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2

2013.11.11

정당 활동의 한계는 어디까지

궁극적 판단 헌법재판소 부담 떠안아… 최종 결정까지 기간 아무도 몰라

  • 이상경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sky@uos.ac.kr

    입력2013-11-08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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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활동의 한계는 어디까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11월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법리 검토 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11월 5일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접수했다.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해산될 경우 소속 국회의원 자격박탈청구까지 함께 이뤄질 수 있어 전 국민적 관심이 이 사건에 쏠린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정치권은 벌집 쑤신 듯 난리다.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은 삭발농성까지 벌이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위헌정당의 전례가 없어 결정이 날 때까지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위헌정당해산심판은 1960년 헌법 개정 때 도입된 제도다. 제1공화국에서 소위 ‘조봉암 사건’에 연루됐던 진보당이 정부의 행정처분인 등록 취소에 의해 해산된 것을 반면교사 삼아 만든 절차다. 그 취지는 헌법상 보장된 정당의 지위를 정권 판단으로부터 독립해 더 강력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당이 해산되려면 현행 헌법 제8조 제4항에 의거해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돼야 하며 절차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재판관 9인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6인 이상 찬성 필요)이 있어야 한다.

    정당의 목적과 활동 기준 정립

    현행 헌법 제8조 제4항의 규정은 소위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는 ‘민주주의의 적’이라 보고 이에 대한 관용을 허용치 않는다는 헌법상 한계를 정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반민주적 정당이라 할지라도 헌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의해서만 해산된다는 헌법상 정당 보호의 이념을 반영했다.

    주권자인 국민의 자발적 조직으로 이뤄진 정당의 운명을 선거를 통해 국민 스스로가 결정짓게 하지 않고 위헌정당해산심판을 통해 정부와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맡기게 한 것도 그만큼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돼야 한다는 요건은 매우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



    문제는 어느 경우에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는지 그 판단기준이 될 선례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법무부가 예로 든 독일의 경우도 60여 년 전인 1950년대 일이다. 나치당을 계승한 독일사회주의제국당과 독일공산당을 해산했을 뿐 그 후에는 사례가 전무하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을 차제에 새로이 정립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위헌정당으로 판단하기 위해선 적어도 해당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확연히 반민주적·반국민적이어서 더는 존립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정부를 대표해 법무부가 내놓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청구 사유는 간단하다. 먼저 당 강령을 통해 확인된 ‘진보적 민주주의’ 이념이 북한의 건국이념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점, 그리고 강령에 포함된 ‘민중주권주의’가 헌법에 규정된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표출된 이와 같은 이념 혹은 목적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선 수용될 수 있는 정치적 노선 가운데 하나라는 해석도 있을 수 있다. 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헌법 테두리 안에서 이와 같은 정치적 이념이 추구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아무도 한 바 없지만, 이런 이념을 수용하고 표방한 정당을 인위적으로 제약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선거를 통해 주권자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법무부의 해산청구 사유의 또 다른 축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주도한 ‘혁명조직(RO)’에 통합진보당의 핵심세력이 관여했고, 이러한 세력이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사법재판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누구도 유무죄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유죄라 하더라도 통합진보당의 일부 인사에 의한 행동을 당이 책임져야 하는 활동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정부의 위헌심판해산청구 시점도 문제다. 이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형사재판이 아직 계류 중인데 마치 정부가 이 의원의 내란음모 행위를 사실로 간주하고 이에 근거해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를 한 것처럼 국민에게 잘못된 믿음을 줄 우려가 있다.

    또 정부의 해산심판청구가 현재 계류 중인 형사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적어도 이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항소심 사실 확정 전까지는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를 보류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통합진보당의 해산청구 문제가 이미 진행 중인 내란음모 사건의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화급을 다투는 일이었는지 되짚어볼 일이다.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정당 활동의 한계는 어디까지

    내란음모 혐의를 받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9월 4일 오후 국회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뒤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또한 정부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인정하고 해산을 결정할 경우 그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원의 자격박탈을 위헌정당해산의 당연한 귀결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와 관련한 규정이 전무해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자격박탈 여부 또한 쉽게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다.

    무소속 국회의원과 달리 정당 소속 국회의원은 어느 정도 소속 정당에 구속돼 활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지역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기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산된 위헌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국민의 이익을 저버리고 반민주적인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별도의 심판을 통해 자격박탈 여부를 판가름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입법적으로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그에 따라 국회의원의 자격박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채택한 법치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당장 헌법재판소는 매우 민감한 정치 사건에 대해 궁극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정당 존립 기반은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 선택에 따라 정당의 진퇴 및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우리 헌법이 채택한 국민주권주의 이념에 더 합당해 보인다. 사실 통합진보당의 운명은 위헌정당해산심판이 청구되지 않았더라도 내년 6월 지방선거를 포함해 차기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민적 심판대에 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특히 이 사건이 적시에 처리해야 할 사건인지를 가리고, ‘정당 활동 정지’ 가처분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도 재판부에겐 또 다른 부담이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해산 여부에 관한 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훈시규정일 뿐이어서 실질적으로 심판 결정이 끝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결정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리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은 1950년대 독일에서의 위헌정당해산결정 때도 마찬가지였다. 위헌정당해산결정심판은 법리 검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의 확정 문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이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계류 중이므로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이뤄질 때까지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유보하는 방향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정치적 관점을 배제한 상태에서 신중을 기해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 사건을 심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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