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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행복들하십니까” 02

행복, 너 어디에 숨었니

물질적 성장 과정에서 정신적 가치 상실로 현실 불만족

  • 오종남 서울대 교수·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행복, 너 어디에 숨었니

행복, 너 어디에 숨었니
행복, 이만큼 해묵은 주제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BC 300년대에 살다 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행복이다. 다른 모든 것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설파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지 반세기 만에 100달러 미만이던 1인당 국민소득을 2만3000달러 수준으로 높이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하루 세끼 밥 먹는 일을 걱정해 “진지 잡수셨습니까”라고 인사하던 세대가 다이어트를 논하는 세대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만큼 행복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질적인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간 우애, 남에 대한 배려 같은 정신적 가치를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쑥스러운 환갑잔치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가장 큰 잔치는 동네 어르신의 환갑잔치입니다. 누군가 환갑을 맞으면 그날은 온 동네 잔칫날이 되곤 했습니다. 부자는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도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러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 여겼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성대한 환갑잔치를 듣고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저는 2002년 2월 통계청장으로 부임해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960년 52세였던 한국인 평균수명이 2001년 76세로 늘어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난 2011년 한국인 평균수명은 81세로 늘었습니다. 평균적으로 52세까지 살던 시절에는 60세 환갑이 정말 축하할 일이었지만, 평균 80세 이상 사는 지금은 환갑은 고사하고 고희 잔치를 성대하게 하는 것도 쑥스러운 세상이 됐습니다.



또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것입니다. 제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제 친구의 평균 형제자매 수는 6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공적인 가족계획 덕분인지 열 집 가운데 여덟 집은 아이를 하나만 낳습니다. 그래서 평균 자녀 수가 1.2명이 됐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우리 사회가 이제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는 어쩌다 세계에서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에는 빈곤에서 벗어나는 일이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90세 이상 사는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년 제도는 평균수명이 60세 전후이던 시절 정한 55세 내지 60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도 30~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우리 인생의 앞날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심히 걱정됩니다. 이제까지는 연로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의 부양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사람의 도리로 여겨졌습니다. 노후 준비를 따로 하지 않고, 부지불식간 자식의 봉양을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기대하던 효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의 노인 자살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이런 사회현상 속에서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소외된 이웃 돕는 게 행복

행복, 너 어디에 숨었니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정부 복지정책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효 사상이 점점 소멸해가고, 국가적으로는 2명이 1.2명을 낳는 구조에서 자식 세대에게 노후를 의탁하거나 정부 복지정책에 기대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노후 준비를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자식에게 ‘다걸기’ 하지 말고 반만 투자하라고 권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식사랑은 노후에 자식에게 손을 안 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효의 실천에 관한 것입니다. 동물도 자식은 사랑합니다. 하지만 부모를 돌보는 효라는 개념은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습니다. 부모를 돌보는 효를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자식에게 효를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소외되고 낙오된 이웃을 돕는 일도 중요합니다. 인간은 남에게 뭔가 도움이 됐을 때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사실 남을 도우면 도움을 받는 사람에 앞서, 돕는 사람이 먼저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는 남과 더불어 사는 배려를 가르치기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만 주력합니다.

소외계층을 배려해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에 문제가 생겨 현 시스템이 붕괴할 경우 자신이 잃을 것이 많은지 얻을 것이 많은지 생각해봅시다.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면 이는 현 시스템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소외계층은 어떨까요? 지금 이대로는 나아질 희망이 없으니 차라리 현 시스템이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을까요?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를 우리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 시스템의 수혜자인 우리가 소외계층을 돕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는 물질적 나눔이나 도움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식당 종업원을 존대하는 말씨, 골프장 도우미에게 베푸는 작은 실천 등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행복을 높이는 방법일 것입니다.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가 모처럼 이룬 단군 이래 최고 번영을 우리 자손에게 물려주는 방법이기도 할 것입니다.



주간동아 2013.12.30 919호 (p16~17)

오종남 서울대 교수·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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