를 개선한 칵테일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고, 코널리가 임기응변으로 올리브 대신 미니 양파를 장식으로 올린 칵테일이 바로 깁슨의 시작이었다는 것. 코널리는 이 칵테일이 인기를 얻자 삽화가 깁슨의 이름을 따 칵테일 이름을 지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 유력한 설 중에는 1890년대 샌프란시스코 보헤미안 클럽에서 또 다른 깁슨(Walter DK Gibson)이란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며, 깁슨이란 이름의 사업가가 술을 못 마시는데(다른 버전 이야기로는 술이 약해 취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손님을 접대해야 하는 술자리에서 진 대신 맹물을 넣은 뒤 이를 진짜 마티니와 구별하려고 올리브와 크기가 비슷한 미니 양파로 장식했다는 설도 있다.

연말연시 폭탄주에 절어 있는 사람이라면 순한 마티니에 미니 양파를 올린 깁슨을 마시며 지나간 한 해를 추억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주간동아 2013.12.30 919호 (p78~79)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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