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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좌우파 역사 교과서 전쟁 02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좌우파 역사학자 핏발 선 대립 국론분열 팩트에 근거한 교과서로 학생 가르쳐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한상진 월간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9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이 만든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참석자들을 맞고 있다. 김 의원은 최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긍정적 사관”이라고 옹호하고 나섰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11년간 이어져 내려온 좌편향 교과서 독점 시장을 깨뜨릴 교과서가 나오니까 아예 싹을 자르려고 유언비어까지 퍼뜨린다. 새 교과서로 대한민국 역사를 어떻게 보는지 비교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좌파 국사학자들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처지에서 기술한 교과서 출현을 막으려는 시도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교학사 교과서 논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시각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보수우파 역사학자의 공통된 인식이기도 하다. 이들은 역사학계 주류가 좌파라고 본다.

우파 역사학자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는 본격적으로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사관이라는 새로운 한국사상(韓國史像)을 세우는 노력을 했고, 이는 국가 정통성을 강조하는 박정희 정부의 국가주의와 맞물려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우근 전 서울대 교수(1999년 작고),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1989년 작고) 등이 중심이 된 강단사학계는 주로 문헌 고증에 중점을 둔 실증사학을 연구했고, 일부는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등으로 이어져온 민족주의사학에 심취했다.

역사학계에 불어닥친 회오리바람

그러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역사학계에는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친다.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감으로 상대적으로 좌파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을 갖게 된 좌파 성향 학자가 대거 역사학계에 진출한 것. 이들은 주로 근현대사를 전공하면서 우리 사회를 마르크스주의 도식에 맞춰 설명하거나 공산주의 운동사, 민중운동 역사를 통해 좌파 사상에 심취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서울 소재 대학 A교수의 설명이다.



“오늘날 교과서 논란의 시작이다. 민중사학자가 학계에 대거 생겨나고, 1990년 초에는 북한 주체사관이 소개되면서 심정적으로 북한에 동조하는 학자가 급격히 늘었다. 신군부에 대한 반발로 북한에 동조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했다. 93년 옛 소련 비밀문건 공개로 ‘남침 논란’이 종식됐을 때도 이들은 심정적으로는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논문이나 교과서에서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는 강조하면서,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청산리, 봉오동 전투는 아주 작게 소개한다. 미국과 국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을 학살이라 표현하고, 북한군의 인민재판은 소개하지 않는 식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학자 상당수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고, 과거 교과서 집필진 일부도 이런 학자였다. 돌이켜보면 보수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대학교육을 통해 교수로 양성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당시 학자 가운데 일부는 1989년 동구권 몰락을 지켜보면서 자발적으로 우파 학자로 전향하기도 했다고 한다. 권희영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 재학 시절 운동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마르크스, 레닌 사상에 심취했고, 마르크시즘 이론을 한국사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지만 89년 역사적 충격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눈을 떴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진보좌파 학자의 목소리가 서서히 커졌다. 현재 진보 사학계는 1970년대 등장했던 ‘민중사학’에 기원을 뒀고,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이론적, 실천적으로 체계화됐다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1970년대 민중사학을 이끈 사람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정창렬 전 한양대 명예교수(2013년 작고),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등이었다. 강만길 명예교수는 “역사학이 식민사관 극복을 넘어 통일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만열 명예교수는 민중중심의 민족사를 강조했다.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9월 5일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식민사관을 반영하고 5·18광주민주항쟁을 소홀히 다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신입생 필독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초창기 민중사학을 대표하는 작품은 1980~ 90년대 대학가에서 신입생 필독서로 꼽혔던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이었다. ‘해전사’ 집필에는 강만길 명예교수,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박현채 전 조선대 교수(1995년 작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대표적인 진보학자가 대거 참여했다. 미국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강만길, 1978)도 1970~80년대 진보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38선 획정, 단독정부 수립과 분단의 고착화 과정에 대해 일차적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논리가 이들 책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1988~89년 소개된 ‘조선통사’ ‘현대조선력사’ 같은 북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도 민중사학 진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87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진보 역사학계는 연구단체를 여러 개 만들며 성장하는데,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비판에 앞장선 역사단체도 대부분 이즈음 문을 열었다. 역사문제연구소(1986), 한국역사연구회(1988·한역연),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1988)도 이때 문을 열었다.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 진보 역사학계의 1세대 학자로 꼽히는 임헌영 소장, 현재 진보 역사학계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서중석 전 성균관대 교수, 이이화 서원대 석좌교수 등이 초창기부터 참여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정치인도 여럿 배출했는데,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1980년대 후반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역사비평’ 발행인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역사문제연구소 이사, 역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90년대 초 운영위원을 지냈다.

한역연 창립은 1980년대 이래 진보 역사학자의 활동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한국사 전 시기를 연구하는 대중적 연구단체의 등장이었다. 한역연은 현재 연구회원만 620여 명에 달한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관련 논쟁의 중심에 있는 신주백 연세대 교수(천재교육 역사 교과서 저자), 박태균 서울대 교수 등이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로 친일파 문제를 연구해온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 설립됐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다큐 ‘백년전쟁’을 공개해 큰 논란을 불렀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현재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진보 역사학계의 외연은 더욱 넓어졌다. 수천 명이 참여한 역사교사 모임을 결성해 국정교과서를 대체할 대안교과서 집필에 나설 정도였다. 국정교과서 폐지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0년 작성된 7차 교육과정을 통해 고교 국사와 별도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심화과정으로 개설되고, 국정교과서 대신 교과서 검정제가 도입되면서 근현대사를 둘러싼 좌우 대립은 본격화됐다. 2002년 나온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특히 문제가 됐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의 지원을 받으며 한때 전국 고교 50% 이상에서 채택되기도 했다.

보수 진영은 줄곧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는 학자의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진보단체 출신 인사들이 교과서 집필진을 장악하고 편향된 역사관을 표출한다는 것. 실제로 2002년판 금성출판사 교과서 집필진에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낸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구로역사연구소 소장을 지낸 홍순권 동아대 교수, 김태웅 서울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천재교육 교과서의 경우에도 집필진 8명 가운데 4명이 역사문제연구소 출신으로, 2명은 전교조 회원이라는 것을 보수 진영에서 문제 삼았다. 미래엔컬처(옛 대한교과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일부 교수도 모두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을 지냈다.

우파에서는 교과서에도 이런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본다. 1990년 발행된 5차 국사 교과서에서 기존 ‘동학운동’이 ‘동학농민운동’으로, ‘6·25남침’이 ‘6·25전쟁’으로 바뀐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 결국 94년 3월 교육부가 6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과정을 위해 마련한 국사교육 내용 전개 준거안 연구보고서 시안이 공개되면서 ‘준거안 파동’이 일어났다.

서중석 전 교수가 중심이 돼 마련한 준거안에는 해방정국 당시 대구 폭동과 제주 4·3사건을 10월 항쟁과 제주 4·3항쟁으로 바꾸고, 6·25전쟁 원인을 남침으로 서술한 기존 교과서와 달리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 배경과 전쟁 추이를 설명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용어 사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결국 교육부는 준거안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A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후 서중석 전 교수와 지수걸 공주대 교수 등 민중사학자들은 국사 교과서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출간되면서 ‘교과서 파동’이 시작된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당시 교과서는 좌파 계열 독립운동 비중이 높았고, 광복 이후 역사를 반미, 친북, 반재벌 시각으로 기술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우파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2004년 2월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주의연대는 “노무현 정권은 자학사관을 퍼뜨리며 지배 세력 교체와 기존 질서 해체를 위한 ‘과거와의 전쟁’에 명운을 걸고 있다”고 비판했고, 여기에 정치권도 가세했다. 사회적 파장이 증폭되자 보수 우파 학자들은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며 우파들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작했고, 2005년 1월 ‘교과서포럼’이 그 기능을 맡았다.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2011년 5월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에듀웰 센터 컨벤션홀에서 한국 현대사학회 창립기념 학술회의가 열렸다.

서로의 입장차 줄이려는 노력 필요

박효종, 이영훈 서울대 교수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한 교과서포럼은 2008년 5월 기존 교과서의 현대사, 경제사 등의 내용을 수정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기파랑)를 내놓았다. 그러나 정식 교과서는 아니었다. 교과서포럼에 정식 교과서를 집필할 만한 규모의 근현대사 전문가와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게 보수 학자들의 설명이었다.

이후 교과서포럼이 이루지 못한 우파 교과서 출간의 꿈은 한국현대사학회가 이어받았다. 교과서포럼 인사도 대거 이 학회에 참여했다. 2011년 5월 창립한 한국현대사학회는 “한국현대사 연구의 학문적 폐쇄성과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하겠다”는 설립 취지를 밝혔고, 역사 교과서 교육과정 집필 기준에 등장하는 ‘민주주의’를 북한 인민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자유민주주의’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며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학회 소속의 이명희 공주대 교수와 권희영 교수 등은 출간되기도 전 유명세를 치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내놓았다.

우파 학자들의 이런 시각에 대해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학사 교과서로 시작된 이번 논란은 진보와 보수 간 이념 논쟁이 아니다. 팩트(사실)에 근거한 교과서인지 아닌지의 문제다. 1차 검토만 했을 뿐인데도 교학사 교과서에서 사실이 잘못 기재된 부분이 수백 개 발견됐다. 사실 관계를 왜곡한 것까지 더하면 훨씬 늘어난다.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과서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는 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한 역사학과 교수의 말이다.

“보수 정권의 교육부에서 검증을 마친 7종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대한민국 건국을 강조한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을 식민사관 학자로 공격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싸움이다. 교과서 일부 내용을 문제 삼으면서 서로 헐뜯기를 하기보다 세미나를 통해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입장차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주간동아 2013.09.30 906호 (p16~18)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한상진 월간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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