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2

2013.11.11

‘기후변화경영’이 대세야, 대세

한국 기업 저탄소경제 대응 적극적… 일부 온실가스 상위 배출 기업은 여전히 외면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3-11-11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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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경영’이 대세야, 대세

    CDP 한국위원회(위원장 장지인)는 11월 4일 서울 여의도 63시티 컨벤션센터에서 기후변화 대응 우수기업 시상식을 열었다.



    벌써 대부분의 사람은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지난여름 한반도는 1973년 이후 가장 심한 폭염과 기록적인 초열대야 현상을 경험했다. 가을의 이상저온도 예년보다 일찍 왔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야기할 파국은 영화 ‘설국열차’ 속에서의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시나리오에 따라 기상청이 전망한 바에 따르면, 현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금세기 말 한반도는 기온이 5.9도 상승하게 된다. 온실가스를 상당히 감축해도 강원 일부 산간지역을 제외하고는 전역이 아열대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상 지금보다 더 심각한 기상이변이 예고된 셈이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위기의식이 희박하다.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온실가스 30% 감축 계획을 국제사회에 알렸지만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보다 9.8%(6000만tCO2) 증가한 6억6900만tCO2였다.

    90개 기업 탄소정보공개 평가에 참여



    이런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에 큰 몫을 하는 기업의 대응이 흥미롭다. 최근 CDP(Carbon Disclosure Project·옛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한국위원회(위원장 장지인)가 공개한 기후변화경영 평가에 따르면,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더 적극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총액 상위 250개 기업 가운데 90개 기업이 이번 CDP 평가에 참여했는데, 기후변화경영의 세 가지 축인 지배구조, 통합전략 수립, 인센티브 제도를 모두 구축했다고 응답한 기업 비율이 지난해보다 8% 늘어난 72%였다. 또 응답 기업이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감축 활동을 통해 줄인 온실가스양은 전년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CDP 참여 기업 가운데 60%는 목표관리제, 배출권거래제 등 정부 정책 도입에 따른 위험요소를 관리하고 이를 수익으로 연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DP 측이 설문하고 기업이 자사 정보를 외부기관으로부터 검증받은 뒤 공개하는 형식의 이 평가 시스템에 대한 응답 기업의 정보공개 수준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응답 기업의 정보공개 점수는 전년도보다 2점 증가한 67점(100점 만점)이었고, 질적 수준 평가 그루핑인 성과밴드에서도 9점 상승했다. 90개 응답 기업 가운데 80점 이상 받은 기업은 전년도보다 5개 늘어난 38개 사였으며, B등급 이상의 성과밴드를 획득한 기업도 15개 늘어난 41개 사였다.

    CDP는 온실가스 감축 등 기업의 환경 영향과 전략을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글로벌 정보공개 시스템으로,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온실가스 등 환경 관련 기업의 지속가능성평가 시스템 가운데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변화 대응 우수 기업 성과도 우수

    CDP 한국위원회 2013 평가 결과를 보면 삼성전기, SK하이닉스, KT,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5개 기업이 탄소경영 최우수기업인 탄소경영 글로벌 리더스 클럽에 편입됐다. 이 가운데 SK하이닉스는 2009년부터 5년 연속 이 클럽에 편입돼 CDP코리아 명예의 전당에 처음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다. 삼성전기는 4년 연속, 삼성물산은 2년 연속 편입됐다. 이들 기업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경영, 위험과 기회, 배출량 등 CDP가 요청하는 부문에 대해 정보공개를 충실히 했고,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투명성 등과 관련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이 같은 평가를 받았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안전환경연구소(옛 삼성지구환경연구소)에서 그룹의 모든 CDP 대상 계열사에 CDP 참여를 독려했다. 한화그룹은 한화환경연구소를 중심으로 CDP 대상 기업뿐 아니라 그룹의 모든 상장사가 CDP에 참여토록 했으며, 비상장 계열사의 경우는 한화환경연구소에서 한화그룹 이름으로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우수기업은 성과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CDP 평가 대상 기업 가운데 최상위 기업그룹인 CPLI(Climate Disclosure Leadership Index) 10개 기업의 주가수익률은 코스피지수(KOSPI)200 기업군보다 평균 22%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변화경영’이 대세야, 대세
    이처럼 주요 기업들이 CDP에 참여하면서 기후변화를 주요 경영 과제로 끌어안은 것은 무엇보다 정부 규제 등 경영 여건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2010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2014년 평가 대상 기업은 모두 560개. 이들의 온실가스 총 예상배출량은 6억600만tCO2이고, 이 가운데 1700만tCO2를 감축하도록 정부가 배출허용량을 설정했다. 2015년부터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또 글로벌 환경의 변화를 외면할 수 없는 점도 한 요인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연구원은 “정보기술(IT), 건설 등처럼 산업 내 경쟁이 치열하거나 수출기업들처럼 바이어들의 요청을 받게 되는 경우에도 CDP에 적극 참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먼저 기업 규모 및 산업 영역에 따라 기후변화 정보의 공개와 성과 수준은 큰 차이를 보였다.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CDP 응답률, 평균 공개점수, 성과밴드는 각각 66%, 74점, C밴드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시가총액 기준 101~250위 기업은 각각 16%, 48점, D밴드로 평가됐다. 산업 영역별 평가에서는 IT 부문이 기후변화 경영에 가장 적극적인 반면, 필수소비재 부문은 가장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CDP코리아 250에는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에 속한 기업이 104개 포함됐지만 CDP에 응답하지 않는 곳이 50개나 된다.

    탄소정보공개 기업 실질 지원 필요

    국민연금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기업들의 환경 경영을 독려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218개 기업 중 CDP 평가 대상은 132개 사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42%에 불과한 56개 기업만 CDP에 응답했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국민연금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유엔 PRI(책임투자원칙) 서명기관으로서 국내 사회책임투자(SRI) 기반 조성의 책임을 지므로 지분 보유 기업들에 CDP 참여 등을 통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보공개를 독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기관의 구실을 강조한 장지인 CDP 한국위원회 위원장은 “기후변화 대응의 기본은 탄소정보를 투자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공개하는 일이다. 특히 한국 금융기관은 탄소정보공개를 잘하는 기업을 주목하고 투자와 대출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정보공개와 투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이 상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이 기업에 투자할 경우 ESG 요소를 고려할 수 있고, 그것의 고려 여부와 고려 정도를 공시한 뒤 만약 이를 고려하지 않았을 경우 그 이유를 공시하게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과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기업이 의무적으로 발행하는 사업보고서에 ESG 요소를 공시토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금융투자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기후변화는 이미 다가와 있는 미래요, 위험요소이다. 이 위기에서 침몰할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인가는 기업 자신에 달렸다. 사람들의 기대도 다르지 않다. 프란시스 웨이 CDP 최고운영책임자는 “사람들이 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더는 문제의 근원이 되지 말고 저탄소경제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구실을 담당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CDP 무응답 기업들

    SK이노베이션… 한전 발전 자회사… 자발적 공개는 언제?


    ‘기후변화경영’이 대세야, 대세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

    ‘SK이노베이션이 이산화탄소에게 물었다. 왜 너만 보면 지구온난화 얘기일까? 이산화탄소를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바꾸다….’

    SK이노베이션이 TV에 내보내는 광고다. 이 광고만 보면 이 기업이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기술이 아직 상용화 단계가 아님을 감안하면 친환경정책을 과장하는 일종의 위장 환경홍보(green washing·그린 워싱)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SK이노베이션은 CDP 대상 기업이지만 참여하지 않고 있다. CDP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의무규제가 아니라 민간의 자발적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참여 여부는 기업 자율이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 상위 기업 가운데 하나인 SK에너지를 자회사로 두는 등 기후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의 CDP 불참은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한 기업가치 향상에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한국전력(한전)은 올해 CDP에 참여했으나 발전 자회사의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실제 전력 생산으로 인한 온실가스는 이들 발전 자회사에서 발생하지만 이들 기업은 비상장이므로 CDP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성과 전력 수급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할 때 이들 자회사의 자발적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전 발전 자회사 가운데 동서발전은 유일하게 CDP를 통해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CDP와 관련한 기업 대응은 여러 유형으로 나타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각 기업이 CDP에 응답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자사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관련 없다며 응답을 거부하는 경우다. 금융이나 제약 등 비제조업 기업에서 이런 이유로 응답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비제조업 부문도 선진국 기업들은 CDP 평가에 적극 대응한다. 금융권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은 많지 않지만 배출권거래제 등과 같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참여할 수 있는 새 기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투자한 기업이 기후변화로 피해가 발생하거나 재해로 인한 보험금 지급 상승 등으로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해외 금융기관들은 CDP에 적극 참여한다. 기후변화는 질병의 발생 빈도와 패턴, 발생 장소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제약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또 신약 원료물질이 되는 유전자 자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해외 제약업체는 CDP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내놓지만 국내 제약사의 경우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온실가스 배출 상위 560여 개 기업의 경우 정부가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통해 관리하기 때문에 CDP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투자자나 이해관계자에게 자사의 ESG 요소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셋째, CDP 대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별로 없다고 인식하는 기업들이 있다. 주로 중간재나 비소비재 부문의 기업들이 이런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그린 워싱’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또 실무자는 적극적이지만 경영진에서 정보공개에 대해 미온적인 경우가 있다. 탈세 등 경영자 이슈가 있는 기업의 경우 특히 ESG 요소 공개나 참여를 꺼린다. 처음부터 기대점수가 높지 않을 경우에도 참여를 기피한다. 담당자나 담당부서가 없을 경우 CDP 설문에 응답하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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